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최근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기자설명회'에서 "앞으로 공급이 부족할 것이라는 기대가 작용하고 있는 만큼, 수도권 지역에서 공급안이 더 나와야 한다"고 발언했습니다. 집값 급등에 따라 금리 인하 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는 가능성까지 거론했습니다.
이러한 언급만 보면 한국은행 총재가 한 발언인지, 국토교통부 장관이나 한국부동산원 원장이 한 이야기인지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선진국을 보면 중앙은행 총재가 금리 인하를 결정할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하는 사항이 물가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중앙은행 수장은 집값을 금리 인하의 중요 변수로 고려합니다. 모든 경제 상황을 살피는 것이 필요하다고는 하지만, 한국은행이 부동산 시장에 천착하는 것은 또 다른 시장 왜곡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부동산 시장이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쳐온 것은 사실입니다. '주택연구'라는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에는 부동산 시장이 금융통화 위원회의 기준금리 결정 과정에 통계적으로 유의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습니다. 연구의 분석 기간이 2001년 2월부터 2012년 12월까지였지만, 아파트 가격 상승률, 주택담보대출 금리, 가계대출 총액 증가율 등은 현재도 중요한 변수일 것으로 예상됩니다.
한국은행은 대한민국의 중앙은행입니다. 한국은행법에 의해 중립성과 자주성이 보장되긴 하지만, 최근 물가가 불안한 상황에서 물가 안정이라는 본연의 업무에 더욱 충실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한국은행이 6월 공개한 '최근 생활물가 흐름과 수준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인 2021년 이후 올해 5월까지 필수재 중심의 생활물가 누적 상승률은 19.1%에 달해 소비자 물가 상승률(15.9%)보다 3.2%포인트 높았습니다.
한국의 생활물가는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높은 수준입니다. 2023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물가를 100으로 본다면, 우리나라 식료품·의류·주거비는 각 156·161·123으로 집계됐습니다. 세계 주요국 평균을 큰 폭으로 추월할 만큼 비싸다는 뜻입니다. 한국은행의 존재 목적인 물가안정이 여타 선진국들과 비교하면 제대로 실행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특히 상대적으로 높은 생활물가는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체감물가를 끌어올려 소비 위축을 유발합니다. 실제로 2021년 이후 가계의 근로소득이 높은 물가 상승률을 상쇄할 정도로 충분히 늘지 못하면서 평균 실질 구매력은 팬데믹 이전과 비교해 떨어졌습니다.
물가가 이렇게 오르는 있는 상황에서 한국은행이 정부 각 부처에 훈수를 두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물가가 오르는 이유만 늘어놓기보단 물가 안정을 위해 필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실행력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한국은행의 중립성과 자주성은 수많은 국민들의 관심과 투쟁에 의해 힘들게 만들어진 결과물입니다. 본연의 책무를 다하지 않으면서 정부 부처(국토교통부)와 같이 행동한다면 본연의 역할을 포기하겠다는 선언일 뿐입니다. 지금 한국은행은 본업에 충실해야 합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심형석 우대빵연구소 소장·美IAU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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