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석 이사장 "진리 탐구 방법 담긴 고전, 리더 양성의 교과서죠"

입력 2025-06-26 17:31
수정 2025-06-27 00:58

지난해 12·3 계엄 때는 존 로크의 ‘삼권 분립’과 알렉시 드 토크빌의 ‘미국 민주주의’를 공부했다. 공자, 맹자, 한비자 등 동양 철학을 독파하며 국가와 시민의 관계에 대한 고민도 나눴다. 고전 읽기만이 아니다. 정치·경제적 자유, 저출생 고령사회, 인공지능(AI) 등 최신 시사를 놓고 토론과 조별 발표도 이어간다. 고전의 지혜를 빌려 현대사회 문제 해결능력을 기르는 20대의 지식 공방 ‘아름다운서당’ 이야기다.

4년째 이곳 총괄을 맡고 있는 정병석 이사장은 지난 25일 “인문학을 통해 20대 청년들을 리더로 육성하는 게 아름다운서당의 기본 과정”이라고 소개했다. 그래서 아름다운서당의 영문명은 ‘영 리더스 아카데미’다. 20주에 걸쳐 매주 토요일 하루를 꼬박 함께 보낸다. 초빙 강사들 이론 강의는 10분 이내로 짧게 하고 질의응답과 토론, 발표로 하루를 채운다. 리더 양성을 목표로 하는 만큼 토론과 발표 능력을 기르는 것을 우선시한다.

지난해 응모한 35명 가운데 28명이 면접을 통과해 수강생으로 뽑혔다. 이 중 성실하게 커리큘럼을 끝마치고 수료증을 받아간 학생은 17명이다. 올해도 수도권 4년제 대학 재·휴학생을 대상으로 오는 29일까지 수강생 서류를 접수한다.

2005년 시작한 아름다운서당은 올해로 설립 20주년을 맞았다. 대우그룹 임원 출신으로 김우중 전 회장의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를 기획한 서재경 초대 이사장이 세웠다. 수업료는 ‘0원’인데, 읽어 와야 할 고전 책까지 사서 무료로 나눠준다. 서당 운영비는 정 이사장을 포함한 운영진과 수료생들의 기부, SK에너지 등 몇몇 기업의 후원으로 메운다. 서울석유는 서울 장충동 본사 건물을 매주 토요일 무료로 빌려준다.

정 이사장은 서울대 무역학과를 졸업하고 1975년 행정고시 17회로 공직에 입문했다. 노동부 고용정책과장, 근로기준국장 등을 거쳐 노무현 정부 때 노동부 차관을 지냈다. 관료 시절 고용보험법을 최초로 법제화하는 데 기여했다. 퇴직 후 거액에 관료들을 ‘모셔간다’는 로펌이나 대형 노무법인 대신 학자의 길을 택했다.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 젊은 인재와 호흡하는 것이 행복하게 나이 드는 길’이라는 이유에서다. 한국기술교육대 총장을 거쳐 한양대에서 경제사, 경제성장론 등을 강의했다. 서 전 이사장 권유로 4년 전 바통을 이어받았다.

그는 지식 나눔에 그치지 않고 학생들의 가족관계, 이성 교제, 진로와 관련한 고민도 상담해준다. 학습에 그치지 않고 감정적 유대도 함께하기 위해서다. 그는 “수료생들이 대학 졸업 후 취직을 하고서도 스터디를 이어가고 후배들을 지원할 만큼 유대감이 남다르다”고 소개했다.

다시 그에게 ‘왜 리더를 기르는 데 인문학과 토론이 필요하냐’고 반문했다. 정 이사장은 “AI 시대는 지식과 기술의 축적만으로는 경쟁력을 갖추기 어렵다”며 “통찰력과 논리, 창의성은 훈련을 통해 길러지는데, 변증법이나 소크라테스식 문답법 같은 고전 속 진리 탐구 방식이 유용한 도구”라고 설명했다.

“책 읽는 과정이 힘들기 때문에 AI를 활용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학생들이 반대하더군요. 고되더라도 여기서나마 ‘AI 도움 없는 책 읽기’를 하고 싶다는 게 학생들의 요구였습니다.”

박종필 기자 j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