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ESG] 스페셜 리포트 ① 국내 ESG 분야 리더 10인의 제언
새 정부 출범을 맞아 국내 ESG(환경·사회·지배구조)업계 리더 10인이 ESG 정책의 방향성에 대해 제언했다. 이번 제언에는 김주진 기후솔루션 대표, 김태희 프랭클린템플턴 한국법인 대표, 마리 안토니아 폰 쉔부르크 주한독일상공회의소 대표, 이민아 뉴톤 주식회사 전략총괄 부사장(CSO), 이민호 법무법인 율촌 ESG연구소장, 이선경 그린에토스랩 대표, 이인성 그린피스 기후에너지 팀장, 이종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사무국장, 오승재 서스틴베스트 대표, 하지원 에코나우 대표(이상 이름 가나다순) 등 각계 전문가들이 참여했다.
이들은 새 정부가 출범 초기부터 ESG 정책의 명확한 방향성을 제시하고, 글로벌 기준에 부합하는 정책과 제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 기후 위기 대응, 지속가능한 산업 전환, 사회적 책임경영 촉진, 정보 공시 투명성 확보 등을 위한 구체적인 로드맵 수립과 민관 협력을 당부했다. 이번 제언은 <한경ESG>가 국내 ESG 정책의 수준을 높이고, 기업과 투자자들이 예측 가능한 환경에서 지속가능 경영을 추진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한 취지에서 마련됐다.
① 김주진 기후솔루션 대표
“AI·반도체 등 육성 위해 청정 전력 공급 중요”
“이재명 대통령이 1호 공약으로 내세운 인공지능(AI),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청정하고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AI는 미래 기술로 각광받지만, 동시에 막대한 전력이 필요합니다. 이 전력을 석탄이나 가스처럼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발전원으로 충당한다면, 역설적이게도 미래 기술로 인해 우리 미래가 위태로워질 수 있습니다. 특히 반도체 산업의 경우 애플 등 주요 구매 기업이 공급망 탈탄소를 목표로 하고 있기에 재생에너지 기반의 생산 체계를 갖추지 못하면 우리 산업에 경쟁력이 아닌 부담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따라서 정부는 석탄발전 퇴출 시점을 기존에 공약했던 2040년에서 2035년으로 앞당기고, LNG 전환이라는 ‘우회’가 아닌 재생에너지 확대라는 ‘직진’ 전략을 택해야 합니다. AI·반도체 산업과 더불어 철강 등 수출 주력 산업도 탄소 다배출 구조에서 벗어나 탄소중립을 달성함으로써 재도약을 꾀해야 합니다. 이때 재생에너지 기반의 그린 수소는 우리 산업의 새로운 경쟁력이 될 수 있습니다. 또 정부는 재생에너지 기반 반도체 국가산단을 조성하고, 녹색 철강 수요를 창출하며, 수소환원제철과 e-메탄올 같은 지속가능한 미래 기술에 대한 R&D 투자도 적극 확대해야 합니다.”
② 김태희 프랭클린템플턴 한국법인 대표
“ESG 공시 의무화 로드맵 조속히 확정해야”
“ESG 공시 의무화 로드맵을 조속히 확정하고 실행력을 높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글로벌 기준과의 정합성을 적기에 맞추지 못할 경우 한국 시장의 매력이 상대적으로 약화될 수 있으며, 이는 정부의 밸류업 프로그램과 상법개정을 통한 자본시장 활성화 정책에도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연기금 중심으로 진행돼온 ESG 투자를 더욱 확대하고 활성화할 수 있도록 세제 혜택 등 실효성 있는 인센티브 마련이 필요합니다. 가상자산 시장의 건전한 발전과 책임 있는 시장 운영 체계를 마련하는 것도 금융시장 거버넌스 강화 측면에서 ESG 정책과 접점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지배구조 개선 역시 규제 중심보다는 유인책과 병행하는 균형 있는 접근이 바람직합니다.”
