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돌아온 3000포인트

입력 2025-06-30 17:19
수정 2025-07-01 00:08
1990년 1월 추운 겨울, 어색한 정장에 가죽 구두를 신고 처음 증권사에 발을 들였던 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 코스피지수는 900대였는데, 1000을 눈앞에 두고 하락하기 시작해 그해 연말에는 600선까지 무너졌다.

그로부터 35년이 지난 2025년, 나는 증권사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앉아 코스피지수가 3000을 넘나드는 시대를 보고 있다. 숫자로만 보면 세 배 성장 같지만, 그사이 겪은 위기와 변곡점을 떠올리면 단순한 수치로 설명할 수 없는 긴 여정이었다.

2022년 1월 3000을 찍은 코스피는 3년 반 동안 박스권에 갇혀 방향성 없이 횡보하다 최근 다시 3000을 돌파했다. 이 소식은 단순한 숫자의 회복이 아니라 잊혔던 시장에 대한 신뢰의 복원, 그리고 한국 자본시장이 다시 한번 자기 가치를 세계에 묻기 시작한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수년간 한국 주식시장은 ‘저평가의 늪’에 머물러 있었다. 낮은 주가순자산비율(PBR), 복잡한 지배구조, 미흡한 주주환원, 북한 리스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국내 상장기업들의 실적 대비 주가 수준은 글로벌 평균을 한참 밑돌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새 정부는 취임 직후부터 자본시장에 대해 기업가치 제고, 자본시장 개혁, 장기투자 유도라는 일관된 세 가지 방향성을 제시했다. 이러한 기조는 시장에서 곧바로 반응을 일으켰고, 주가 수준의 ‘절대 레벨’을 바꾸는 신호로 작용하고 있다.

외국인 매수세가 뚜렷해졌고 기관 자금도 복귀했다. 기업설명회(IR)는 형식이 아니라 전략이 됐고, 자사주 소각과 배당 확대는 전례 없이 빠른 속도로 확산하고 있다. 몇몇 대형 기업은 ‘자기자본이익률(ROE) 10% 이상 유지’를 경영의 최우선 목표로 내걸었다.

한국 주식시장의 리레이팅(Re-rating)은 곧 ‘시장이 기업을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 전환은 정책, 기업, 투자자 세 주체의 삼각 균형에서 비롯된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시장이 곧장 좋아지라는 법은 없다. 그러나 정책의 방향성과 기업의 행동이 맞물리면 시장은 빠르게 반응한다. 코스피 3000은 그런 정책-기업-투자자의 ‘심리선’이 교차하는 자리다.

2025년, 한국 주식시장은 다시금 자신을 평가받는 자리에 서 있다. 이제는 ‘왜 저평가됐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제 가치를 인정받을 것인가’를 말할 시점이다. 그 변화의 중심에는 정책과 기업이 있고, 그 변화를 지속 가능한 신뢰로 연결할 책임은 우리 증권업계에 있다고 생각한다. 고객이 시장을 신뢰할 수 있는 시스템을 증권사가 먼저 만들어야 한다. 투자자 경험이 바뀌어야 시장의 체질도 바뀐다.

리레이팅은 지수가 아니라 신뢰로 만들어진다. 정책에 대한 기업의 신뢰, 시장에 대한 투자자의 신뢰가 있다면 코스피 3000은 끝이 아니라 가치를 새롭게 쓰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내가 직장생활을 시작할 무렵 꿈의 숫자였던 코스피 1000이 지금은 아주 먼 과거의 일이 되어버린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