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이길우(58·중앙대 한국화과 교수)는 작품을 그리지 않고 ‘태운다’. 그는 향불로 한지를 지져서 낸 수많은 구멍을 통해 점묘화처럼 대상을 표현한다. 종이를 태워 사라진 자국이 새로운 모양을 만들어내는, 소멸과 생성의 조화가 그의 작품에 담겨 있다.
이 작가가 지금의 작업 방식을 고안해낸 건 2003년이다. 산책하다 우연히 은행나무를 올려다본 게 계기였다. 나무에 붙은 잎 사이로 햇빛이 비치는 광경에서 까맣게 그을린 무수히 많은 점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작업실로 달려가 향불로 한지를 태워 구멍을 내봤더니 시공간을 초월하는 신비로운 분위기가 느껴졌다”며 “이승과 저승을 이어주는 매개체라는 향불의 의미와도 어울렸다”고 말했다. 이때 시작한 ‘향불 회화’를 통해 그는 한국 미술계 중견 작가로 자리 잡았다.
서울 인사동 선화랑에서 4년 만에 열린 그의 개인전에서는 신작 회화 35점을 만날 수 있다. 작가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참상을 다룬 뉴스 기사를 통해 인간의 욕망과 본성을 되짚어보게 됐다”고 말했다. 전시는 7월 26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