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국채·달러·주식 '동반 위태'…갈곳 잃은 자금, 비트코인으로 피신

입력 2025-05-22 18:16
수정 2025-05-23 02:03
비트코인 가격이 사상 처음으로 11만달러를 돌파해 4개월 만에 역대 최고가를 갈아치웠다. 미국의 ‘국채 쇼크’ 여파로 국채, 달러 등 안전자산은 물론 주식과 같은 위험자산도 함께 흔들리는 상황에서 비트코인이 갈 곳 잃은 자금의 피난처로 떠올랐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기에 미국 의회가 스테이블 코인 관련 법안을 통과시키는 등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친(親)가상자산 정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자 가격 상승에 더욱 힘이 실리고 있다. ◇거시 리스크에 덜 민감
22일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비트코인 가격은 이날 오전 8시30분께 11만달러를 돌파했다. 이후 3시간30분 뒤인 낮 12시엔 11만1861달러로 상승했다. 이는 지난 1월 20일 기록한 역대 최고가(10만9114달러)를 4개월 만에 경신한 것이다. 국내에서는 2월 5일 이후 최고치인 1억5532만3000원에 거래됐지만 1월 20일 기록한 역대 최고가(1억6332만5000원)를 넘어서진 못했다. 원·달러 환율이 당시 대비 하락(원화 강세)한 영향이다.

비트코인 가격이 강세를 보인 건 트럼프 대통령이 대규모 감세 법안을 밀어붙여 미국의 재정 적자 확대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미 정부의 신용에 기반한 국채·달러와 이에 밀접한 영향을 받는 주식 시장은 타격받았지만 탈중앙화 자산인 비트코인은 나 홀로 상승했다. 일반적으로 국채와 통화는 재정 적자가 확대되고 정치적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가치가 하락한다. 위험자산인 주식 역시 이 같은 정부 리스크에서 벗어날 수 없다.

비트코인은 특정 정부와 중앙은행의 통제를 받지 않기 때문에 국가 재정 악화, 부채 증가와 같은 거시 리스크에 상대적으로 덜 민감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더구나 미 정부는 필요하면 무제한으로 국채를 발행할 수 있다. 비트코인 공급량은 2100만 개로 고정돼 있다. 김민승 코빗 리서치센터장은 “비트코인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중앙집권적 금융 시스템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는 것이 중론”이라며 “미국 정부 신뢰가 흔들리는 지금 같은 시기에 비트코인의 매력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 투자사도 잇달아 등장미국에서 가상자산 친화 정책이 속도를 내는 것도 비트코인 가격을 밀어 올리는 요인으로 꼽힌다. 미 상원은 지난 19일 스테이블 코인 발행과 담보 요건을 강화하고 자금세탁 방지 법률 준수를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은 스테이블 코인 법안을 통과시켰다. 스테이블 코인은 미 달러 등 특정 자산에 가치를 1 대 1로 고정한 암호화폐다. 이 법안은 스테이블 코인 발행자가 미 달러와 단기 국채 등을 자산으로 준비금을 100% 보유하도록 했다. 스테이블 코인은 암호화폐 생태계에서 결제, 환전, 자산 이동과 같은 일종의 기축통화 역할을 한다. 세계에서 가장 큰 자본시장인 미국이 스테이블 코인을 인정함에 따라 시장에서는 암호화폐 대표 자산인 비트코인의 신뢰도 높아질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미국의 비트코인 투자 전문 기업 스트래티지를 모방한 기업이 잇달아 설립되며 비트코인 수요를 늘리고 있다. 스트래티지가 보유한 비트코인은 총 57만6230개로 매수 평균 단가는 약 6만6384달러다. 최근 비트코인 가격 상승으로 평가이익만 383억달러(약 53조원)에 달한다. 스트래티지 주식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현재 비트코인에 투자할 수 없는 정부 기관의 간접 투자도 늘고 있다. 제2의 스트래티지를 노리는 기업도 등장했다. 금융투자회사 캔터피츠제럴드는 스테이블 코인 발행사 테더, 투자회사 소프트뱅크그룹과 함께 비트코인 투자에 집중하는 트웬티원을 지난달 설립했다. 트웬티원은 설립 직후 4만2000개(약 5조4000억원 규모)를 매입하며 본격적인 운용에 들어갔다.

글로벌 투자은행(IB) JP모간은 지난 19일 고객들에게 비트코인 구매를 허용한다고 밝혔다. 제프 켄드릭 스탠다드차타드(SC) 디지털 자산 리서치 책임자는 “기관투자가의 관심이 커지면서 비트코인은 여름까지 상승세를 이어갈 것”이라며 “2분기에는 12만달러, 올해 말까지 20만달러에 도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미현/김진성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