③ 마리 안토니아 폰 쉔부르크 주한독일상공회의소 대표
“예측 가능한 비즈니스 환경 조성되어야”
“한국이 새 정부와 함께 새롭게 출발하는 시점에서 주한 독일 기업은 투명하고, 안정적이며, 예측 가능한 비즈니스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노력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규제의 명확성 제고, 해외 투자자와의 열린 대화 유지, 혁신과 지속가능한 성장을 뒷받침하는 정책 추진은 한국의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는 기반이 될 것입니다. 특히 한국의 신속한 혁신 역량과 독일의 깊은 산업 전문성은 미래지향적 파트너십을 구축하는 데 최적의 조합이며 에너지 전환, 지속가능한 모빌리티, 직업교육 등 양국 간 협력 확대의 기회가 크다고 봅니다. 주한독일상공회의소는 양국 경제 협력 강화를 위한 든든한 가교 역할을 할 것입니다.”
④ 이민아 뉴톤 주식회사 전략총괄 부사장(CSO)
“기업의 해외 탄소감축 활동, 전략적 지원 필요”
“정부는 파리기후변화협약 제6조를 활용한 기업의 해외 탄소감축 활동을 전략적으로 지원해야 합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국제 감축목표 달성에 어려움을 겪는 만큼 기업이 해외 감축 실적을 국내 목표에 안정적으로 활용하도록 실효적이고 제도적인 기반을 서둘러 마련해야 합니다. 특히 ITMO(국제적으로 이전된 감축 결과물) 적용을 위한 상응 조정 과정에서 감축 실적 공여국과 긴밀하고 일관된 협력 체계 구축이 필수적이며, 이는 기업의 해외 사업의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과감한 투자를 유도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AI 기반의 디지털 MRV 시스템 도입은 감축 실적의 신뢰성과 투명성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전략적 역할을 수행할 것입니다. 이처럼 해외 탄소감축 활동을 위한 정부의 정책적·외교적·기술적 뒷받침이 조속히 마련된다면 우리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이 강화되고, 동시에 대한민국의 탄소중립 리더십을 확고히 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입니다.”
⑤ 이민호 법무법인 율촌 ESG연구소장
“ESG 정책 방향을 조기에 명확히 제시해야”
국내외 불확실성이 심화되면서 지속가능성을 지향하는 ESG 경영과 투자가치가 재부각되고 있습니다. 공약에서 ESG를 강조한 새 정부가 출범한 만큼 실질적 성과로 이어지기를 바라며 몇 가지 정책 제언을 드리고자 합니다.
첫째, ESG 정책의 방향을 조기에 명확히 제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기업과 투자자들이 가장 절실히 요구하는 부분으로, 글로벌 공급망 내 인권 및 환경문제에 대응할 수 있도록 관련 국내 법제를 도입하는 방안도 함께 검토되길 바랍니다. 둘째, 정책이 선언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이행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앞선 정부들 역시 ESG ‘인프라 확충’과 ‘고도화 계획’을 발표했으나, 핵심 과제인 ESG 공시 제도 도입과 ESG 정보 플랫폼 구축이 지연되면서 실행 의지에 의문이 제기된 바 있습니다. 이번 정부에서는 이러한 핵심 과제들이 조속히 추진되기를 기대합니다.
셋째, 기업의 탄소 경영을 적극 지원해야 합니다. 국외 탄소 누출을 방지하고 실질적 온실가스 감축을 실현하기 위해 배출권거래제를 효과적으로 운영하고,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한 탄소 정보 관리 지원도 강화해야 합니다. 아울러 재생에너지와 원자력을 병행 활용하고, 석탄과 LNG는 감축해나가는 합리적 에너지 믹스가 ESG 정책의 기반이 되기를 바랍니다.
⑥ 이선경 그린에토스랩 대표
“ESG 제도 정비로 해외발 규제에 능동적 접근 필요”
그동안 국내 ESG 제도 및 대응은 해외발 규제에 대응하는 소극적인 관점에서 발전해왔습니다. 그러나 새 정부에서는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다양한 문제에 보다 능동적으로 접근함으로써 우리 실정에 맞는 균형 잡힌 ESG 제도로 정비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타국의 제도가 나오길 기다려 이를 수정해 적용하던 기존 관행에서 벗어나, 다양한 현장 실무자의 의견을 수렴한 K-ESG 제도가 K-뷰티, K-컬처처럼 글로벌 시장의 모범 사례가 되길 기대합니다.
