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는 대통령 선거 공약집에서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제190호의 비준과 함께, ‘행복한 일터 인증제’ 도입을 약속한 바 있다. 이는 노동자를 정서적 유해요인으로부터 보호하고, 일터의 조직문화를 전환하겠다는 정책 방향을 내포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의 직장 내 괴롭힘 대응 정책은 제도의 외형적 확장에도 불구하고, 예방 기능이 실질적으로 작동하지 못하는 구조적 한계에 직면해 있다. 2019년 근로기준법 개정을 통해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조항이 도입된 이후, 곧이어 근로감독관의 조사 권한이 강화되었으며, 그 결과 지난 5년간 접수된 진정 사건은 5만 건이 넘었다. 선원법·병역법 등 타 법령으로의 적용 확대, 지방자치단체 조례 제정, 취업규칙 반영 의무화 등을 통해 제도의 외연은 넓어졌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오남용 신고, 노노(勞勞) 갈등, 실효성 없는 고충처리제도의 반복 등 사후 대응 위주의 부작용이 지속되고 있다.
이와 동시에, 인권경영(국가인권위원회), 청렴도 평가(행정안전부), 가족친화인증(여성가족부) 등 관련 제도들이 개별 부처별로 산발적으로 운영되고 있어, 직장 내 괴롭힘 예방 정책과의 연결성은 부재한 상황에서 현장의 제도 간 중복과 단절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특히 「산업안전보건법」은 사용자의 정서적 위험 예방 의무를 규정하고 있음에도, 이를 뒷받침할 예방 기준, 점검 체계, 교육 모델은 사실상 미비한 상황이다.
필자는 지난해 6월, 맨체스터에서 열린 국제괴롭힘학회(IAWBH) 학술대회에서, 네덜란드 노동감독청의 ‘예방 중심 감독 모델’을 직접 공부할 기회를 가졌다. 당시 노동감독청이 배포한 2022년 연구보고서(Delphi Study on Unacceptable Internal Behaviour)를 통해, 예방 중심 접근이 단순한 권고 수준을 넘어 정책 설계와 현장 작동의 수준에서 어떻게 구체화되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네덜란드는 직장 내 괴롭힘을 ‘심리사회적 업무요인(PSA: Psychosocial Workload)’으로 규정하고, 이를 개별 사건이 아닌 조직 리스크로 진단한다. PSA는 스트레스에 국한되지 않고, 리더십 구조, 권한 관계, 직무 설계, 디지털 커뮤니케이션 방식 등 일터 전반의 구조적·시스템적 요소를 포괄하는 위험 요인으로 인식된다. 이에 따라 모든 사업장은 정기적으로 PSA 리스크를 평가하고 예방 계획을 수립해야 하며, 그 이행 여부는 노동감독청이 점검·지원하는 체계를 갖추고 있다.
특히 인상적인 제도는 ‘신뢰담당자(Vertrouwenspersoon)’이다. 이는 조직 내부의 독립적 조력자를 통해 고충 접수, 초기 대응, 관계 회복 유도, 외부 연계까지 포괄하는 기능을 부여하여, 내부 고충처리제도의 형해화를 방지하고 실질적인 예방과 회복 기능이 작동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네덜란드 정부는 이 제도를 RI&E(위험 식별 및 평가) 과정과 연계하여 운영하며, 정서적 안전성이 확보된 조직에 대해서는 인증 및 평판 제도를 부여함으로써 실질적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예방 중심 모델은 현장 관리자, 고충상담자, 감독관 등 실무자들의 실천 경험을 기반으로 구성된 예방조치 항목, 관리자 행동 지침, 내부 커뮤니케이션 전략, 디지털 리스크 대응 등 매우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체크리스트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인상적이었다. 특히 사후 징계 중심이 아닌, 실행 가능하고 현장 친화적인 예방 접근을 제도화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이러한 경험을 토대로, 이재명 정부의 ‘행복한 일터 인증제’가 실효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단순한 제도 도입을 넘어, 예방 중심의 구조적 전환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네덜란드 사례에서 시사점을 얻어 다음과 같은 정책적 보완을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산업안전보건법상 정서적 유해요인을 법정 위험평가 항목에 명확히 포함하고, 이를 기반으로 사업장이 예방계획을 수립하도록 정부 차원의 실무 지침서(RI&E 체크리스트 등)를 마련해야 한다.
둘째, 현행 고충처리제도를 보완하거나 대체할 수 있는 ‘신뢰담당자’ 제도의 국내 도입을 검토하고, 해당 역할 수행을 위한 선발 기준, 양성 교육, 자격 인증 등의 체계적 프로그램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셋째, 정서적 위험 진단 결과, 예방 조치 이행 여부, 내부 지원체계 운영 실적 등을 통합적으로 평가하여, 정부 공약인 ‘행복한 일터 인증제’를 다부처 공동의 통합 인증 방식으로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현재 고용노동부, 여성가족부, 인권위원회, 행정안전부 등에서 운영 중인 다양한 조직문화 인증제도를 직장 내 괴롭힘 예방 관점에서 정비·통합하여, 제도 간 중복을 최소화하고 정책의 실효성을 제고해야 한다.
결국, 정책의 구호가 아닌 구조로서의 변화가 필요하다. 예방이 제도의 중심으로 작동하고, 실무 현장에서 실행 가능한 실용적 지원이 병행될 때, ‘행복한 일터’라는 비전은 지속 가능하고 현실적인 정책 목표로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문강분 행복한일노무법인·연구소 대표 / 한국괴롭힘학회 수석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