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어도 축제처럼 즐겨보려"…선거 운동원과 동행해보니 [현장+]

입력 2025-05-28 15:10
수정 2025-05-28 16:24

민주주의 꽃이 선거라면, 선거의 꽃은 선거 운동일 것이다. 한경닷컴은 대선을 앞두고 유세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선거사무원들의 고충과 일상을 27~28일 이틀에 걸쳐 직접 동행하며 살펴봤다. ◇ 하루 12시간 강행군 지난 27일 오전 10시 10분께 서울 종로구 동묘앞역 10번 출구 인근에서 시작된 더불어민주당의 종로 거점 유세 현장. 이날 유세에 참여한 선거사무원 이상례(73) 씨는 파란 모자와 흰색 토시, 장갑을 착용한 채 강한 햇볕이 내리쬐는 거리에서 피켓을 들었다.

약 1시간 가까이 이어진 유세가 마무리되자 선거사무원들은 인근 골목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이 씨는 자기 몸 전체를 가릴 정도로 큰 이 후보 패널을 목에 걸고 홀로 동묘앞역 거리 유세에 나섰다. 이 씨는 기자에게 "이 거리 따라서 쭉 걸어가야 한다. 하루에 몇만 보는 걷는 거 같은데, 여름이라 더 힘들다"고 말했다.

종종 시비가 붙어 위협적으로 느껴질 때가 많다는 그는 "싸움이 날 수도 있어서 일일이 대응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이 씨는 아침 7시에 출근해 저녁 7시 30분에 퇴근하는 선거사무원 일정을 이어가고 있다. 선거사무원들에 따르면 유세는 오후 3시부터 저녁 7시까지 별다른 휴식 시간 없이 진행되는 경우가 많아 체력적인 부담이 크다고 한다.

공직선거법에 따라 선거사무원은 하루 10만원 수준의 일당을 받는다. 단기 일자리인 이 알바는 50~60대 주부가 주를 이룬다. 기자가 이날 만난 이들 대부분이 주부들이었다. ◇ 폭언·폭행 위협까지 정당을 막론하고 선거사무원들은 비슷한 고충을 겪고 있었다. 28일 오전 8시 50분께 동대문구 장한평역 5번 출구 인근 도로에서 만난 국민의힘 선거사무원 박미숙(60) 씨는 "이 일을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노동으로만 여기면 정말 힘들고 짜증이 날 거다. 모르는 사람이 욕을 하거나 때리려 드는 경우가 많다"며 주먹을 쥐고 위협적인 손동작을 직접 재현해 보였다.

인근에서 김 후보 패널을 들고 인사하던 선거사무원 A씨도 "그냥 서 있는데 밀치고 가는 경우도 허다하다"며 "그럴 땐 심장이 벌렁벌렁한다"고 토로했다.

실제 지난 26일 경기 용인시 용인포은아트갤러리 인근에서 열린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유세 도중 선거사무원들은 치어리딩 팜(응원용 폼폼이)을 들고 흔들며 분위기를 띄우려는데, 한 시민이 "후보님이 안 보인다"며 선거사무원에게 욕설을 내뱉는 일이 있었다. 선거사무원을 향해 "뻔뻔한 내란 수괴"라며 고성을 지르는 시민도 있었다. ◇ 고단하지만…"축제처럼 즐기려는 마음" 선거사무원들은 육체적 피로와 일부 시민들의 거친 반응에도 불구하고,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선거운동을 즐기려는 모습이었다. 이날 오전 7시 30분께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역 1번 출구 인근에서 만난 민주당 선거사무원 김창선(65) 씨는 "청년 유세단 친구들을 기다리고 있다"며 "율동을 보면 흥이 나고, 같이 춤추면 즐겁다"고 웃었다.

인근에서 출근길 시민들에게 연신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던 민주당 선거사무원 김관순(55) 씨도 "선거를 축제처럼 생각한다"며 "함께 춤추고 구호를 외치면 한마음이 된 듯한 기분이 든다"고 소감을 밝혔다.

일부 선거사무원들은 단순한 생계 수단을 넘어,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를 돕기 위한 마음으로 유세 현장에 나서고 있었다. 전날 서울 동묘앞역 인근에서 만난 민주당 선거사무원 박해안(67) 씨는 "당원 생활하며 대선 치른 지도 이번이 다섯번 째"라며 "고된 순간에도 후보님 생각을 하면 힘이 난다"고 강조했다.

한편 공직선거법 제237조는 선거사무원을 폭행·협박할 경우 10년 이하 징역 또는 500만원 이상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민형 한경닷컴 기자 mean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