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교과서를 펼치는 마음으로 안동으로 향한다.
그러나 그곳에서 만나는 것은 현재와 조화롭게 어우러진 살아 숨 쉬는 전통이다.
살아 숨 쉬는 전통, 하회마을
구불구불 흐르는 낙동강이 큰 원을 그리며 산을 한 바퀴 휘도는 곳, 그곳에 하회마을이 있다. ‘물이 돌아간다’는 하회(河回)라는 이름도 여기에서 유래했다. 마을에 들어서면, 잠시 새로운 세계로 떠나온 것만 같다. 오랜 역사를 간직한 고택들이 자연 풍경과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풍경 덕분이다.
하회마을은 대대로 풍산 류씨 가문이 모여 산 집성촌으로, 지금도 그 후손들이 거주하며 손님을 맞이한다. 마을 입구부터 차근히 발걸음을 옮기면 하동고택, 남촌댁, 양진당, 충효당 등 세월과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고택들을 만날 수 있다. 양반이 거주했던 기와집에는 고고한 기품이 흐르고, 소작인들이 살던 초가집은 정겹다. 기와집과 초가집이 조화를 이룬 풍경은 또 다른 정취를 자아낸다.
마을에서 따스한 온기가 느껴지는 것은 여전히 이곳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토담 벽을 따라 심겨있는 꽃들과 깨끗한 골목길에는 마을을 살뜰히 보살 피는 이들의 정성과 손길이 묻어난다. 하회마을은 마을 전체가 201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조상들의 전통과 지혜가 이처럼 고스란히 현재로 이어져 일상을 이루고 있는 덕분일 것이다.
정진의 시간, 도산서원과 병산서원
안동이라는 지역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문장이 있다. 바로 ‘한국 정신 문화의 수도’다. 이는 곧 우리나라 유교문화의 중심지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 정수를 느끼기 위해서는 서원으로 향해야 한다. 그중에도 병산서원과 도산서원은 유교의 진리를 좇던 선비들의 삶과 학문이 고스란히 담긴 공간이다. 도산서원은 1561년 퇴계 이황 선생이 제자들을 가르치기 위해 직접 설계한 공간이다. 건물 하나하나에는 선생의 절제와 검소한 성품이 그대로 묻어난다.
병산서원은 퇴계 이황의 제자 류성룡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곳이다. 누마루 형태의 만대루에 오르면 눈앞에 낙동강과 크고 작은 산이 마치 병풍처럼 펼쳐진다. 자연을 벗 삼아 학문과 진리에 몰두했던 조선 선비들의 발자취를 잠시나마 느껴볼 수 있는 공간이다.
물 흐르듯 안동을 걷다, 월영교와 낙강물길공원
안동은 또한 ‘물의 도시’이기도 하다. 낙동강을 따라 흐르는 물길은 안동의 역사와 일상, 그리고 사람들의 삶을 이어준다. 월영교와 낙강물길공원, 그리고 수원(水 原)이 되어주는 안동댐은 물의 도시로서의 안동을 보여주는 곳들이다. 안동댐 저수지 상류의 월영교는 길이 387m로, 우리나라에서 목책교로는 가장 긴 다리다.
느긋이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다리 위에 자리한 한옥 누각에 닿는다. 기와 아래서 잠시 숨을 돌리면, 강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땀을 식혀준다. 가만히 앉아 다리 모양을 살펴보면 아랫부분이 마치 미투리(짚신)를 뒤집어 놓은 듯한 형상이라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이는 이곳에서 발견된 420년 전의 편지가 모티브가 됐다.
편지를 쓴 이는 조선시대의 부인. 그는 남편의 병을 낫게 하기 위해 자기 머리카락으로 미투리를 삼는 듯 정성을 다했음에도 사별하게 되자, 남편을 향한 애절한 마음을 글로 남겼다. 미투리 형상의 다리는 곧 부부의 사랑을 기리는 셈이다. 다리에서 이어지는 수변 덱을 따라 걷다 보면 안동댐 상류의 낙강물길공원에 다다른다. 수생식물과 연못으로 아기자기한 공원은 물의 도시에 어울리는 휴식처다.
선비의 발걸음을 따라, 퇴계예던길과 예끼마을
고전적으로 안동을 둘러보고 싶다면 퇴계예던길을 따라 걷는 것도 방법이다. 총 9개 구간 91km 코스는 조선시대 선비의 발자취를 좇을 수 있도록 설계했기 때문이다. 이 중 1코스에 걸쳐있는 예끼마을은 다채로운 즐길 거리를 간직해 잠시 머무르며 휴식을 취할 만 하다. 과거 안동댐 건설로 수몰될 위기에 처했던 예안면의 마을을 현재의 도산면으로 옮긴 것이다.
예술과 끼를 더한 ‘예끼’라는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골목을 누비는 재미가 넘치는 아기자기한 곳이다. 색색의 벽화 앞에 서는 인증샷을, 소품 숍에서는 전통을 트렌디하게 해석한 제품을 만날 수 있다. 곳곳의 갤러리와 공방까지 둘러봤다면 이제 다시 길을 떠날 차례다. 안동호 위로 놓아진 선성수상길을 걸으며 한폭의 동양화 같은 풍경을 마음에 담을 일이다.
김은아 한경매거진 기자 una.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