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토류 수급에 어려움을 겪는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과 달리 현대자동차그룹은 1년 동안 쓸 물량을 비축했다. 미·중 무역 갈등으로 희토류 공급망이 불안정해질 것으로 예상하고 선제 대응에 나선 덕분이다.
11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은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카 생산에 필요한 희토류 재고를 약 1년치 보유하고 있다. 대부분 물량은 지난 4월 4일 중국이 희토류 수출 규제에 나서기 전에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희토류는 모터와 센서, 스피커, 헤드램프에 두루 쓰이는 핵심 광물이다. 중국이 수출을 막은 희토류 7종에는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카 등에 필요한 원료가 대거 포함돼 있다. 전기차 모터와 전자식 파워스티어링(EPS)에 쓰이는 디스프로슘, 차량용 센서에 들어가는 루테튬과 가돌리늄 등이 대표적이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말부터 미·중 무역 갈등 수위가 높아진 점과 중국이 2023년에도 희토류 가공기술 수출을 금지한 점을 들어 중국 업체를 대상으로 희토류 확보에 공을 들인 것으로 전해졌다. 현대차는 동시에 세계 희토류 시장의 90%를 장악한 중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공급망 다각화에도 나섰다.
현대차그룹은 2022년 호주의 희토류 생산업체인 아라푸라와 2028년부터 7년 동안 매년 1500t 규모의 희토류를 공급받는 계약을 맺었다. 지난해엔 희토류 대체 소재를 개발하기 위해 연세대와 ‘자성재료 공동연구실’을 설립했고, 2023년부터 희토류 영구자석이 필요 없는 ‘권선형 회전자 동기모터’ 개발에도 나섰다.
반면 희토류를 미리 확보하지 않은 해외 완성차 업체들은 줄줄이 공장 가동을 멈추고 있다. 미국 포드는 지난달 말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익스플로러’ 생산을 1주일간 중단했고, 일본 스즈키는 지난달 26일부터 소형차 ‘스위프트’의 하이브리드 모델 생산을 멈췄다. 포드 스텔란티스 BMW 등이 가입해 있는 미국 자동차혁신연합(AAI)은 지난달 9일 미국 정부에 희토류 공급 부족으로 미국 내 공장 가동을 멈출 수 있다는 내용의 비공개 서한을 전달했다. 유럽도 마찬가지다. 독일 자동차산업연합(VDA)은 지난 3일 “희토류 공급 차질로 독일 내 자동차 생산이 지연되거나 중단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양길성 기자 vertig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