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충 갈색여치 떼 '북상'…수도권 피해 주의보

입력 2025-06-18 18:06
수정 2025-06-26 16:41
“꼽등이 같은 게 수백, 수천 마리는 뛰어다니길래 등산 인생 최초로 중도 하산했습니다.”(경기 광교산 등산객 A씨)

최근 광교산과 경기 석성산, 서울 수락산·불암산 등 수도권 산속에서 ‘갈색여치’(사진)로 추정되는 해충이 다수 목격돼 등산객 사이에서 불쾌감을 일으키고 있다. 주로 중·남부 산지에서만 출현하던 이 곤충이 서울 등 북부 지역까지 확산한 배경에는 기후변화로 인한 생태계 변화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남부권 초토화한 해충 북상18일 SNS 등을 중심으로 산을 오르다가 갈색여치를 목격했다는 등산객의 후기가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소름 끼치고 혐오스럽다’는 의견이 많다. 평소 종종 불암산에 오른다는 A씨는 “최근 들어 꼽등이 같은 게 발에 챌 정도로 많아 당분간은 못 갈 것 같다”고 했다. 다른 등산객 B씨는 “수락산에 올랐더니 이집트 메뚜기떼도 아니고 귀뚜라미 닮은 곤충이 엄청나게 보였다”고 했다.

갈색여치는 주로 참나무류와 과일나무 잎, 열매를 갉아 먹는 토종 해충이다. 손가락만 한 크기로 두툼한 갈색 외피와 길고 강한 다리를 가지고 펄쩍펄쩍 뛰어다닌다. 주로 4월 중순부터 부화해 물가 근처, 산속 등에서 5~6월 빠르게 대발생한 뒤 7월께 산란기를 지나며 일생을 마친다. 사람에게 전염병을 옮기기보다 대발생 시기 농경지로 이동해 농작물을 해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비닐봉지도 뜯는 날카로운 턱으로 사람을 물기도 한다. 연가시의 기생률이 높은 숙주 중 하나로 시각적인 혐오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갈색여치는 2007년 충북 영동 등에서 떼로 창궐해 20㏊ 이상의 과수농가에 피해를 줬다. 2010년대까지만 해도 중부권 위주로 돌발적으로 발생했으나 이제 수도권 지역까지 북상했다. 이상훈 국립생태원 기후변화연구팀장은 “우리나라 남부지방에서 주로 서식하던 갈색여치가 최근엔 서울, 강원 설악산 등지에서까지 발견되고 있다”고 했다. ◇이상 기후에 따른 ‘기온 상승’ 영향갈색여치의 북상은 기후변화의 결과로 기온에 민감한 곤충 생태계가 달라졌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특히 갈색여치는 과거엔 일반 곤충이었으나 밀도가 급격히 높아지면서부터 해충으로 여겨지게 됐다. 갈색여치는 특히 알 상태로 월동하는 과정에서 기온이 높을수록 생존율과 부화율이 급격히 상승한다. 농촌진흥청 관계자는 “예전에는 갈색여치 알이 2~3년 걸려 부화했는데 겨울 기온이 오르며 더 빨리 알을 까고 나온다”며 “최근 천적인 까치의 개체 수 감소와 맞물리면서 더욱 급격히 늘었다”고 했다.

서울시와 일선 자치구 등은 갈색여치의 공식 방역 지침을 마련하지는 않았지만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해 ‘대발생 곤충 관리 및 방제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해 대발생 곤충 관리에 대한 제도적 근거를 마련했다. 노원구 관계자는 “산속 다른 생명체들을 해칠까 봐 박멸보다 대발생 지역 위주로 약을 치거나 유충 방역에 신경 쓰고 있다”며 “필요시 갈색여치 방역지침을 마련할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기후변화가 초래한 병해충 확산이 수도권 도심 환경에서 더욱 빠르게 진행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시는 이날 동양하루살이, 붉은등우단털파리(러브버그) 등 유행성 생활불쾌곤충의 대량 발생을 고려해 영동대교 한강 수면 위 부유식 트랩(바지선), 은평구 백련산 일대에 광원·유인제 포집기를 운영하는 등 친환경 방역에 나설 예정이라고 밝혔다.

오유림 기자 ou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