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5월 30일 16:08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SK그룹의 화학·소재 회사 SKC가 영구 교환사채(EB)를 발행해 3100억원을 조달한다. 이 가운데 한국투자프라이빗에쿼티(한투PE)가 3000억원어치를 인수하면서 다시 한번 한국투자금융지주와 SK그룹이 '끈끈함'을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30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SKC는 자기주식을 교환대상으로 하는 영구 EB 발행을 전날 공시했다. 교환 대상 자사주는 298만5304주로, 발행주식총수의 7.88%다. SKC는 10% 수준의 자사주를 보유하고 있다.
EB의 교환가액은 10만3842원으로 전날 종가(9만2200원)보다 12.6%가량의 프리미엄이 붙었다. EB는 주가가 하락하거나 횡보하면 이자수익을, 주가가 오르면 교환권을 행사해 시세차익을 얻을 수 있다.
EB의 표면금리는 발행일로부터 3년까지 0%다. 3년 이후부터 5년까지는 연 1%, 5년 이후부터는 연 8%로 오른다. 8% 금리 이후부터는 매년 2%포인트가 가산된다. 이번 거래에서 EB 투자자들은 풋옵션(중도상환권)을 행사할 수 없으나 SKC는 콜옵션(매도청구권)을 갖는다. 5년부터 금리가 크게 오르므로 이 시기 전까지 SKC는 콜옵션을 행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투PE는 총 3100억원 규모로 발행되는 EB 중 3000억원어치를 인수하고 나머지 100억원은 헬리오스PE가 사들인다. 이들은 SKC 자회사 SK넥실리스, 앱솔릭스 상장에 대한 사전동의권도 확보했다. 2차전지 동박을 제조하는 SK넥실리스와 반도체 패키징 영역에서 '꿈의 기판'으로 불리는 유리기판 제조사 앱솔릭스가 상장하면 모회사 SKC의 가치는 떨어질 수밖에 없는데, 한투PE와 헬리오스PE는 이에 대한 안전장치를 확보한 셈이다. 만약 한투PE 등이 상장에 동의하지 않으면 SKC는 사전에 약정된 수익률로 콜옵션을 행사할 수 있다.
한투PE가 또 다시 SK그룹 계열사의 자금조달에 참전하면서 업계에서는 SK그룹의 해결사를 자처하고 있다는 관전평이 나온다. 한투PE는 국내 재무적 투자자(FI)들과 컨소시엄을 꾸려 2022년 SK온에 1조3000억원 규모의 프리IPO(상장 전 지분투자)를 주도했다.
지난해 6월엔 동일 지주 계열사 한국투자증권이 SK온 신종자본증권 발행에 참여했다. 총 5000억원의 발행 규모 중에서 한투증권이 1550억원을, 한투증권이 설립한 특수목적법인(SPC) 키스이제이제칠차가 1000억원을 인수했다. 한투증권은 채권자가 많으면 관리가 힘들어지니 재매각(셀다운)을 하지 말아달라는 발행사 측 요청을 그대로 수용해 눈길을 끌었다.
같은 해 10월에는 SK온이 주가수익스와프(PRS) 방식으로 진행한 1조원 규모 제3자배정 유상증자에 총 4000억원 규모로 참여했다. 한국투자증권이 2500억원을, 자체 설립 SPC 제이온포스트가 1500억원을 투자하며 악화한 자금줄에 숨통을 틔워줬다.
SKC가 영구 EB 발행으로 확보한 자금은 채무상환 목적이 아니라 운영자금으로 쓰일 예정이다. 다만 투자자의 중도상환권이 없고 이자 지급이 발행사 재량이라 자본으로 분류돼 SKC의 재무지표 관리에 유리하다. 또 3년간 표면금리가 0%라는 점에서 2차전지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으로 혹한기를 통과하고 있는 SKC를 배려한 구조가 돋보인다.
한투 입장에서는 그룹 차원 리밸런싱을 한창 진행하고 있는 SK에서 기업공개(IPO)나 인수·합병(M&A), 투자유치 등 쏟아질 일감을 고려해 충성도를 입증한 셈이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비단 한투뿐 아니라 많은 증권·투자사들이 SK그룹과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고 말했다.
송은경 기자 nor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