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군부대 사칭' 한국인 조직, 캄보디아서 집단 체포

입력 2025-05-23 14:43
수정 2025-06-26 16:40
캄보디아에서 생활하면서 국내 자영업자들에게 '대리구매 사기' 등 보이스피싱 범죄를 저지른 한국인들이 현지에서 무더기로 검거됐다. 경찰청 인터폴공조계는 사기꾼들을 국내로 송환하기 위해 캄보디아 이민당국과 협의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이 중 일부는 취업 사기를 당해 감금된 상태로 있었다며 피해를 호소했다.

23일 경찰청 등에 따르면 지난 16일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 있는 한 범죄단지에서 한국인 조직원들이 현지 경찰에 체포됐다. 체포 인원은 15명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붙잡힌 장소는 '황관'이라는 이름의 범죄단지로, 중국계 사기 조직이 운영한다. 캄보디아 최대 항구도시인 시아누크빌은 중국계 범죄 조직이 밀집한 지역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번에 캄보디아 경찰에 검거된 한국인들은 지난 2~3월부터 대포폰과 컴퓨터를 갖춘 단지 내 콜센터에서 지지냈다. 이 중 일부는 군부대 등 공공기관을 사칭하며 국내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대리구매 사기를 벌여온 것으로 알려졌다.

대리구매 사기란 자영업자에게 해당업소 취급 품목을 주문하면서 다른 업체 물품을 함께 주문해주면 추후 일괄 결제하겠다고 속여 돈을 가로채는 사기다. 최근 이같은 사기가 전국적으로 기승을 부려 경찰청이 주의를 당부한 바 있다.

예컨대 1차 기망자가 군인을 사칭해 음식점 주인에게 "부대 내 단체 회식을 예약하고 싶다"며 접근한다. 이어 "방문하는 날에 한꺼번에 결제할 테니 회식 때 마실 고급 와인을 대신 주문해 달라"며 특정 와인 판매업체의 연락처를 건넨다.

피해자인 식당 사장이 해당 업체에 연락하면 와인업체 직원을 사칭한 2차 기망자가 와인 대금을 송금해 달라고 요구한다. 피해자가 돈을 보내면 두 사람 모두 연락을 끊고 잠적하는 방식으로 돈을 뜯어낸다.

검거된 조직은 군인을 사칭해 음식점, 철물점 등 다양한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같은 수법의 사기를 벌인 것으로 전해졌다.

15명 중 일부는 취업 사기와 감금을 당했다며 피해를 호소했다. 이중 A씨는 "날 포함한 일부는 카지노 근무라는 이야기를 듣고 왔다가 강제로 감금된 상태였다"며 "나가려면 돈을 내야 한다고 해 일하지 않고 돈을 구하던 중 갑작스럽게 체포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함께 체포된 다른 한국인들은 그날 처음 봤고 그들이 어떤 일을 했는지는 모른다"고 덧붙였다.

김건 국민의힘 의원실이 외교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캄보디아 내 취업 사기 피해는 최근 6년간 265건 접수된 것으로 파악됐다. 취업 사기란 '고수익 해외취업'이라고 유혹한 후 보이스피싱 등 사기에 가담하도록 강요하는 범죄다.

주캄보디아대한민국대사관에 따르면 통상 한국인이 캄보디아에서 사기 범행을 저지르다 적발됐을 경우 1~2개월 간 유치장에서 조사받은 뒤 추방된다. 캄보디아 경찰은 이들을 연행해 캄보디아 입국 경위와 구체적인 범행 방식을 조사하고 있다. 경찰청 인터폴공조계 관계자는 "현지 조사가 마무리된 후 현지 이민당국과 협의해 국내 송환 절차를 밟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들이 집단 체포된 뒤에도 중국계 조직은 한국인 인력을 추가 모집해 범행을 계속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황관에서 감금된 채 일하고 있다는 20대 여성 B씨는 "지난 16일부터 19일까지 나흘간 매출이 4억 원"이라고 전했다.

김다빈 기자 davinc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