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교한 계산으로 빚은 예술…서울 물들인 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 '봄의 제전'

입력 2025-07-07 17:51
수정 2025-07-08 00:15

음악은 멜로디와 화성 그리고 리듬의 조합으로 빚어지는 예술이자 과학이다. 뛰어난 수학자와 과학자가 음악적 재능을 보이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리듬의 구조, 화성의 조합 등은 규칙이면서 의도된 불규칙이 빚어낸 ‘예술’이다. 낭만주의 시대에는 극대화된 선율로 음악을 표현했고 근현대 음악은 리듬으로 빚어내는 음악의 또 다른 세계를 펼쳐 보였다.

지난 6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공연한 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OSR)는 이 두 가지 면에서 조화로운 기량을 보여줬다. 1부는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와 함께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 e단조를 들려줬다. 양인모는 2022년 시벨리우스 콩쿠르 우승자답게 여유롭고 자신감 넘치는 연주를 보여줬다.

지휘자 조너선 노트는 왼손을 활발하게 쓰는 지휘자로, 소리를 증폭하고 우아하게 표현하는 데 강점을 보였다. 양인모는 앙코르곡으로 이자이의 바이올린 소나타 4번 2악장, 파가니니의 카프리스 14번을 연주했다.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을 연주한 2부는 온전히 오케스트라의 장기를 선보이는 시간이었다. OSR이 스트라빈스키 곡을 택한 건 악단의 시작점과 맞닿아 있다. 이 악단은 지휘자이자 수학자인 에르네스트 앙세르메가 1918년 창단했다. 그는 음악을 아름다운 수학으로 해석했다. OSR은 이 같은 뿌리가 있는 악단이라 리듬을 중시하는 근현대 작곡가에 특히 강점을 보였다. 그중 스트라빈스키는 그들의 주특기다. 스트라빈스키는 오랜 기간 서양음악사를 지배한 멜로디의 시대에 작별을 고하고 리듬의 시대를 연 작곡가로 평가받는다.

이 곡에서 현악기는 기존 문법에서 벗어나 타악기처럼 ‘쿵쿵쿵’ 박자를 맞추며 생동감을 자아냈다. 곡의 시작과 동시에 2차원(2D) 영화가 갑자기 4차원(4D)이 된 듯한 풍성한 사운드가 펼쳐졌다. 마치 영화의 클라이맥스에나 깔릴 법한 스펙터클한 음악이 라이브로 재현됐다.

이번 내한에는 100명 넘는 단원이 참여한 대편성 오케스트라가 동행했다. 50명 넘는 현악기 파트가 일제히 몰아칠 때 ‘봄의 제전’의 감동은 폭발했다. 허명현 음악 칼럼니스트는 “‘봄의 제전’은 언뜻 굉장히 혼란스러워 보이는데, 이런 완벽한 혼란을 만들기 위해선 철저하고 이성적인 계산이 필요하다”며 “노트가 해석한 ‘봄의 제전’이 딱 그런 모습이었다”고 했다.

조민선 기자 sw75j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