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은 22일 이재명 대통령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에 불참하기로 한 이유로 국내 현안과 급변하는 중동 정세를 꼽았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이번에는 도저히 직접 참석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판단했다”고 했다. 하지만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이런 때일수록 정상외교를 통해 국가안보는 물론 방산, 원전 등 강점이 있는 산업 분야의 수출 확대 방안 등을 논의해야 한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이날 이 대통령의 NATO 정상회의 불참은 전격적으로 결정됐다. 대통령실은 당초 이 대통령이 NATO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제반 사항을 챙겨왔다. 외교안보라인도 주요 채널을 통해 이 대통령의 정상회의 발언과 양자 정상회담을 준비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지난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무산된 한·미 정상회담 추진에 무게를 두고 NATO 정상회의 참석을 준비해왔다.
한 여권 관계자는 “대선 전엔 이 대통령이 NATO 정상회의 참석에 부정적이었지만, 취임 이후 위성락 국가안보실장 등 외교안보라인이 참석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하면서 기류가 바뀌었다”며 “NATO 정상회의에 참석해 한국이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중요한 일원이라는 점을 국제사회에 재확인시키고, 유럽 및 북미 국가 정상들과 친분을 쌓을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21일(현지시간) 미국이 이란 본토에 있는 핵시설을 직접 타격하자 분위기가 급변했다. 이 대통령이 NATO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것은 득보다 실이 크다는 의견이 대통령실 내부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NATO 정상회의에서 미국의 이란 사태 직접 개입이 주요 의제로 논의될 가능성이 큰데, 이 사안에 관한 이 대통령의 입장 표명이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우려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이 불투명해지자 최종적으로 불참을 결정한 것 아니냐는 추측도 나왔다. 대통령실은 이날 오후 내내 참석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회의를 이어갔는데, 참모진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통령이 조만간 미국을 찾아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는 방안을 추진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국내 상황을 고려한 결정이라는 분석도 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대통령실 인력이 아직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데다 회의 체계 등 미비한 게 많다”며 “내각도 정리되지 않았고, 인선 문제도 시급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내 현안에 대해 빠르게 판단해 대응하는 게 더 중요한 시점이라고 여긴 것”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국제사회가 이 대통령의 NATO 정상회의 불참을 ‘한국의 외교 노선 변화’로 인식할 수 있다는 점을 걱정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3년 연속 NATO 정상회의에 참석해 국제규범에 기반한 자유진영의 연대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런 상황에서 새 정부의 NATO 정상회의 불참 결정이 ‘눈에 띄는 부재’를 국제사회에 드러낼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한 전직 외교관은 “결과적으로 정상외교를 통해 서방 우방국과의 문화·경제 교류는 물론 방산·원전 수출 확대를 논의할 기회를 놓쳤다”고 했다.
한국과 함께 NATO 정상회의에 초청받은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크리스토퍼 럭슨 뉴질랜드 총리는 예정대로 참석한다. 다만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는 불참하고 국방부 장관을 대신 참석시킨다. 이 대통령의 NATO 정상회의 불참으로 러시아·중국을 상대로 ‘실용외교’를 펼 때 상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내몰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김태형 숭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러시아, 중국과의 협상을 위해서라도 NATO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게 오히려 우리의 입지를 확보할 수 있는 길”이라고 말했다.
한재영/김형규 기자 j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