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코드 F19.2’. 마약중독 환자를 치료할 때 의사들이 선택하는 진료코드다. 마약 중독은 단순한 사회 범죄를 넘어 치료해야 할 질환이다. 하지만 여전이 이에 대한 인식은 높지 않다는 평가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마약을 쉽게 ‘소비’하는 문화까지 확산하고 있다. 이런 행동을 ‘사회적 일탈’로만 치부해선 사회 저변에 확산한 마약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의 마약 중독 대응 패러다임이 단순한 ‘범죄 단속’에서 ‘치료와 회복’으로 바뀌고 있는 이유다. ◇ 대국민 예방 교육 확대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정부의 마약 중독 정책에서 맞춤형 예방 교육 비중은 점차 높아지는 추세다. 식약처는 교육부, 여가부 등 관계부처와 협력해 청소년, 유흥주점 영업자, 군인 등에 대한 맞춤형 예방교육을 확대하고 있다. 대국민 마약류 예방교육을 받은 국민은 2023년 69만명에서 지난해 228만명으로 급증했다. 같은 기간 교육 건수도 8750건에서 3만2206건으로 늘었다. 마약 등에 노출될 위험이 높은 계층을 중심으로 사전 교육을 확대했다는 의미다.
국내 젊은 층을 중심으로 마약류를 접촉하는 기회는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국제우편·특송화물은 물론 해외여행을 통해 호기심 등으로 마약에 손대는 젊은 층이 많아졌다. 발신자 추적이 힘든 텔레그램 등 SNS와 다크웹 등도 불법 마약류 거래의 온상이 되고 있다. 어린 시기에 의료용 마약류를 접하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치료제 등 의료용 마약류를 ‘공부 잘하는 약’으로 인식하는 등 사회적 경각심까지 낮아졌다. 정부는 이렇게 곳곳에 퍼진 마약 노출 위험으로부터 안전한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맞춤형 교육 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대검찰청 마약 단속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마약 사범은 2023년에 이어 2년 연속 2만명을 넘었다. 지난해 대학생이 포함된 마약사범은 7515명으로 전체 마약류사범 중 가장 큰 비중(32.6%)을 차지했다. 이들에게 마약류의 위험성을 알리는 교육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식약처는 메타버스·가상현실(VR) 기술은 물론 교육극, 뮤지컬, 학습만화·웹툰, 애니메이션, 예방부스 프로그램 등도 적극 활용하고 있다. MZ세대의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 유튜버와 협업에도 나서고 있다.
이런 맞춤형 홍보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평가다. 식약처의 마약 퇴치 모토인 ‘Be Brave(마약, 거절할 용기)’ 시리즈로 구성된 유튜브 영상물의 조횟수는 100만~200만회를 넘었다. 인스타 조횟수는 500만회를 넘을 정도로 젊은층 사이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 ◇ 사회재활 지원도 확대식약처는 마약 중독자를 위한 사회 재활 지원 체계도 확대하고 있다. 이들이 일상 생활로 복귀해 다시 마약에 손대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지난해 3월 마약 중독자들이 24시간 상담받을 수 있는 ‘1342용기한걸음센터 운영’을 시작했다. 마약류에 대한 고민이 있는 국민 누구나 시·공간 제약 없이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전화 상담을 제공하고 있다. ‘당신의 일상(13) 24시간 사이(42) 모든 순간 함께하겠다’라는 의미를 담았다. 지난해 이 전화상담 건수는 4502건으로 마약류 중독자의 건강한 일상 회복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는 평가다.
같은해 10월엔 마약중독자들의 사회재활서비스를 제공하는 ‘함께한걸음센터’를 전국에 설치했다. 2023년 서울과 부산, 대전 등 3곳만 운영되던 이 센터는 지난해 전국 17개 센터로 확대됐다. 같은 기간 사회재활서비스 제공 건수도 1만4758건에서 2만3908건으로 늘었다. 불법 마약은 물론 의료용 마약 등에 대한 고민을 상담하고 결과에 따라 중독자는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필요하면 정신건강의학과 등 병원 치료서비스도 연결해준다. ◇ 의료용 마약류 오남용 해결에도 앞장식약처는 마약류 투약 사범 중 기소 유예 대상자에겐 적절한 치료·재활 기회를 제공해 재범을 막는 데에도 집중하고 있다. 식약처가 마약사범을 대상으로 사전 상담을 한 뒤 전문가 위원회에서 의견을 전하면 검찰이 조건부 등의 기소유예 처분을 하게 된다. 이후 법무부와 보건복지부, 식약처가 보호관찰과 치료·사회재활을 진행한다. 이를 판단하는 전문가위원회는 2023년 7건 열렸지만 지난해 18건 개최됐다. 제도 대상자는 같은 기간 22명에서 160명으로 늘었다. 마약류 예방·재활 서비스의 질을 높이기 위해선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는 마약류 예방·재활 전문인력 인증제로 보완하고 있다.
