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투자 읽어주는 남자] 당신의 투자는 자연자본 리스크에 안전한가

입력 2025-07-03 06:02
[한경ESG]- 마켓 데이터



‘물 부족으로 반도체 공장이 멈춘다면…’은 이제 더 이상 가정으로 끝나지 않는다.

대만 TSMC가 2021년 가뭄으로 하루 15만 톤의 물을 트럭으로 운송하며 공장을 가동한 사례는 자연자본 리스크가 얼마나 직접적으로 기업 운영을 위협하는지 보여준다. 지난 5~6월 자연 관련 재무정보공개 협의체(TNFD) 채택 기업이 500개를 돌파하며 57% 급증한 배경에는 이러한 절박함이 있다. 숫자로 보는 충격은 더 크다.

세계경제포럼(WEF)은 글로벌 GDP의 55%인 44조 달러가 자연에 중대하게 의존한다고 분석했다. 더 직접적인 증거도 있다. 생물다양성 리스크가 높은 기업의 대출 부도율이 30% 더 높고, 유럽중앙은행 분석에 따르면 단 10개 은행이 유로존 생물다양성 손실의 40%를 좌우한다. 쿤밍 생물다양성 선언 직후 관련 기업 주가가 즉각 하락한 것은 시장이 이미 자연 리스크를 가격에 반영하기 시작했다는 신호다.

선도 기업의 대응도 주목할 만하다. 볼보 그룹은 2024년 6월 TNFD를 채택하고 원자재 공급망의 생물다양성 의존도를 정량화하기 시작했다. 더 인상적인 것은 호주 포리코의 사례다. 포리코는 파산한 전통 임업 자산을 인수한 후 50%를 생물다양성 보전에 할당하면서도 수익성을 입증했다. 세계 최초로 기후변화 관련 재무정보공개 협의체(TCFD)와 TNFD 통합 보고서를 발간하며 ‘자연 긍정적 접근이 곧 비즈니스모델’임을 증명했다.

일본 리코는 쿤밍-몬트리올 글로벌 생물다양성 프레임워크에 맞춰 2050년까지 자연 긍정 달성과 산림벌채 제로를 목표로 설정했다. 제조업의 물 리스크는 특히 심각하다. 반도체 공장 한 곳에서 하루 1000만 갤런(약 3800만 리터)의 초순수가 필요한데, 1000갤런의 초순수를 생산하려면 1400~1600갤런의 일반 용수를 사용해야 한다. 소니 반도체 나가사키 공장이 제조 폐수의 80%를 재활용하는 것은 단순히 환경을 보호하겠다는 구호가 아닌 비즈니스 연속성 확보 차원이다. 독일의 한 화학·제약 기업이 TNFD 파일럿을 통해 108개 생산시설 중 10개가 핵심 생물다양성 지역 1km 안에 있다는 것을 발견한 사례는 위치 기반 리스크 분석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한국의 현실은 우려스럽다. 940개가 넘는 글로벌 TNFD 포럼 멤버 중 한국 기업은 5개에 불과하다. 상장사 178개 중 TNFD를 언급한 곳은 32개(18%), LEAP 접근법 사용을 선언한 곳은 24개(13.5%)뿐이다. 그나마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물, 폐기물, 생물다양성을 주요 리스크로 식별하고 2025년 시나리오 분석을 계획한 것이 돋보인다. 한국의 ‘오버슈트 데이(Overshoot day, 지구가 한 해 동안 소비할 수 있는 자원을 인류가 모두 소진하는 날)’가 4월 4일로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자원을 소진하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어 제조업이 GDP의 28%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이는 심각한 경쟁력 격차로 이어질 수 있다.

투자자들의 대응은 양극화되고 있다. 114개 금융기관이 15조9000억 달러를 운용하며 TNFD를 채택했지만, 2024년 생물다양성 관련 주주제안 18개는 모두 부결됐다. 블랙록, 뱅가드, 스테이트 스트리트가 80~100% 반대표를 던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기회다. 시장이 그린워싱과 실질적 자연자본 관리를 구분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순수 생물다양성 펀드는 15개에 10억 달러로 미미하지만, 관련 환경 펀드 134개가 600억 달러를 운용 중이다.

투자 기회는 명확하다. 첫째, 순환경제가 4조5000억 달러 시장을 열고 있다. 전기로 철강 재활용이 온실가스 86%, 물 사용 40%, 수질오염 76%를 줄이는 것처럼 제조업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둘째, TNFD의 적극적인 기업을 찾아야 한다. 위치 기반으로 자연 의존도를 정량화하고 리스크를 관리하는 기업이 결국 살아남는다. 셋째, 데이터 솔루션에 주목해야 한다. 생물다양성 방법론의 어려움으로 인해 측정 시장 역시 급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2025년은 분수령이 될 것이다. EU 기업지속가능성 보고지침(CSRD)이 TNFD 14개 권고 사항을 모두 포함시켰고, 네이처 포지티브 이니셔티브가 자연 상태 측정 표준을 확정할 예정이다. 한국 기업에 남은 시간은 많지 않다. 생물다양성 재원 갭 16억 달러를 메우려면 민간투자가 필수다. 물 한 방울이 반도체 공장을 멈추고, 공급망 단절이 제조업을 마비시키는 시대에 TNFD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다. 투자 포트폴리오가 자연자본 리스크에 준비되어 있는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김준섭 KB증권 ESG리서치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