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무더위로 치솟았던 엽근채소류 물가가 올해는 여름을 앞두고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금(金)값’으로 통했던 배추는 도매가격이 30% 넘게 떨어지고, 20㎏당 7만원을 웃돌던 당근 가격은 2만원대로 내려앉았다. 여름철 농산물 수급은 날씨 영향을 크게받는 만큼 안심하긴 어렵다는 지적이다.
2일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 농업관측통계정보시스템(OASIS)에 따르면 전날 기준 서울 송파구 가락농수산물종합도매시장에서 당근(상품)은 20㎏당 2만3419원에 거래돼 전년(7만94원) 대비 66.6% 하락했다. 지난해 ‘금(金)값’ 논란이 일었던 배추(상품)도 10㎏당 9322원에서 7015원으로 24.7% 떨어졌다. 다른 엽근채소류도 작년보다 가격이 저렴하다. 양배추는 8㎏당 3797원에 거래돼, 1년 전(5949원)보다 36.2% 떨어졌다. 무(상품)는 20㎏당 8481원으로 평년(1만2503원)은 물론 1년 전(1만7645원)의 반값을 밑돌고 있다.
농가들이 이들 채소의 봄작형 재배면적을 일제히 늘리면서 엽근채소류 물가에도 숨통이 트였다는 분석이다. KREI가 지난 5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봄작형 배추 재배면적은 노지 기준 3621㏊로, 전년(3090㏊) 대비 17.2% 늘었다. 노지 봄무 재배면적도 같은 기간 814㏊에서 932㏊로 14.5% 증가했다. 당근은 940㏊에서 1020㏊로, 양배추는 1458㏊에서 1553㏊로 각각 8.5%, 6.5%씩 확대됐다. 면적 뿐만 아니라 단수도 전반적으로 늘었다는 것이 KREI의 진단이다. 지난해 채소류 물가가 고공행진하다보니 가격 기대감이 커진 농가가 봄작형 재배면적과 생산량을 앞다퉈 늘린 것으로 분석된다.
품목별로 수요도 일부 축소된 것으로 분석된다. 당근의 경우 당근 위주로 식단을 짜는 다이어트 방식이 사회적으로 인기를 끌면서 소비량이 평상시보다 크게 늘었는데, 수요가 다시 제자리를 찾으면서 가격도 내림세를 보인다는 분석이다. 업계에선 배추의 경우 경기가 위축돼 외식업계의 배추·김치 수요가 줄어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달 냉해부터 이른 장마까지 기상 여건이 좋지않아 수확한 작물들의 품질이 떨어진 점도 가격에 영향을 미쳤다. 업계 관계자는 “지금 시장에 나오는 배추들은 전반적으로 ‘제값받기’ 어려운 상품이 많다”고 했다.
이 같은 가격 안정세가 지속될지는 미지수다. 농업계는 봄작형 재배가 끝나고 여름작형이 점차 출하되는 상황에서 날씨가 가격 흐름을 결정할 것으로 보고 있다. 여름철 농산물은 다른 계절보다 기상 여건에 더 크게 좌우된다. KREI 관계자는 “2023년과 지난해는 재배면적은 비슷했지만 가격은 크게 차이났다”며 “올해는 평년 수준의 날씨만 받쳐줘도 생산량은 작년보다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재배면적 자체가 줄어드는 점도 변수로 꼽힌다. 지난달 기준 여름 배추 재배(의향) 면적은 전년 대비 9% 줄었다. 배추의 경우 여름작형은 수확률이 50%를 밑도는데다 편차도 커 재배에 소극적인 농가가 많다. 농촌이 빠르게 고령화하는 상황에서 더운 여름철 농사를 짓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이광식 기자 bume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