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째 '스타트업 월드컵' 개최…유망주 쓸어담는 美VC

입력 2025-07-01 17:55
수정 2025-07-02 01:30
지난달 30일 서울 공덕동 디캠프 빌딩(프론트원)은 한국의 내로라하는 스타트업의 열기로 가득했다. 세계 최대 규모 ‘스타트업 월드컵’ 한국 예선에 참가한 10명의 젊은 창업가는 단 5분의 영어 발표를 위해 모든 것을 쏟아냈다. 이날 우승을 차지한 합성데이터 솔루션 기업 큐빅의 배호 대표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오는 10월 열리는 결선 무대에 오르는 것은 대부분 스타트업의 오랜 꿈”이라고 말했다.

올해로 10년째인 스타트업 월드컵은 미국 벤처캐피털(VC) 페가수스테크벤처스가 고안한 유망 기업 발굴 프로그램이다. 세계 60여 개국, 100여 개 도시에서 매년 이맘때 경합이 펼쳐진다. 결선엔 애플, 링크트인, 넷플릭스, 세일즈포스 등 글로벌 기업이 기대주를 찾기 위해 총출동한다. 3000여 명의 글로벌 참가자와 500명 이상의 투자자, 1000곳 넘는 스타트업이 한곳에 모인다. 전 세계 혁신을 미국이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대표 사례로 꼽힌다.

◇민관이 전 세계 유망주 모으는 美이날 현장엔 100여 명의 스타트업·VC 관계자가 객석을 가득 메웠다. 5분의 발표와 3분의 질의응답은 모두 영어로 진행됐다. 미국 결선에서 최종 우승해도 100만달러(약 13억원)밖에 받을 수 없는데도 참가자들의 열정은 장내를 뜨겁게 달궜다.

서울 본선에 오른 국내 스타트업 10곳 중 6곳은 이미 아마존, 소프트뱅크 등 글로벌 대기업에서 투자받았고, 여러 대기업과 기술 실증사업(PoC)을 활발히 펼치고 있는 검증된 스타트업이다. 한국 대표로 선발된 큐빅은 민감 데이터를 안전하게 대체할 합성데이터를 생성·분석하는 인공지능(AI) 솔루션 기업이다. 차등정보보호 기술을 적용해 원본 데이터 내 개인정보를 제거하고도 데이터 품질을 유지할 수 있어 금융·의료 등 데이터 규제 산업에서 활용도가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매년 열리는 행사에 이처럼 스타트업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글로벌 무대로 진입하기 위한 핵심 루트여서다. 페가수스 관계자는 “‘멘토링’을 결합한 교육형 경진대회여서 참가자들의 관심이 높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5월 실리콘밸리에서 열린 지역 본선에서 2위를 차지한 모핑아이 관계자는 “스타트업 월드컵과 셀렉트USA 같은 투자 박람회를 통해 미국 기업 및 정부 기관과 교류한 덕분에 미 몬태나·버지니아주에서 곧 기술실증 사업을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셀렉트USA는 미 상무부 산하 국제무역청(ITA)이 주관하는 스타트업 피칭대회다. 세계에서 300개 이상의 스타트업이 참가해 글로벌 투자자와 직접 네트워킹한다. ◇韓 벤처 생태계는 ‘갈라파고스’국내 주요 VC도 최근 실리콘밸리에 거점을 새롭게 마련하는 등 미국 진출을 노리는 스타트업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네이버는 최근에야 현지에 네이버벤처스를 설립했다. 하지만 아직 한인 네트워크에만 의존하는 등 글로벌 주류 투자 생태계에 끼기엔 역부족이란 평가가 많다.

해외 창업팀을 한국으로 유치하는 ‘인바운드’ 창업 생태계는 더 열악하다. 해외 유망주를 한국으로 불러오는 대표적 창업 지원 정책인 ‘K스타트업 그랜드 챌린지’만 해도 지원받은 해외 창업팀이 2020년 55개 팀에서 지난해 40개 팀으로 줄었다. 처음에 60개 팀을 선발했지만 비자 발급 지체, 자금 지원 시점 불일치 등으로 포기하는 팀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 예산정책처도 이 문제를 최근 지적했다. 예산분석관은 보고서를 통해 “비자 발급, 지원 시기에 관한 충분한 안내가 있었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일”이라고 했다.

주요 정책이 일회성 창업경진대회 수준에 그친다는 비판도 나온다. 2020년 그랜드챌린지 지원을 받은 55개 기업 중 26곳이 한국에 법인을 설립했지만 현재까지 사업자 등록이 된 회사는 17곳뿐이다. VC업계 관계자는 “이재명 정부가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AI 전략이 성공하려면 한국의 벤처 생태계가 해외와 활발하게 연결되도록 경로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최영총/고은이 기자 Youngch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