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계촌에서 열린 작은 음악제, 여름밤을 아름답게 수놓다

입력 2025-06-08 13:45
수정 2025-06-09 16:54


우리나라 클래식 애호가들에게 ‘평창에서 열리는 음악제’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대부분 어렵지 않게 대관령국제음악제를 꼽는다. 하지만 그것 말고 또 있다고 얘기하면 적잖은 사람이 눈을 둥그렇게 뜬다. 그렇다, 경험담을 말하는 것이다. 평창에서 열리는 또 하나의 음악제, 계촌클래식축제는 올해로 벌써 11주년을 맞았지만 여전히 인지도를 높여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계촌’이라는 지명은 전국에 많지만, 여기서는 평창군 방림면 계촌리를 가리킨다. 같은 평창이라지만 앞서 언급한 대관령국제음악제가 열리는 대관령면의 알펜시아리조트와는 대략 40km나 떨어져 있다. 대관령면은 강릉시에, 방림면은 횡성군에 인접해 있다 보니 이렇게 거리가 멀다. 지리적인 거리뿐만 아니라 분위기도 사뭇 달라서, 대관령음악제가 전용 콘서트홀을 포함해 잘 갖추어진 시설과 환경 속에서 열리는 전문 음악제라는 느낌을 준다면 계촌클래식축제는 더 지역과 밀착되어 있는, 체험 중심의 축제라는 인상을 준다.



계촌클래식축제는 2015년 ‘첼로와 판소리, 마을을 만나다’라는 주제로 처음 개최된 뒤 해마다 꾸준히 열려 왔다. 심지어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공연계가 얼어붙다시피 했던 2020~21년에도 온라인으로 전환했을지언정 공연 자체는 끊이지 않았다. 그동안 이 음악제를 거쳐 간 음악가의 면면은 국내 어떤 음악 관련 행사에도 뒤지지 않는다. 피아니스트만 해도 백건우 같은 대가부터 조성진, 임윤찬, 박재홍, 선우예권 등 한창 성가를 높이고 있는 청년까지 아우르며, 바이올리니스트로는 김다미, 클라라 주미 강, 첼리스트 정명화, 송영훈 등 국내 클래식 애호가라면 이름만 대도 알 연주자들이 계촌에서 음악을 들려주었다. 해외 연주자도 일본을 대표하는 뉴에이지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인 유키 구라모토,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여성 피아니스트로는 역대 두 번째로 우승한 안나 비니츠카야 등이 계촌을 찾아 국제음악제로서도 손색없는 면모를 보인다.

계촌클래식축제는 현대차정몽구재단이 주최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가 주관하며, 평창군이 이를 지원하는 등 관(官)·산(産)·학(學)이 하나가 되어 추진하는 예술마을 프로젝트이다. 가장 핵심을 이루는 것은 클래식 공연이지만, 이 축제는 계촌을 찾는 사람들이 오감을 고루 충족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듯하다. 올해는 6월 6일부터 8일까지 열렸는데, 6일 낮부터 곳곳에서 리허설이 진행되는가 하면 다양한 먹거리 장터가 열려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가족 단위 방문객을 겨냥한 듯 ‘작곡가 그리기’ 등 다양한 체험행사도 열렸다.

전체 일정 가운데 내가 참관한 것은 6일 오후 7시에 계촌로망스파크에서 열린 개막공연 ‘별빛 콘서트’였다. 이 콘서트는 야외무대 앞에 사람들이 자리를 펴고 앉아 자유롭게 음악을 듣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매해 여름에 베를린 필하모니 오케스트라가 여는 발트뷔네 콘서트와 비슷한 방식이다. 공연은 전체 3부로 나뉘어 진행되었으며, 1부 순서는 계촌초등학교 학생들이 단원인 계촌별빛오케스트라의 연주였다. 굳이 연주의 완성도를 논할 필요는 없겠지만, 다들 진지한 표정으로 열심히 연주했다.



2부는 소프라노 홍혜란의 무대였다. 2011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성악 부문에서 아시아인 최초로 우승한 성악가답게 무척 낭랑한 목소리를 선보였으며, 푸치니의 <잔니 스키키> 중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나 구노의 <로미오와 줄리엣> 중 ‘꿈속에 살고 싶어요’처럼 평소에 자주 불렀을 아리아는 물론 국내 가곡도 무척 훌륭하게 노래했다. 시원스러운 가창이 돋보였던 조두남의 ‘산촌’이나 명확한 발성이 인상적이었던 김동진의 ‘신아리랑’이 그런 예이다.

국립합창단의 합창이 3부를 장식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합창단답게 조화롭고 빼어난 합창이었으며, <라 보엠> 중 ‘나 홀로 길을 걸을 때면’ 등 일부 오페라 아리아에서 독창자로 나선 단원들이 보여주었듯이 한 사람 한 사람이 원숙한 기량을 지닌 성악가임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전체적으로 퍽 만족스러운 체험이었으며, 공연 후 청중이 보낸 환호로 미루어 짐작건대 비슷한 인상을 받은 사람이 적지 않아 보였다. 저물어 가는 저녁 속에서 숲을 배경으로 자연과 음악이 아름답게 어우러진 무대였다.

황진규 음악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