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4일 취임 선서 직후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통해 제시한 민생 회복과 경제 성장 전략의 핵심 키워드는 ‘실용’이다. 이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중도보수 진영을 겨냥해 과감한 우클릭 행보를 보였다. 진보 진영의 전통적 가치인 분배 노선을 추구하면서도 보수 담론인 성장을 놓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이 이날 취임 후 첫 대국민 메시지에서 실용을 여러 차례 강조한 것은 앞으로 임기 5년간 ‘탈이념, 실용주의 노선’을 일관되게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해석됐다. ◇李 “유연한 실용정부 될 것”
이 대통령은 이날 국회에서 취임 선서 후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통해 ‘실용정부’ ‘실용외교’ ‘실용적 시장주의 정부’ ‘실용적 관점’ 등 실용이라는 단어를 수차례 반복했다. 민생 경기 회복과 자유로운 기업 활동을 강조할 때 특히 자주 거론했다.
이 대통령은 박정희·김대중 전 대통령의 이름을 직접 언급하며 “필요하고 유능하면 구별 없이 (정책을) 쓰겠다”고 강조했다. 보수 정권 정책이든 진보 정권 정책이든 좌우를 가리지 않고 민생과 경제에 보탬이 되는 정책이라고 판단되면 과감하게 가져다 쓰겠다는 의미다.
이 대통령은 “창의적이고 능동적인 기업 활동을 보장하기 위해 규제는 네거티브 중심으로 변경하겠다”며 “기업인들이 자유롭게 창업하고 성장하며 세계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든든하게 뒷받침하겠다”고 밝혔다. 네거티브 규제는 금지된 게 아니면 일단 허용하는 방식이다. 일단 금지해놓고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포지티브 방식과 반대되는 개념이다. 포괄적 네거티브 규제 전환은 윤석열 정부 등 주로 보수 정권이 역점을 두고 추진해온 과제다.
다만 이 대통령은 규제는 과감히 풀되 시장질서 교란 행위는 엄단하겠다고 천명했다. 이 대통령은 “규칙을 어겨 이익을 얻고 규칙을 지켜 피해를 입는 것은 결코 허용하지 않겠다”며 “특권적 지위와 특혜가 사라진 공정사회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혁신을 위한 사회안전망 강화의 필요성도 역설했다. 이 대통령은 “모든 국민의 기본적 삶의 조건이 보장되는 나라, 두터운 사회 안전 매트로 위험한 도전이 가능한 나라여야 혁신도, 새로운 성장도 가능하다”고 했다. 나아가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만들고 성장의 기회와 결과를 함께 나누는 공정성장이 더 나은 세상의 문을 열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전환 시대·복합위기 대응”이 대통령이 이처럼 철저히 실용적 정책 노선을 추구하겠다고 밝힌 건 한국을 둘러싼 대내외 경제·산업 환경이 그 어느 때보다 어렵다는 위기의식이 반영된 결과라는 분석이다. 이 대통령은 “우리는 지금 대전환의 분기점에 서 있다”며 “낡은 질서가 퇴조하고 새 질서, 문명사적 대전환이 진행 중”이라고 했다. 이어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초과학기술 신문명 시대, 눈 깜짝할 새 페이지가 넘어가는 인공지능(AI) 무한경쟁 시대가 열렸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기후변화 위기와 각국의 보호무역 정책 기조 강화, 공급망 재편 움직임 등을 일일이 거론하며 “급격한 국제 질서 변화는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이 중차대한 시기에 우리는 민생, 경제, 외교, 안보, 민주주의 모든 영역에서 엉킨 실타래처럼 겹겹이 쌓인 복합 위기에 직면했다”며 “대한민국의 현재와 미래가 동시에 위협받고 있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국민의힘 등 야당과의 관계도 실용적으로 접근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성과를 내기 위해 야당에 내줄 건 내주고 얻을 건 얻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은 “공존과 통합의 가치 위에 소통과 대화를 복원하고, 양보하고 타협하는 정치를 되살리겠다”고 했다.
한재영 기자 j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