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2025 슈퍼 리치 보고서
부자(富者). 많은 재산을 보유한 부유층을 뜻하는 말이다. 어느 정도 자산을 가져야 부자라고 부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여러 갈래로 나뉘지만, 글로벌 시장에서는 금융자산 100만 달러 이상을 보유했다면 부자로 정의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국내 주요 금융사도 100만 달러에 해당하는 10억 원을 부자의 기준으로 잡곤 한다.
부자의 수는 전 세계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글로벌 시장조사 업체 캡제미니의 ‘2024 글로벌 웰스 리포트’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주식시장 활황세에 힘입어 100만 달러 이상의 투자 가능 금융자산을 보유한 백만장자 수는 전년 대비 5.1% 증가했다. 이들의 금융자산 규모 총액도 4.7% 늘었다.
‘금융자산 10억 이상’ 부자 46만 명 돌파
그럼 한국의 상황은 어떨까.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의 ‘2024 한국 부자 보고서’에 따르면 10억 원 이상의 금융자산을 보유한 한국 부자의 수는 2020년만 해도 35만4000명이었으나 2021년 39만3000명, 2022년 42만4000명, 2023년 45만6000명으로 급격하게 늘었다. 팬데믹 시기 자산 시장이 요동치며 부자의 수도 함께 성장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 지난해에는 46만1000명으로 집계돼, 연구소가 한국 부자 수를 집계하기 시작한 2011년 이후 가장 낮은 증가율인 1%(5000명)를 기록했다. 현재 전체 인구 중 0.9%가 부자로 살고 있는 셈이다.
이들 부자를 보다 세분화하면 자산 규모별로 3개 그룹으로 나눌 수 있다. 우선 금융자산 10억 원에서 100억 원 미만을 보유한 ‘자산가’는 42만1800명으로 전년보다 5900명 증가했다. 그다음으로 금융자산 100억 원에서 300억 원 미만의 ‘고자산가’는 2만9100명으로 6.3%였는데, 전년과 비교하면 2600명이 줄었다. 또 한국에서 가장 많은 부를 쌓은 것으로 분류되는 금융자산 300억 원 이상 ‘초고자산가’는 1만100명으로 전년에 비해 1500명 늘었다.
지난해 증가세를 보였던 자산가, 초고자산가 그룹과 달리 고자산가에 속하는 부자가 전년 대비 감소한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해 고자산가의 일부는 주식 가치 상승 등에 힘입어 초고자산가 그룹으로 옮겨간 반면, 부동산 저점 매수 등으로 유동성이 줄고 금융자산이 감소한 영향을 받은 일부는 자산가 그룹으로 이동했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한국 부자의 1인당 평균 금융자산은 지난해 기준 61억3000만 원이었지만 이 또한 부자 그룹에 따라 평균이 크게 차이났다. 자산가는 25억3000만 원, 고자산가는 168억9000만 원, 1252억8000만 원으로, 상위 그룹으로 갈수록 평균 금융자산의 자릿수가 하나씩 달라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부자들이 생각하는 부자
부자들은 스스로를 부자라고 여기고 있을까.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는 부동산자산과 금융자산을 더한 총자산이 20억 원 이상인 부자를 대상으로 질문했다. 한국 부자들은 ‘금융자산과 부동산자산을 포함한 총자산이 100억 원은 있어야 부자’라고 생각하는 이가 31.3%로 가장 많았다. 이어 50억 원(12.3%), 200억 원(8.5%)이 뒤를 이었다. ‘총자산 100억 원은 보유해야 부자’라고 생각하는 비율이 24.5%였던 2023년과 비교하면, 기준 금액에 대한 부자들의 컨센서스가 보다 확고해진 것으로 해석된다.
