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을 정당하게 판단할 것과 재판장이 설명하는 법과 증거에 의해 진실하게 판결할 것을 엄숙히 선서합니다.”
24일 오전 11시 서울중앙지방법원 서관 417호 법정에 선 국민참여재판 배심원들은 1번 배심원이 낭독하자 모두 오른손을 들고 선서했다. 방청석에는 재판 과정을 유심히 지켜보는 ‘그림자배심원’들이 자리했다. ◇참여재판에 ‘그림자배심’ 병행
서울중앙지법 형사23부(재판장 오세용 부장판사)는 이날 전기통신금융사기피해방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의 국민참여재판을 진행하며 일반 시민으로 구성된 그림자배심을 함께 운영했다.
그림자배심 제도는 2008년 국민참여재판 제도 시행 이후 2010년 9월 도입됐다. 그림자배심원은 평의·평결을 통해 재판부에 의견을 전달하는 정식 배심원단과는 별도로 방청석에서 재판을 지켜본 뒤 모의 평의·평결에 참여한다. 판결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지만 제도에 대한 시민 이해를 돕고 법 감정을 반영하려는 목적에서다.
이날 재판은 사위 특혜 채용 의혹으로 뇌물수수 혐의를 받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 최근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한 시점과 맞물려 주목받았다. 검찰은 재판 효율성을 이유로 불허를 주장하고 있으며, 재판부는 9월 9일 2차 공판준비기일에서 적용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국민참여재판이나 그림자배심 등을 통한 시민의 사법 참여 확대는 사법제도의 신뢰를 높일 방안으로 주목된다.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국민참여재판은 국민과 사법부가 소통하는 장으로 기능하며 신뢰를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며 “다각적인 활성화 방안을 모색해 시행할 계획”이라고 했다. ◇신청률 0.03%…제도 개선 시급법조계에서는 국민참여재판 실효성 제고를 위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023년 전국 법원이 접수한 국민참여재판 신청은 674건에 그쳤다. 같은 해 1심 합의부 전체 형사사건(2만1497건) 대비 신청률은 0.03%에 불과하다. 신청 사건이 국민참여재판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드물다. 연간 1500건이 넘는 형사사건이 접수되는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부에서는 지난해 3건만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됐다.
법원의 국민참여재판 기피 관행도 문제다. 2021~2023년 국민참여재판 배제 비율은 평균 33.3%에 달했다. 신청 사건 세 건 중 한 건은 배제되는 셈이다. 배제 사유가 법률에 명시돼 있긴 하지만 ‘적절하지 아니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등 재량에 의존하는 조항 때문에재판부 판단에 좌우되는 구조다. 국민의 제도 이해 제고와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2023년 전체 신청 중 피고인이 신청을 철회한 사례는 407건으로 55.9%에 달했다. 충분한 설명을 듣지 못한 채 일단 신청했다가 이후 철회하는 경우가 많다.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일본은 2009년 재판원제도 도입 후 현재 매년 1000건 넘게 진행될 정도로 정착됐다”며 “그림자배심과 같은 방식으로 국민의 관심과 이해를 높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4월 고의 생명침해범죄 등을 국민참여재판 의무 대상에 포함하는 내용의 국민참여재판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황동진 기자 radhw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