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쇄신을 위해 출범한 당 혁신위원회가 출범 닷새 만인 7일 사실상 좌초했다. 혁신위원장을 맡은 안철수 의원과 당 지도부가 이른바 ‘쌍권’(권영세·권성동) 전 지도부의 인적 쇄신 문제와 혁신위 구성을 놓고 정면충돌하면서다. 안 의원은 혁신위원장직을 전격 사퇴하고 다음달 전당 대회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대선 패배 이후 당 개혁을 진두지휘하기로 한 혁신위가 와해하자 당 쇄신 작업도 표류하게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安 “날치기 혁신위 거부한다”안 의원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합의되지 않은 ‘날치기 혁신위원회’를 거부한다”며 “(혁신위 대신) 전당대회에 출마하겠다”고 밝혔다. 당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안 위원을 포함한 6인의 혁신위원회 인선안이 의결된 지 30여 분 만이다. 인선안에는 재선의 최형두 의원과 호준석 대변인, 이재성 여의도연구원 부원장, 송경택 서울시의원, 김효은 전 교육부 장관 정책보좌관 등이 포함됐다.
안 의원은 사퇴 이유로 자신이 제안한 인적 쇄신 방안 및 혁신위 구성안을 당 지도부가 받아들이지 않은 점을 꼽았다. 그는 “먼저 최소한의 인적 청산을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는 판단 아래 비대위와 수차례 협의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고 했다. 안 의원은 ‘강제 후보 단일화’ 사태 책임론이 일었던 권영세 전 비대위원장과 권성동 전 원내대표의 출당 필요성을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 의원은 혁신위 구성에 대해서도 “전체적으로 합의된 안이 아니다. 최소한 한 명에 대해선 제가 합의해준 바가 없다”고 주장했다. 당초 그는 이재영 강동을 당협위원장, 박은식 전 비대위원을 혁신위원에 포함하는 안을 마련했으나 최종안에서 이름이 빠졌다.
다만 지도부는 안 의원의 제안을 반대한 적 없고, 일방적으로 낸 인사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한 지도부 관계자는 “당장 인적 쇄신을 하기보다는 절차에 따라 안 의원이 만드는 백서 작업 이후 책임져야 할 사람은 지도록 하자는 취지로 답변했다”며 “혁신위원 7명 중 한 명에 대해서는 안 의원과 합의가 안 돼 공석으로 뒀지만 나머지는 사전 논의된 것”이라고 반박했다. ◇국힘 혁신 작업 요원해지나당 혁신위가 출범 직후 좌초하자 당의 쇄신은 더욱 요원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송언석 비대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혁신위를 정상적으로 출범해 많은 혁신 과제에 관한 의견을 수렴, 정리했으면 좋았을 텐데 지금 상황은 당혹스럽고 안타깝다”고 했다.
지도부는 혁신위원장을 새로 지명하고 혁신위를 가동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사실상 동력을 잃었다는 지적이 많다. 다음달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 쇄신의 키가 차기 지도부로 넘어갈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한 국민의힘 의원은 “이미 전당대회로 당원들의 눈이 쏠린 데다 혁신위 권한이 크지 않다는 점을 확인했기 때문에 새로 조직을 꾸린다 한들 힘을 받기 어려울 것”이라고 평가했다.
현재까지 전당대회 출마 의지를 내비친 건 안 의원과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 6선 조경태 의원, 장성민 전 대통령실 미래전략기획관 등이다. 안 의원은 이날 “목숨이 위태로운 환자의 수술 동의서에 끝까지 서명하지 않는 안일한 사람들을 지켜보면서 참담함을 넘어 깊은 자괴감을 느꼈다”며 “당 대표가 돼 단호하고 강력한 혁신을 직접 추진하겠다. 메스가 아니라 직접 칼을 들겠다”고 강조했다.
당내에서는 한동훈 전 당 대표와 5선 나경원 의원, 재선 장동혁 의원 등의 출마 가능성도 거론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혁신 작업이 첫 삽조차 뜨지 못하고 전당대회 모드로 들어서면서 계파 간 이전투구 양상이 더욱 격화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정소람/정상원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