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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소매판매 증가세가 뚜렷하게 약화하고 있다. 코로나19 이전 10% 이상 고성장을 이어가던 중국의 소매판매 증가율은 현재 3% 수준으로 크게 낮아졌다. 미국의 소매판매 증가율도 작년 대비 약 3%로 중국과 큰 차이가 없는 수준이다.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동남아시아 지역 소매판매도 3% 내외 증가에 그치고 있다. 한국의 소매판매 지표 역시 심각하게 둔화했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졌을까.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코로나19 직후 대규모 유동성 공급이다. 강력한 유동성 공급은 광범위한 인플레이션을 야기했고, 결과적으로 화폐 가치가 하락했다. 고용 환경 변화도 중요한 요인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실업률은 안정세를 되찾았지만 일자리 형태는 크게 달라졌다. ‘평생직장’은 사실상 사라졌다. 플랫폼 기반 파트타임 고용이 급증했다. 기업도 외주 업체를 통한 간접 고용을 늘리고 있다. 개인이 미래의 현금 흐름에 확신을 갖기 어려워졌다는 얘기다.
전통적 지표인 대형마트, 백화점, 자동차를 기준으로만 소매판매를 보면 소비 부진으로 오해하기 쉽다. 하지만 최근 소비 행태는 물건에서 경험으로 옮겨가고 있다. 과거엔 가보지 못하던 해외여행지에 가거나 국내에서도 디자인 및 분위기를 중시한 숙소에 머무르는 식이다. 스킨스쿠버, 스카이다이빙 등 새로운 체험에 기꺼이 돈을 쓰는 이가 늘고 있다. 같은 품목이라도 저가 제품 여러 개를 사기보다는 고품질 제품 한두 개를 구매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이런 소비 트렌드는 한국뿐 아니라 미국 중국 등 주요국 소비자 사이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정보화와 글로벌화의 직접적인 결과다.
경험 중심 소비와 고품질 제품 선호는 일시적인 트렌드가 아니라 구조적이고 지속적인 변화다. 여행·호텔, 기능성과 안전성이 검증된 화장품·식품, 오랫동안 유행을 타지 않는 명품 브랜드 소비로 집중되는 추세가 이를 뒷받침한다. 중국에서는 트립닷컴이 해외여행 플랫폼 시장을 사실상 장악했다. 미국의 로열캐리비안 같은 크루즈 업체, 힐튼 같은 글로벌 호텔 체인도 역사상 최고 주가를 경신하고 있다. 이런 흐름은 경험과 품질 중심 소비로의 변화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우건 매뉴라이프자산운용 매니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