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진한 접대' 日도 고객 갑질 안 봐준다

입력 2025-06-25 17:47
수정 2025-06-26 00:33
일본 ‘오모테나시’(환대)의 상징인 서비스업계 직원들의 친절함은 세계적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하지만 일본에서 ‘고객 갑질’이 사회 문제화하면서 기업은 이제 직원을 어떻게 보호할지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도쿄도는 지난해 10월 일본 지방자치단체 중 처음으로 ‘카스하라’ 방지 조례를 제정해 올해 4월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카스하라는 영어 단어 ‘고객’(customer)과 ‘괴롭힘’(harassment)의 일본식 발음인 ‘카스타마’와 ‘하라스멘토’의 앞부분을 결합해 만든 신조어다. 도쿄도는 조례에서 카스하라를 ‘고객이 업무와 관련해 직원을 현저하게 괴롭히는 행위’로 규정하고 이를 막기 위한 대응을 하도록 했다.

도쿄도가 조례까지 제정한 것은 일본 사회에 그만큼 고객 갑질이 만연해 있다는 방증이다. 일본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무릎 꿇리기’ 등 고객에게 갑질을 당해 우울증 등 산업재해를 인정받은 피해자가 2023회계연도에만 52명에 달했다. 일본 최대 노동조합 ‘렌고’가 2022년 실시한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36.9%가 최근 5년간 고객 갑질이 “증가했다”고 답했다.

이에 고객과의 접점이 많은 기업은 직원을 보호하기 위해 대응에 적극 나서고 있다. 패밀리마트는 고객이 SNS를 통해 종업원 이름을 지목하며 비방하는 것을 막기 위해 명찰에 이름 대신 이니셜만 표기하는 것을 허용했다. 전일본공수(ANA)는 전화 상담에서 “죽고 싶냐” 등 폭언을 퍼붓거나 공항에서 무단으로 직원 얼굴을 촬영하는 행위 등을 갑질로 규정했다. 그러면서 고객의 괴롭힘 수위가 올라가면 경찰에 신고하기로 했다.

기업이 직원 보호에 나서는 것은 일손 부족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저출생·고령화로 인력 부족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고객 갑질이 서비스업계 등에서 직장을 그만두는 주요 원인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달 4일엔 고객 갑질에 따른 피해 대책 마련을 기업에 의무화하는 노동시책종합추진법 개정안이 참의원(상원) 본회의를 통과했다. 노동시책종합추진법은 원래 직장 내 갑질 방지 규정 등을 담았다. 개정법은 ‘누구라도 직장 내 취업 환경을 해치는 언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과 고객 갑질 대응 방침 명확화 등 기업 의무 규정을 추가했다. 카스하라에 대한 형사처벌 규정은 두지 않았으나 의무 규정을 위반한 기업에 행정지도 등을 하고, 개선하지 않으면 기업명을 공표할 수 있도록 했다. 개정법은 공포 후 1년6개월 내 시행될 예정이다.

도쿄=김일규 특파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