의료용 마약류 오남용을 차단하기 위해서도 애쓰고 있다. 지난해 6월 ‘좀비마약’으로 불리는 펜타닐을 처방할 땐 환자 투약 내용을 의무적으로 확인하는 제도가 시행됐다. 시스템을 사용하는 의사 숫자는 2023년 1503명에서 지난해 2만4124명으로 급증했다. 같은 기간 조회건수도 12만4703건에서 158만2244건으로 크게 늘었다.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을 통해 처방정보를 분석한 뒤 졸피뎀 등 마약류의 ‘오남용 방지를 위한 조치사유’를 벗어나 처방한 의사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사전 알리미’ 제도도 2022년 이래로 시행중이다.
식욕억제제와 프로포폴, 졸피뎀, 항불안제, 진통제 등을 과다 처방하는 의료진 등에겐 주의정보도 발송하고 있다. 지난해 9월엔 의사단체와 협의해 ADHD 치료제인 ‘메틸페니데이트’ 오남용을 막기 위한 조치기준도 새롭게 만들었다. ◇ 의료인 프로포폴 셀프처방 금지 나서식약처는 그동안 진행한 마약류 대응책에 더해 후속 제도 개선 속도도 높이고 있다. 올해 2월부터 의료인이 프로포폴 성분의 의약품을 스스로 처방하지 못하도록 한 게 대표적이다. 프로포폴은 오남용 우려가 큰 의료용 마약류 마취제로 분류된다. 제도 시행 효과를 높이기 위해 이전에 ‘프로포폴’을 스스로 처방한 이력이 있는 의사 등을 대상으로 직접 안내하는 등 홍보를 강화했다.
의사가 약물을 처방하기 전 투약이력을 확인하도록 한 마약류 성분도 꾸준히 늘릴 계획이다. 펜타닐에 이어 ADHD치료제와 식욕억제제 성분도 오남용·중독 우려가 높은 의약품으로 분류해 투약이력을 확인하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펜타닐은 처방이력을 확인하도록 한 제도 시행 후 처방량이 계속 줄어드는 추세다. 지난해 3월 기준 펜타닐 패치 처방량은 21만1065매였지만 올해 3월엔 19만5934매로 7% 가량 줄었다. 펜타닐 처방 환자수는 올해 1월 기준 2만2029명으로 지난해 1월 2만6219명에서 감소했다. 사회적 이슈 등을 고려해 의사단체 등과 투약이력을 확인하도록 한 성분·제형 등을 늘리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식약처는 처방 SW와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을 연계해 쓸 수 있도록 성분별 ‘연계조회시스템 개발 가이드’도 마련해 배포했다.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NIMS) 빅데이터를 활용해 과다처방 등 오남용이 의심되는 의료기관은 집중 점검하고 있다. 식욕억제제는 처방이 급격히 늘어나는 하절기에, ADHD 치료제는 수능을 앞둔 기간 등에 점검을 강화하고 있다.
마약류 중독·오남용에 대한 예방교육을 이전보다 확대하고 추가 콘텐츠도 개발할 계획이다. 1342용기한걸음센터를 통해 집중 관리가 필요한 중독자를 발굴한 뒤 함께한걸음센터 등 재활 서비스로 연계하는 프로그램도 강화한다. 전국 함께한걸음센터에서 소년원, 교정시설, 청소년쉼터, 정신재활시설 등으로 찾아가는 상담을 확대할 방침이다.
식약처는 작년 9월부터 ‘마약류 예방·재활 전문인력 인증제’를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총 115명을 배출하였다.
또한 올해에도 마약류 예방·재활 전문가 양성을 위한 인증제 필기시험을 7월 중 실시할 예정이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