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유승호가 연극 '엔젤스 인 아메리카' 무대에 선다고 했을 때 다들 "유승호가 연극을 한다고?"라는 반응을 보였다. 올해로 데뷔 25년인 유승호는 그동안 여러 차례 연극 무대 러브콜을 받아왔지만, 고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랬던 그가 에이즈에 걸린 동성애자를 연기한다고 하니 놀랍다는 반응이 이어졌다는 것.
하지만 '엔젤스 인 아메리카' 이후, 새 소속사로 옮긴 후 그가 찾은 차기작도 연극이었다. 이번엔 카리스마 넘치다가도 홀로 두려움에 떨며 절규하는 양극단을 오가는 로마 장군 브루터스 역을 맡아 무대를 휘젓는다.
'킬링시저'는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원작 '줄리어스 시저'를 원작으로 한 연극으로 시저 암살에 초점을 맞춰 재해석했다. 단순한 고전의 고증이 아닌 이상과 현실, 우정과 배신, 신념과 욕망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물들의 드라마를 밀도 높게 풀어냈다. 유승호가 연기하는 브루터스는 공화국의 이상을 위해 친구를 배신하는 딜레마 속에 갈등하는 이상주의자다.
'엔젤스 인 아메리카'를 끝낸 후 진행한 인터뷰에서 "무대공포증이 있었다"고 고백했던 유승호는 "이 작품을 하면서 장 트러블이 심해 이틀에 한끼 정도만 먹었다"면서 극심했던 스트레스를 전했다.
소화장애를 앓을 만큼 그를 예민하게 했던 연극인데, '킬링시저'에서는 같은 배역에 함께 캐스팅된 배우도 없이 원캐스트로 극에 참여한다. 지난 5월 10일 상연을 시작한 '킬링시저'가 오는 20일 폐막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3개월간 공연이 없는 월요일을 제외하곤 매일 무대에 올랐다.
하지만 이런 강행군에 유승호는 오히려 반가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킬링시저' 프레스콜에서 그는 '여기서 더 색다른 감정이 나올 수 있을까' 쉽게 단정 지었는데 하면 할수록 제가 생각도 못 했던 감정과 재밌는 장면이 나오더라. 그게 흥미롭고 재밌게 느껴졌다"면서 연극에 애정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아직도 대본에 관한 얘기를 하며 재밌고 완성도 높은 연극을 만들기 위해 대화하고 있다"며 "힘들거나 어렵다는 생각보다는 '더 잘하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지금도 변하지 않는 마음으로 공연하며 수정해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로마의 원형으로 설계된 무대에서 유승호는 한 손에 칼을 들고 쉼 없이 뛰며 곳곳을 누빈다. 날렵한 턱선의 그가 제복을 입고 무대에서 활약하는 것만으로도 '킬링시저'의 가치가 충분하다는 관람평이 나올 정도다.
그런 그가 올바른 리더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절규하고, 선택하고, 그러면서도 두려워하는 모습을 통해 '킬링시저'의 긴장감이 고조되기도, 이완되기도 한다. 극에서 보여주는 연설과 정의에 대한 정의를 던지는 방식에는 호불호가 나뉘어도, 유승호의 연기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유승호의 마지막 드라마는 웨이브 오리지널 '거래'다. 연기에도 외모에도 물이 올랐다는 평을 받는 유승호가 차기작으로 어떤 작품을 선보일지 이목이 쏠리고 있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