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가격이 지정학적 불안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높은 변동성을 보이고 있다. 미국이 이란의 핵개발을 이유로 이란 본토를 직접 폭격하자, 글로벌 시장에서 비트코인 가격이 10만 달러를 밑돌 정도로 급락했다. 하지만 확전 우려가 사그라들자, 불과 하루 만에 8% 넘게 반등하는 등 빠르게 회복했다.
국내 암호화폐 시장에서도 중동 지역의 긴장 수위에 따라 비트코인 가격이 급등락을 반복했다. 이란과 서방 국가 간 군사적 충돌이 잦아든 가운데, 미국 정부가 암호화폐를 제도권에 편입하는 작업에 본격적으로 나서면서, 비트코인 가격이 전고점(1억5235만원)을 넘어설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 중동 불안에 널뛰기1일 국내 1위 암호화폐거래소 업비트에 따르면, 비트코인 가격은 지난 6월 20일 오후 5시 기준 1억4600만원에 거래됐다. 그러나 불과 3일 뒤인 23일 오전 1시에는 1억3700만원대로 떨어지며 3일도 채 되지 않아 약 6% 급락했다.
미국이 22일 오전 B-2 스텔스 폭격기 7대를 동원해 이란의 핵시설에 벙커버스터(GBU-57) 14발을 투하한 것이 비트코인 가격 하락의 직격탄이 됐다. 이란이 글로벌 원유 수송로인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할 수 있는 국가인 만큼, 미국의 직접 공격은 국제 시장에서 위험자산 회피 심리를 자극했다. 코인베이스에 따르면 미국 동부시간 기준 22일 오후, 비트코인 가격은 10만 달러 밑으로 밀리기도 했다.
그러나 비트코인 가격은 금세 반등했다. 국내에서는 24일 오전 5시 기준 비트코인 가격이 다시 1억4600만원 수준으로 회복되며, 미국의 이란 폭격 이전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이후 29일 기준으로는 1억4700만원대를 기록했다.
미국 시장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나타났다. 코인베이스 기준 23일 오전 5시 비트코인 가격은 9만8236달러였으나, 24일 오전 7시 30분에는 10만6100달러로 하루 만에 8% 넘게 급등했다. 이란이 미군 기지에 미사일을 쏘며 반격했지만, ‘체면치레’ 수준에 그쳤고, 미국 측 인명피해도 발생하지 않았다. 양국이 휴전에 합의하면서 중동의 긴장이 빠르게 완화되자, 암호화폐 시장에도 다시 자금이 유입됐다. ◇ 미국, 암호화폐 제도권으로 수용비트코인 상승세의 또 다른 요인은 미국 정부의 친(親) 암호화폐 정책이다. 미국 상원은 지난달 17일, 스테이블코인의 발행 및 담보 요건을 강화하고 자금세탁 방지 의무를 부과하는 내용을 담은 ‘지니어스(GENIUS) 법안’을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규제 강도가 높지만, 스테이블코인을 공식적으로 제도권 안에 포함시킨다는 점에서 시장에 긍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여졌다.
스테이블코인은 달러화 등 실물자산과 1대1로 연동되도록 설계된 암호화폐다. 결제와 환전, 자산 이동 등 암호화폐 생태계 내에서 일종의 기축통화 역할을 수행한다. 특히 세계 최대 자본시장을 보유한 미국 정부가 스테이블코인을 인정하면서, 비트코인을 비롯한 주요 암호자산의 신뢰도 역시 높아질 것이란 기대가 확산되고 있다.
이와 함께 행정 조치도 이어지고 있다. 미국 연방주택금융청(FHFA)은 지난달 25일, 국책 주택담보대출 기관인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에 주택담보대출 신청자의 자산 평가 시 암호화폐를 포함하도록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윌리엄 풀테 FHFA 청장은 X(옛 트위터)를 통해 “이번 조치는 미국을 ‘세계 암호화폐 수도’로 만들겠다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비전과 부합한다”고 밝혔다. ◇ 관세 전쟁 다시 부각될까비트코인에 대한 낙관론이 커지면서 관련 자산으로의 자금 유입도 계속되고 있다. 자산운용사 파사이드 인베스터스에 따르면 미국에 상장된 11개 비트코인 현물 ETF는 지난달 9일부터 25일까지 12거래일 연속 순매수를 기록했다.
하지만 향후 글로벌 무역갈등이 다시 고조될 경우, 비트코인 시장에 불확실성이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비트코인 가격은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고율의 상호관세 부과 방침이 발표됐던 1월부터 4월까지 내내 하락세를 보였다. 특히 지난 4월 초 관세 부과 방침이 구체화되자 가격이 8만 달러 아래로 밀리기도 했다.
이후 미국이 상호관세 부과 조치를 유예하면서 무역 갈등 우려가 다소 진정됐고, 비트코인 가격은 반등 흐름을 나타냈다. 미국과 영국 간의 첫 무역 합의가 이뤄졌다는 발표가 나온 지난 5월 8일에는 하루 만에 비트코인 가격이 5% 넘게 오르며 10만 달러 선을 회복했다.
미국의 상호관세 유예 기간이 이달 9일 종료된다는 점은 비트코인 시장에서 주목하는 변수다. 미국이 관세를 무역협상용 ‘카드’로 활용할 가능성이 큰 만큼, 유예 조치를 연장할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다. 하지만 미국와 주요국의 갈등이 재부각될 경우 비트코인 가격도 다시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