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대 초, 리복은 누구보다 먼저 ‘크로스핏’에 베팅했다. 당시 생소한 종목이었지만, 리복은 전용 신발 ‘나노’를 출시하며 ‘크로스핏=리복’이라는 인식을 전 세계 박스에 각인시켰다. 나이키와 아디다스가 전통 스포츠에 집중할 때 리복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 푸마의 행보가 그때의 리복을 떠올리게 한다. 푸마는 하이록스라는 신생 종목에 뛰어들었다. 과연 이 선택은 선점의 기회가 될까, 아니면 아직 검증되지 않은 모험에서 그칠까.
▶‘하이록스화’의 등장하이록스는 8㎞ 러닝과 8개의 기능성 운동으로 구성된 피트니스 레이싱 경기다. 달리기와 웨이트를 동시에 요구하는 하이브리드 경기인 만큼, 신발 역시 기존 러닝화와는 다른 조건을 필요로 한다.
푸마는 이러한 니즈에 맞춘 전용 신발을 선보이고 있다. 최근 출시된 ‘디비에이트 나이트로’ 시리즈의 하이록스 리미티드 에디션에는 질소 주입 반응 폼 ‘나이트로폼’과 고밀착 고무소재 ‘푸마그립’ 기술이 적용됐다. 빠른 반응성과 가벼운 쿠셔닝으로 장거리 러닝에 적합하면서도, 슬레드 푸쉬나 월볼 샷 같은 고강도 트레이닝 종목에서도 안정적인 접지력을 제공하도록 설계된 것이다.
출시 이후에는 “러닝화면서 데드리프트도 가능한 유일한 신발”이라는 운동 인플루언서 맷 초이의 평가를 비롯해, 다양한 유명 운동인들의 호평이 이어졌다.
푸마와 하이록스의 인연은 201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푸마는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린 첫 하이록스 대회부터 현지 파트너로 참여했으며, 지난해 6월에는 양사가 글로벌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이에 따라 푸마는 2027년까지 모든 하이록스 대회의 공식 신발 및 의류 파트너로 활동할 예정이다.
하이록스 공동 창업자 모리츠 퓌르스테는 “기존 스포츠웨어 브랜드들은 러닝, 농구, 트레이닝 같은 범주 안에서 움직여 왔지만, 사실 ‘트레이닝’이라는 영역은 굉장히 모호하다”며 “하이록스는 이를 구체화한 새로운 글로벌 버티컬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피트니스 레이싱이라는 새로운 장르가 스포츠웨어 업계에서 독립된 카테고리로 자리잡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리복-크로스핏’과 닮아있다?이러한 흐름은 리복과 크로스핏의 전례를 떠올리게 한다. 크로스핏이 한창 인기를 끌던 시기 리복은 그 누구보다 앞서 스폰서로 10년 독점 계약을 맺었다. 크로스핏의 인기가 폭발적으로 상승하면서 리복은 빠르게 수혜를 봤다. 당시 나이키와 아디다스가 축구, 농구 등 전통 스포츠에 집중하고 있을 때 리복은 틈새시장을 노려 성공한 것이다.
대표 제품인 ‘리복 나노’ 시리즈는 접지력, 안정성 내구성 등 크로스핏에 최적화된 기능으로 차별화에 성공해 브랜드의 존재감을 키웠다.
하지만 2020년 크로스핏 창립자 그렉 글래스먼이 조지 플로이드 사건을 두고 “It’s FLOYD?19”라는 트윗을 올려 인종차별 논란에 휘말리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리복은 즉각 재계약 중단을 선언했고, 크로스핏과의 파트너십은 종료됐다. 이후 나이키, 노블(NOBULL) 등 새로운 브랜드들이 크로스핏 시장에 진입해 공백을 메웠다.
이 사건은 특정 파트너 중심의 브랜드 전략이 얼마나 큰 리스크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였다. 푸마 역시 하이록스와 함께 급성장 중인 피트니스 레이싱 시장에 진입했지만, 예상치 못한 외부 변수에 따라 리스크가 현실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혜인 기자 he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