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러 페스티벌의 완성도를 높인 건 공연장으로 쓰인 콘세르트헤바우의 풍부하면서도 꽉 차 있는 음향이었다. 오늘날 이 공연장은 세계 3대 클래식 음악 공연장으로 꼽힌다. 오스트리아 빈의 무지크페어라인, 미국 보스턴의 심포니 홀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놀라운 건 이 콘세르트헤바우가 음향학 이론이 건축에 쓰이기 전인 1888년 지어졌다는 사실이다.
축제가 한창이던 지난 15일 이곳에서 활약하는 로열콘세르트헤바우오케스트라(RCO)의 대표인 도미니크 빈터링을 만나 음향의 비밀을 물어봤다. 콘세르트헤바우에선 관객이 가득 찬 소리의 중심에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렇다고 고음이 귀를 날카롭게 찌르지도 않는다. 이 소리에 대해 빈터링 대표가 내놓은 답은 놀라웠다. 그는 “비용을 아끼려던 실용적 접근과 운이 맞물린 결과”라고 말했다.
빈터링 대표는 “콘세르트헤바우를 지을 땐 암스테르담 시민이 공연장을 갖고 싶다는 마음에 직접 자금을 모아야 했다”며 “예산이 제한되다 보니 저렴한 해결책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당시 시민들은 독일 라이프치히의 옛 게반트하우스 콘서트홀을 원본으로 따왔는데 이 복사본을 만든 게 결과적으로 좋은 음향으로 이어졌다”고 덧붙였다. 이 게반트하우스 콘서트홀은 1944년 연합군 공습으로 파괴됐다.
후대 학자들은 콘세르트헤바우 음향의 비결로 몇 가지를 추정하고 있다. 하나는 슈박스(신발 상자) 구조다. 길이 44m, 폭 27.5m, 높이 17.5m의 직사각형 상자 구조가 반사음을 자연스럽게 잡아두는 최적의 값이 됐다는 설명이다. 목재 바닥, 석고 벽 등도 따뜻한 잔향에 일조했다. 빈터링 대표는 “오르간도 음향 울림에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냈다”고 덧붙였다. 오르간을 떼버리는 건 콘세르트헤바우에서 절대 있어선 안 되는 일이라고.
이런 공연장 특성은 RCO가 섬세한 소리를 만드는 데도 일조했다. “콘세르트헤바우에선 단원들이 소리를 더 세심하게 들어야 하는 상황에 놓여요. 이 홀에선 소리가 잘 어우러지다 보니 연주자들이 서로의 소리를 더 주의 깊게 들어야 하죠. 작은 공간에서 서로의 연주에 더 민감해져야 하는 실내악을 하는 것처럼 집중도가 더 높아져야 해요. 이 집중력이 RCO 특유의 소리를 내게 하는 힘이에요.”
콘세르트헤바우 메인 홀에서 가장 좋은 좌석은 어디일까. “잘 섞인 소리를 듣기 위해선 조금 멀리 앉는 게 좋아요. 전 보통 발코니 첫 번째 줄에 앉아요. 전체 소리가 어우러져 듣기 좋죠. 무대 뒤편 자리도 좋아요. 악단과 가까워 주변 악기 소리가 명확히 들리거든요. 지휘자가 뭘 하는지, 표정은 어떤지도 세세히 볼 수 있어요. 중요한 건 나쁜 좌석이라고 할 만한 곳이 없다는 겁니다.”
빈터링 대표는 RCO가 최정상 오케스트라 반열에 올라선 원동력으로 다양한 지역에서 온 인재들을 꼽았다. 암스테르담은 독일, 오스트리아처럼 고전주의 음악을 주도하던 독일어권이 아니다. RCO가 지금의 위상을 쌓기 위해선 외부 음악인을 포용하는 등 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했단 얘기다. 그는 “RCO 단원의 절반이 네덜란드 출신이고, 나머지 절반은 한국 등 25개국 출신”이라며 “협력이라는 네덜란드 특유의 문화를 바탕으로 단원들이 좋은 팀워크를 이뤄가고 있다”고 말했다.
새로운 음악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건 RCO의 전통이자 과제다. 현대 음악을 최대한 많이 연주하고 새 작품 위촉도 적극적으로 한다는 계획이다. 빈터링 대표는 “과거 RCO의 수석지휘자였던 빌럼 멩엘베르흐가 말러 공연을 했을 때엔 말러가 현대 음악이었다”며 “(수석 지휘자가 될) 클라우스 메켈레도 현대 음악에 관심이 많은 만큼 현대 음악을 꾸준히 조명해 오던 RCO의 전통을 더 강조할 것”이라고 말했다.
올 11월 RCO 내한 공연에 대한 기대감도 숨기지 않았다. “2023년이 마지막 방한이었는데 사실 전 독일에서 레겐스부르크 돔슈파첸 합창단 단원으로 있으면서 이미 한국 순회공연을 해본 적이 있어요. 한국은 임윤찬, 조성진, 김봄소리 같은 훌륭한 음악가도 많이 나오고 관객층의 연령대도 다양해요. 이번엔 롯데콘서트홀뿐 아니라 서울 예술의전당 등 다른 콘서트 홀에서도 공연하는데요. 이건 확신합니다. 한국에서 RCO와 클라우스 메켈레가 환상적인 공연을 관객들에게 선사할 거예요.”
RCO는 네덜란드 창립 100주년이었던 1988년 네덜란드 여왕인 베아트릭스로부터 왕립을 뜻하는 ‘로열’ 칭호를 받았다. 2010년 영국 음악 전문 매체인 그라모폰에서 다른 유수 악단을 제치고 세계 1위 악단으로 평가받기도 했다. ING, 유니레버, 부킹닷컴 등 기업들과 협업하면서 해외 시장을 개척하는 데도 힘쓰는 중이다. 1977년 처음 내한 공연을 연 뒤 한국에도 정기적으로 방문하고 있다.
암스테르담=이주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