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4일 첫 국무총리 후보자로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을 지명한 것은 국정철학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인물이 내각을 이끌어야 한다고 판단한 결과로 풀이된다. 김 후보자가 당내 손꼽히는 전략가라는 점도 높이 평가했다는 분석이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없이 임기를 시작하는 상황에서 이 대통령과 소통이 원활하면서 빠른 정무적 판단으로 의사결정을 할 적임자가 김 후보자라는 게 당내 인사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에서 첫 인선을 발표하면서 김 후보자에 대해 “민주당 최고위원으로서 국정 전반에 대한 통찰력이 매우 깊다”며 “당과 국회에서 정책과 전략을 이끌고 국민 목소리를 실천으로 응답한 정치인이며 국제적인 감각과 통합의 정치력을 함께 갖춘 인사”라고 설명했다. ◇서울대 총학생회장 출신 ‘스타 정치인’
김 후보자는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발탁돼 30대부터 국회의원을 지냈다. 청년 시절 요직을 맡으며 다양한 경험을 쌓았지만 한동안 정치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산전수전을 겪은 뒤 돌아와 주류로 발돋움해 정치력이 탁월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 후보자는 1964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재학 시절 총학생회장을 맡아 ‘86(80년대 학번 60년대생) 학생운동 세대’의 대표주자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32세이던 1996년 15대 총선 때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끄는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서울 영등포을에 출마해 당선됐다. 청문회 등에서 날카로운 질문과 논리로 ‘스타 정치인’으로 주목받으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의 정치 인생이 시련으로 돌아선 정치적 변곡점은 2002년 찾아왔다.
그는 당시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로 선출됐지만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에게 패배했다. 같은 해 노무현 민주당 대선 후보를 등지고 탈당해 정몽준 국민통합21 후보를 지지했다. 노무현-정몽준 대선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노무현 후보가 아니라 정몽준 후보 측에 서면서 ‘철새 정치인’이라는 오명이 따라붙었다. 그는 2020년 치러진 21대 총선에서 다시 배지를 달기까지 18년간 혹독한 정치적 고난기를 보냈다.
그사이 중국 칭화대 법학 석사, 미국 럿거스뉴저지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사 학위 등을 받으며 미국과 중국에서 국제적 감각을 익혔다. 김 후보자와 가까운 강득구 민주당 의원은 통화에서 “18년이라는 공백기를 허투루 쓰지 않고, 공부하고 미국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해 내공을 쌓았다”며 “균형감과 조정 능력이 탁월한데 18년 공백기에 갈고닦아 더 단련됐다”고 했다. 21대 국회에 복귀한 뒤 22대 총선에서도 당선돼 4선 의원이다. ◇‘신(新)이재명계’ 핵심으로이 대통령과의 인연은 2022년 대선부터 본격 시작됐다. 김 후보자는 당시 이재명 후보 선대위 전략기획본부장을 맡으며 친명(친이재명)계로 거듭났다. 이후 ‘이재명 1기 지도부’에서 정책위원회 의장을, 지난해 총선에서는 상황실장을 맡아 대승을 이끌어 핵심 참모로 자리 잡았다.
김 후보자는 이 대통령이 두 번째 당 대표를 지낼 때 수석최고위원을 맡아 정무적 조언을 했다. 전당대회 초반 최고위원에 출마한 김 후보자의 득표율이 저조했는데, 이 대통령은 유튜브 라이브 방송에서 “김민석 표가 왜 이리 안 나오냐”며 작심하고 지원 사격했다. 이후 당원들 사이에서 김 후보자 ‘몰표’가 나왔고, 이 대통령이 김 후보자를 신뢰한다는 사실이 대외적으로 알려졌다.
지도부에 입성한 이후엔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예측해 준비하고 기민하게 대응했다. 이 대통령도 이런 점을 높이 평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0월 발족한 차기 대선 준비 조직 집권플랜본부의 총괄본부장을 맡아 대선 전략과 집권 초반기 구상을 수립하기도 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내란 극복 과정에서 분기점마다 그의 조언이 주효했다”며 “정무적 판단이 신임을 얻은 배경”이라고 귀띔했다.
최형창 기자
■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
△1964년 서울 출생
△숭실고,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서울대 총학생회장
△새천년민주당 김대중 총재 비서실장
△20대 대선 중앙선대위 전략기획본부장
△제15·16·21·22대 국회의원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 최고위원
△21대 대선 민주당 선대위 상임공동선대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