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기 받는데 6년…신규노선 못 띄울 판"

입력 2025-06-30 16:10
수정 2025-06-30 16:32
항공기 주문부터 인도까지 걸리는 기간이 갈수록 길어지고 있다. 코로나19로 무너진 공급망이 온전히 회복되지 못한 탓이 가장 크다. 미국 보잉과 유럽 에어버스의 항공기를 주문해도 받지 못하면서 국내 항공업계는 유지비가 많이 드는 낡은 기체를 계속 쓰거나 신규 노선 증편에 차질을 빚고 있다.

◇ 주문부터 인도까지 6년30일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에 따르면 올해 항공기 주문부터 인도까지 걸리는 기간은 약 6년으로, 1년 전(5년4개월)보다 8개월 늘었다. 코로나19 팬데믹 직전인 2019년(4년6개월)과 비교하면 6년 만에 1년6개월이나 더 길어졌다.

항공기 제작기간이 길어진 탓에 항공기 제작사의 ‘수주 잔량’도 빠른 속도로 쌓이고 있다. IATA는 올해 글로벌 항공기 수주 잔량이 1만7000대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코로나19 직전(1만 대 수준)과 비교하면 1.7배로 늘어났다. IATA는 현재 쌓인 수주 잔량을 다 인도하는 데 14년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인기 기종인 보잉 737의 연간 인도 물량(265대) 대비 수주 잔량(4860대)을 고려하면, 지금 새로 주문을 넣을 경우 20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계산도 나온다. IATA는 2030년까지 공급 지연 사태가 풀리지 않을 것이라며 올해 항공업계 순이익 전망치를 366억달러(약 50조원)에서 360억달러(약 49조2000억원)로 낮췄다.

항공기 도입이 늦어지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우선 코로나19 당시 무너진 공급망이 회복되지 못한 영향이 가장 크다. 당시 보잉과 에어버스를 비롯해 여러 부품사가 공장 문을 닫아 상당수 숙련 근로자가 빠져나갔다. 실제로 에어버스는 미국 CFM인터내셔널에서 엔진을 제때 납품받지 못해 공장을 100% 가동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항공기의 필수 원자재인 티타늄과 니켈 수급에 차질이 생긴 것도 영향을 미쳤다. 작년 말 16년 만의 파업으로 보잉이 두 달간 공장 문을 닫은 것도 한몫했다. ◇ 국내 항공사들도 타격양대 항공기 제조업체의 생산 차질은 국내 항공사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대한항공은 연내 보잉 항공기 30대를 들여오기로 했지만, 최근 2027년으로 늦췄다. 아시아나항공도 지난해 에어버스 여객기 30대 도입 기한을 2031년으로 미뤘다. 제주항공은 계약상 보잉 여객기 40대를 전부 넘겨받는 시점이 2027년이지만 실제론 2029년에나 인도가 끝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손발이 묶인 항공사들은 연비가 떨어지고 정비에 많은 돈이 들어가는 노후 여객기를 계속 쓰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공급 부족으로 항공기 리스료가 2019년보다 30%가량 오르면서 재무 부담도 커지고 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항공기 도입 시점에 맞춰 신규 노선을 취항하려던 계획에 차질이 생길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 부품 관세에 공급망 불안 가중7월 초 미국의 항공부품 관세 정책이 나오면 항공기 제작기간은 더 늘어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항공기 제작은 글로벌 분업 체계 아래 이뤄진다. 보잉의 대표 기종인 B787 한 대에는 부품 약 230만 개가 들어가는데 이 중 30%가 외국산이다. 동체는 이탈리아(알레니아), 날개는 일본(가와사키), 엔진은 영국(롤스로이스) 등에서 들여오는 식이다.

최근 미국 항공기 부품사 하우멧에어로스페이스는 보잉과 에어버스에 “관세로 일부 부품 납품이 중단될 수 있다”고 공지하기도 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발표 이후 주요 항공업체가 납품 중단을 경고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대한항공도 날개 등의 부품을 생산해 미국과 유럽 항공기 제조사들에 납품하는 만큼 관세 부과로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은 6월 2일 IATA 연차총회에서 참석해 “이(관세) 문제는 대한항공에도 매우 중요하다”며 “(관세가) 기업 활동에 큰 혼란을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대부분 항공기 부품은 1980년 미국 등 30여 개국이 체결한 민간항공기협정(TCA)에 따라 무관세가 적용된다.

양길성 기자 vertig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