⑦ 이인성 그린피스 기후에너지 팀장
“재생에너지 기반의 전력 시스템 전환, 핵심 과제로 삼아야”
“새 정부는 기후 위기 대응과 산업 탈탄소화를 동시에 달성하기 위해 재생에너지 기반의 전력 시스템 전환을 핵심 과제로 삼아야 합니다. 그러나 LNG 감축 로드맵과 메탄 관리 방안은 여전히 부재하며 ‘에너지 고속도로’로 불리는 송전망 확충도 전력 수요 감축 전략 없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최근 AI·반도체 산업의 급성장으로 전력 수요는 폭증할 것으로 예상되며, 국내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재생에너지 전환이 필수임에도 정부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전력 수요를 이유로 신규 LNG 발전소 6기를 추진하고 있는데, 이는 기후 대응에 역행하는 결정이라고 봅니다.
이제는 화석연료 기반의 공급 확대가 아닌, 분산형 재생에너지 중심의 전력 전략으로의 전환이 시급합니다. 최근 독일 본에서 열린 유엔기후변화회의에서는 1.5℃ 목표를 지키기 위한 탄소예산이 고작 3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과학적 경고가 제기됐습니다. 한국은 주요 배출국으로서 국제사회에 걸맞은 감축 책임과 실행력을 보여야 합니다. 새 정부는 지금의 선택이 단순한 에너지 수급 문제를 넘어 국제적 신뢰와 기후 리더십의 시험대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⑧ 이종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사무국장
“지속가능한 경제로 전환하기 위해 ESG 기본법 제정 필요”
“기후 경제, 지속가능한 경제로의 전환은 세계적 흐름이며, ESG는 이 전환의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우리나라가 세계시장으로부터 갈라파고스화되지 않으려면 새 정부는 ‘ESG 선순환 시장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한 법·제도적 인프라를 조속히 구축해야 합니다. ESG 기본법 제정은 이를 위한 구체적 방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생태계 작동의 심장은 ESG 정보이기에 ‘ESG 공시 조기 의무 로드맵’(자산 2조 이상 법인, 2027년부터 법정 공시)이 시급합니다. 올해는 꼭 발표함으로써 불확실성을 해소해주길 바랍니다. 단단한 ESG 정책은 이재명 정부 ‘코스피 5000’의 초석이 될 것입니다.”
⑨ 오승재 서스틴베스트 대표
“조선해운업 밸류 체인 균열 감지...피보팅 전략 요구돼
“우리 조선해운업 현장에서 밸류체인의 균열이 감지되고 있습니다. 국제해사기구(IMO)와 유럽연합(EU) 규제로 인한 친환경 프리미엄은 일부 상위 조선사와 해운사에 집중되는 반면, 중국의 높아진 경쟁력과 청년 인구 감소, 인력 유출 등 구조적 위기는 조선해운업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견·중소업체에 그대로 전가되고 있습니다. 조선해운업은 단순 제조업이 아닌 국가전략 산업입니다. 대전환기에는 ‘규제’보다는 금융 등 ‘인센티브’ 중심의 피보팅(pivoting) 전략이 요구됩니다. 여기에 ESG는 복합적 위기를 다루는 솔루션이 될 수 있습니다.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과 함께 ESG 거버넌스 기능의 해수부 이전도 제안드립니다.”
⑩ 하지원 에코나우 대표
“기후 정책, 기술개발 넘어 실천 가능한 구조로 설계해야”
“기후 정책 수용성은 정책의 성공 여부를 좌우합니다. 기술 발전만으로는 실질적 기후 전환을 이루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합니다. 기후 행동은 시민의 결단이나 희생만으로 이뤄지지 않습니다. 따라서 기후 정책은 기술개발을 넘어 ‘시민이 실천할 수 있는 구조’를 설계하는 일입니다. 인식·수용성·행동을 연결하는 구조를 구축하고, 시민과 정책을 연결해야 합니다. 정책은 시스템을 바꾸고, 시스템은 행동을, 행동은 미래를 바꿀 수 있습니다. 새 정부가 탄소중립 사회의 문을 열고 길을 만들어가는 설계자이며 강력한 시민의 동반자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이미경 한경ESG 기자 esit91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