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바이오벤처 대표주자였던 브릿지바이오의 추락이 남긴 화두는 결코 가볍지 않다. 대주주가 바뀌고, 암호화폐 기업으로 간판까지 바꿔 달았다. 임상 실패가 근본적인 원인이다. 이 회사가 개발하던 특발성 폐섬유증 치료제는 글로벌 블록버스터 후보로 지목받았지만 최근 글로벌 임상 2상에서 효능을 입증하지 못했다.
임상 실패는 제약·바이오 업계에선 일상적인 일이다. 신약 개발 성공 확률이 통상 10%도 안 되는 탓이다. 글로벌 제약사들도 다반사로 임상 실패를 경험한다. 신약 개발사의 숙명이다. 그런데도 브릿지바이오가 파탄으로 내몰린 데는 제도적 요인이 한몫했다. 바로 코스닥시장 상장 유지 조건이다. 브릿지바이오 주식은 지난 3월 관리종목으로 지정됐다. 법인세비용차감전계속사업손실(법차손)이 2개 사업연도 연속으로 자기자본의 50%를 초과해서다. 자본 확충 등으로 법차손을 해소하지 못하면 1년 뒤 상장폐지될 수 있는 상황이다.
브릿지바이오는 임상에 성공하면 이런 문제가 단번에 해결될 것으로 봤다. 하지만 그 기대는 빗나갔고 자본 확충 계획은 물거품이 됐다. 암호화폐에 특화된 미국 투자운용사에 경영권을 넘긴 배경이다.
브릿지바이오 사태는 바이오업계에 숙제를 남겼다. 신약으로 돈을 벌기 전까지는 화장품이나 빵집 같은 사업을 병행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걸 확인시켜줬기 때문이다. 나스닥에 상장하고 10년 넘게 빌빌거리다가 신약 개발에 성공하고선 기적처럼 글로벌 제약사로 성장한 길리어드사이언스 같은 성공 사례를 코스닥시장에선 기대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투자자들의 바이오 불신도 더 깊어지게 생겼다. 제2의 브릿지바이오가 될지도 모르는 바이오벤처에 투자하기가 꺼려질 수밖에 없어서다. 새 정부 출범 후 주가 흐름이 이를 방증해준다. 미국과의 무역 갈등, 이스라엘·이란 전쟁 등의 악재에도 코스피지수는 10% 이상 올랐지만 KRX 헬스케어지수는 2% 상승하는 데 그쳤다.
최근 미국 보스턴에서 열린 세계 최대 바이오 박람회 ‘바이오 USA’에서도 한국의 바이오 경쟁력이 도마에 올랐다. 삼성, SK, 셀트리온 등 대기업들이 선전하고 있지만 바이오벤처들의 경쟁력은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신약 개발 경쟁력에서 한국이 중국에 뒤처진 지는 오래다. 이제는 후발국인 인도네시아 태국 등에도 추월당할 처지다. 우리가 주춤하는 사이 후발국들의 발전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졌다는 게 전문가들의 전언이다.
바이오업계가 보는 골든타임은 3~5년밖에 남지 않았다. 지금처럼 손 놓고 있다가는 바이오 후진국으로 추락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해 있다. 정부가 지금이라도 산업 육성 액션플랜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다만 바이오를 미래 성장 동력으로 키우겠다면서도 의견 수렴 수준의 논의만 거듭해온 과거 정권들의 전철을 되풀이해선 곤란하다. 분위기를 파악하느라 시간 낭비할 여유가 없다. 세부 계획을 짜고 실행에 나서야 한다. 연구개발비 증액부터 바이오산업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다양한 전략이 나와야 한다. 불합리한 상장제도 개선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래야 우리에게 미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