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다멜과 ‘20년 지기’ 공연기획자, 뉴욕필 정상에서 만났다

입력 2025-07-31 00:04
수정 2025-07-31 09:02
뉴욕필하모닉이 새 음악감독으로 구스타보 두다멜을 맞이한다. 두다멜과 합을 맞추게 된 데엔 그와 20년 지기 친구인 마티아스 타르노폴스키 뉴욕필하모닉 최고경영자(CEO)의 공이 있었다. 한국을 찾은 타르노폴스키 CEO를 직접 만나 뉴욕필하모닉의 매력과 두다멜에게 거는 기대에 대해 물어봤다.



미국 5대 악단으로 빠짐없이 꼽히는 뉴욕필하모닉은 1842년 설립된 미국 최장수 악단이다. 1909년 구스타프 말러가 상임지휘자를 맡은 뒤 세계적인 존재감을 키웠다. 일각에선 이 악단을 베를린필하모닉, 빈필하모닉과 함께 세계 3대 악단으로 꼽기도 한다. 뉴욕필하모닉은 지난 6월 26~28일 지휘자 에사페카 살로넨과 11년 만에 내한 공연을 열었다.

“두다멜, 장르 경계 두지 않는 사람”

뉴욕필하모닉은 큰 변화를 앞두고 있다. ‘지휘계의 슈퍼스타’란 별명을 가진 두다멜이 내년 9월부터 이 악단의 음악감독을 맡기로 해서다. 두다멜은 1981년 베네수엘라에서 태어난 지휘자다. 2009년 불과 28세의 나이에 LA필하모닉의 음악감독을 최연소로 맡은 뒤엔 ‘두다마니아(Dudamania)’란 신조어가 나올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재미난 건 올해부터 뉴욕필하모닉의 경영을 맡게 된 타르노폴스키 CEO와 두다멜의 인연이다. 타르노폴스키 CEO가 이 악단에 2006년 1월 입사해 맡았던 첫 출장 업무가 두다멜을 만나는 일이었다고.

두 사람의 인연은 2005년 전화통화로 시작됐다. 타르노폴스키 CEO이 두다멜의 모국어인 스페인어를 쓸 줄 알았떤 덕분에 둘의 사이는 가까워졌다. 뉴욕필하모닉에 입사해 공연 기획을 맡게 된 타르노폴스키는 무대에 두다멜을 올리기 위해 그의 고국인 베네수엘라의 카라카스로 떠났다. 타르노폴스키 CEO는 “카라카스에서 두다멜을 직접 만난 뒤 영감이 가득한 3~4일을 보냈다”며 “20년이간 우정을 쌓아온 우린 매우 가까운 친구이자 협력자”라고 말했다. 그의 노력 덕분에 두다멜은 2007년 뉴욕필하모닉을 처음으로 지휘하게 된다.



타르노폴스키 CEO가 꼽은 두다멜의 매력은 경계를 가리지 않는 확장성이다. 두다멜은 코첼라 페스티벌에서 LA필하모닉을 지휘하거나 북미미식축구(NFL) 슈퍼볼의 하프타임 쇼를 이끄는 등 전통적인 공연장에만 머물지 않는 행보를 보여왔다. 타르노폴스키 CEO가 본 두다멜도 “음악에 대해 깊이 생각하면서도 다른 예술가들과 긴밀히 협력하는 사람”이었다. “구스타보(두다멜의 이름)는 건축가, 극작가, 영화감독, 배우들과도 적극적으로 교류해요. 영감을 얻는 곳이 많죠. 음악은 그에게 그저 음악일 뿐입니다. 클래식 음악, 재즈 음악, 세계 음악 이런 구분에 스스로를 가두려 하지 않아요.”

20년 지기 친구가 인상 깊게 본 두다멜의 공연은 뭘까. 타르노폴스키 CEO는 기억에 남는 무대로 지난 6월 1일 뉴욕필하모닉과 선보였던 말러 교향곡 7번을 꼽았다. 지난 5월 필립 글래스의 교향곡 11번 공연도 감명 깊었다고. 그는 “두다멜이 6월 4일 뉴욕필하모닉과 선보였던 센트럴파크에서의 공연도 잊을 수 없다”며 “관객 수만 명이 모여있는 게 사람들로 가득 찬 바다를 보는 것만 같았다”고 했다.

“뉴욕필의 매력은 유연성”

타르노폴스키 CEO가 잊지 못하는 무대가 또 있다. 뉴욕필하모닉의 2008년 평양 공연이다. 지금보다는 미국과 북한의 관계가 좋았을 때다. “악단이 마지막 곡으로 ‘아리랑 환상곡’을 연주했을 때 관객 모두가 감동 받아 눈물을 흘렸다”고. 타르노폴스키 CEO는 2019년엔 한국 통영을 찾았다. 통영국제음악제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해서였다. 그는 “음식도 맛날 뿐 아니라 한국 친구들도 많다”며 한국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뉴욕필하모닉의 매력으론 ‘유연성’을 꼽았다. “연주 방식, 템포, 음색을 곡에 따라 빠르게 바꾸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게 타르노폴스키 CEO의 의견이다. “악단 음악을 들을 땐 무수한 색들로 채워진 팔레트가 떠오른다”는 말도 덧붙였다. 미국 악단과 유럽 악단의 색채를 구분하는 평론계 일부의 시각에 대해선 잘라말했다. “미국 오케스트라에 미국적 특성이 있다는 개념은 저로선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음악은 언어나 출신지와 무관하게 모두에게 말을 걸잖아요. 경계와 국경을 초월하죠. 뉴욕필하모닉은 국제적인 악단입니다. 한국인 단원도 많죠. 미국 악단, 한국 악단, 유럽 악단을 정의하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고 보진 않습니다.”

뉴욕필하모닉은 두다멜 지휘로 오는 9월 뉴욕 데이비드 게펜 홀에서 임윤찬과 협연한다. 연주곡은 바르톡의 피아노 협주곡 3번. 협연에 앞서 뉴욕필하모닉은 1983년생 미국 작곡가인 레이레후아 란질로티의 신곡을 세계 초연으로 선보인다. “현대음악을 연주하는 건 뉴욕필하모닉에겐 일종의 전통”이라고. “박물관과 실험실을 합쳐 놓은 모습을 떠올리면 됩니다. 베토벤 교향곡 9번을 듣는다면, 이건 박물관의 경험입니다. 실험실에선 새로운 음악이 나오죠. 란질로티의 신곡을 연주하는 무대가 그런 자리입니다. 공연장에 오셔서 직접 경험해보시길 바랍니다.”

이주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