105% 관세 폭탄의 충격“한·미 FTA로 0% 관세를 기대했는데 105%라고요?”
한국 수출기업 A사 대표는 믿을 수 없었다. 중국산 철강을 가공해 미국에 수출했을 뿐인데 관세 폭탄을 맞았다. 원인은 바로 ‘비특혜 원산지 규정’이었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이런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한국 CEO들은 이 위험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중국산 철강 자재를 한국에서 가공 후 미국 수출 시 원산지 판정에 따라 극명한 차이가 발생한다.
시나리오 1: 한국산 인정
한·미 FTA 관세 0% + 제232조 관세 50%=총 50%
시나리오 2: 중국산 판정
WTO 관세 0~10% + 제301조 관세 7.5~25% + 제232조 관세 70%=총 105%
차이: 최대 55%포인트
이 차이는 가격 경쟁력을 완전히 상실시킨다. 이것이 바로 미국이 펼치는 ‘원산지 전쟁’의 실체다. 문제는 대부분 CEO들이 이 위험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숨겨진 함정, 비특혜 원산지 규정
대부분 수출기업들은 한·미 FTA 원산지 기준만 알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의 관세 조치에는 전혀 다른 기준이 적용된다.
FTA 기준은 세번변경, 부가가치 등 명확한 수치로 판단한다. 반면 비특혜 기준은 ‘실질적 변형’이라는 정성적 개념을 사용한다. 제품의 명칭, 성질, 용도가 모두 변경되어야 한국산으로 인정받는다는 뜻이다.
문제는 미국 수출 시 관세 구조가 복잡하다는 점이다. 기본 관세 또는 FTA 관세에 추가 관세(제232조)와 상호관세(IEEPA)가 누적 적용된다. 여기서 추가 관세와 상호관세는 수출국이 아닌 원산지 기준으로 부과된다. 한·미 FTA로 ‘한국산’으로 인정받던 물품도 비특혜 기준에 따라 원산지가 바뀔 수 있다는 함정이 숨어 있다.
관세 부담을 피하려는 급한 마음에 중국, 베트남 등에서 단순 가공 후 수출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하지만 미국 관세국경보호청(CBP)의 집중 단속 대상이 되고 있다.
2024년 9월 발표된 매트릭스 위장 사건을 보자. 중국 H사가 제조한 매트릭스를 한국 기업이 단순 재포장하여 한국산으로 둔갑시켰다. CBP(U.S. Customs and Border Protection, 미국 관세국경보호청)가 한국 업체들에 제조시설이 없다는 사실을 적발한 후 가혹한 처벌이 뒤따랐다. 모든 수입 건 통관 중지, 중국 반덤핑 관세 소급 적용, 현금 보증금 징수, 실시간 심사 의무화 등 강력한 행정제재가 조치됐다.
잔탄검(Xanthan Gum) 우회수출 사건에서는 중국산 제품을 인도 경유로 위장해 미납 관세 추징 및 벌금 부과, 향후 수입 제한 조치를 받았다. 중국산 의류 과소신고 사건에서는 부정청구방지법(FCA)이 적용됐다. 미국 법무부는 2024년 기준 FCA 위반으로 29억 달러 이상을 환수했다.
이 모든 사례가 보여주는 교훈은 명확하다. 제조시설 없는 상태에서 원산지를 허위신고하는 것은 명백한 우회수출로 간주되어 강력한 제재를 받는다는 점이다.
첫째, 미국 비특혜 원산지 판정 사례를 연구하라. 비특혜 원산지 기준은 실질적 변형 기준에 따라 결정된다. 구체적 법령이 없고 판례와 정성적 판단에 근거하여 CBP가 건별로 판단하기 때문에 기존 판정 사례를 참고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 관세청과 한국원산지정보원이 제작한 ‘미국 비특혜 원산지 판정 대응 체크포인트’ 책자를 품목별로 활용하고 불명확한 경우 CBP의 사전심사 제도(Advance Ruling)를 통해 원산지를 확인해야 한다.
둘째, 전문가 컨설팅과 정부 지원을 총동원하라. 관세청은 2025년 하반기 원산지검증 대비가 필요한 중소기업에 관세사가 직접 방문하여 맞춤형 컨설팅을 제공할 예정이다. KOTRA 관세대응 119헬프데스크 상담도 활용할 수 있다. 미국 관세 당국의 공지사항을 실시간 모니터링하고 CBP와 미국 법무부의 단속 패턴과 적발사례를 지속적으로 분석해 위험요소를 사전에 차단하는 체제를 갖춰야 한다.
셋째, 장기적으로 공급망을 개편하라. 중국산 원료 비중이 30% 이상인 주력 제품에 대해서는 단순 조립이나 포장 중심에서 명칭, 성질, 용도의 실질적 변형을 수반하도록 핵심 제조공정을 갖춰야 한다. 급조된 우회전략보다는 장기적 공급망 개편이 필요하다. 또한 미국의 사후 직접 검증에 대비하여 원산지 증빙서류를 5년간 보관하는 체계도 구축해야 한다. 2025년 하반기 관세전쟁 2라운드
미국은 철강, 알루미늄 파생제품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2025년 3월 290개 품목을 시작으로 4월 맥주와 빈 알루미늄 캔 3개 품목, 6월 냉장고·세탁기·건조기·오븐 등 11개 품목이 추가되어 총 304개 품목이 됐다. 6월 4일부터는 파생제품의 철강, 알루미늄 함량분은 관세 50%로 상향하고 미함량분에는 상호관세 10%를 추가로 부과하고 있다.
다음 타깃은 이미 정해져 있다. 미국 행정부는 반도체, 의료기기, 화학제품 등 추가 제재 품목을 검토 중이다. 특히 중국과의 공급망 연관성이 높은 품목들이 집중 타깃이 될 전망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아메리카 퍼스트’ 정책이 본격화되면서 동맹국에 대한 압박도 더욱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준비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리스크
한국 관세청이 2025년 하반기 원산지검증 대응 지원사업에서 대미 수출기업을 1순위로 선정한 것은 이런 위기감의 반영이다. 급조된 우회전략으로 단기 이익을 추구하다 CBP와 미국 법무부의 집중 단속으로 위기에 처하는 기업과 비특혜 원산지 기준을 제대로 활용하여 장기 전략을 수립하는 기업 사이의 격차가 크게 벌어지고 있다.
비특혜 원산지 관리는 이제 선택이 아니라 대미 수출기업의 필수 전략이다.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수출기업만이 글로벌 무역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준비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리스크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석문 관세무역전략연구원 원장(전 서울세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