일반적으로 부자라는 단어는 재물이 많은 사람이라는 뜻으로 통용되지만, 연구소는 자산부자, 명예부자, 사람부자, 마음부자 등 다양한 의미가 포함된 복합적 의미의 ‘부자’에 본인이 해당된다고 보는지 질문했다. 그러자 부자 중 52.8%가 ‘지금 나는 부자라고 생각한다’고 응답했고, 나머지는 ‘부자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특히 총자산이 많을수록 스스로를 ‘포괄적 의미의 부자’라고 생각하는 자각도가 높았다. 총자산 100억 원 이상인 이들의 72.9%가 스스로를 부자라고 답한 반면, 총자산 50억 원 미만인 이들은 45.1%가 자신을 부자라고 여겼다.
부자의 70.4%가 수도권 거주
부자들은 어느 지역에 많이 살고 있을까. 전국 단위로 살펴보면 지난해 기준으로 부자의 70.4%가 서울과 경기, 인천 등 수도권에 거주했다. 특히 서울에는 한국 부자의 45.3%인 20만9000명이 거주하고 있었다. ‘부 집중도(수치가 클수록 해당 지역의 부 집중도가 높고 자산가 대비 고자산가가 많다는 의미)’ 지수가 1을 초과한 지역 또한 전국에서 서울시(1.24)가 유일했다. 서울 안에서도 특히 강남과 서초, 종로, 용산의 부 집중도가 1을 초과했다. 2023년에 부 집중도가 1을 넘어서며 신흥 부촌으로 떠올랐던 성동구는 이 지수가 지난해 0.97로 하락했다.
이들이 부를 쌓은 방법도 관심의 대상이다. 한국 부자들이 자산을 만든 원천 중 가장 두드러지는 부문은 사업소득(32.8%)과 부동산 투자(26.3%)였다. 이어 상속·증여(18.3%), 금융 투자(14.3%), 근로소득(8.5%)이 부자들이 꼽은 부의 원천으로 꼽혔다. 사업소득과 부동산 투자의 비중은 전년에 비해 1.8%포인트씩 늘어, 근로소득과 상속·증여의 비중이 각각 2.8%포인트, 1.7%포인트 줄어든 것과 대비되는 모습을 보였다.
자산을 불리는 밑천으로 큰 역할을 했던 ‘종잣돈’의 규모는 평균 7억4000만 원으로 조사됐다. 부자들이 종잣돈을 만든 시기는 평균 42세로, 종잣돈 규모가 늘어날수록 이를 마련한 나이도 자연히 올라갔다. 종잣돈이 3억 원 미만일 경우 40세, 10억 원 이상일 경우 45세에 밑천을 만들었다고 부자들은 응답했다.
종잣돈을 만들 수 있었던 배경도 부의 원천과 마찬가지로 사업, 부동산이 많이 꼽혔다. 한국 부자의 종잣돈 마련 방법 1위는 사업 수익, 2위는 부동산 투자, 3위는 부모 원조·상속, 4위는 급여소득, 5위는 주식·펀드 등이었다. 종잣돈 규모에 따라 마련 방법의 순위도 일부 달라졌는데, 특히 종잣돈이 3억 원 미만인 경우에는 1순위가 부동산 투자로 집계됐다.
부자가 활용하는 ‘부의 성장 동력’
부자들은 40대에 마련한 종잣돈을 바탕으로 현재도 자산을 증식시키는 데 관심을 아끼지 않고 있다. 부자들이 현시점 자산을 불려 가는 ‘부의 성장 동력’으로는 소득잉여자금이 꼽힌다. 소득잉여자금은 부자의 투자 여력을 알아볼 수 있는 지표로, 근로·사업·이자·임대소득 등의 소득에서 세금과 생활비 등 소비, 지출을 뺀 금액을 말한다. 지난해 부자들의 소득잉여자금은 연평균 7600만 원으로, 전체 소득에서 9.1%를 차지했다.
부를 확장하는 두 번째 성장 동력은 자산 배분 전략이다. 부자들은 소득잉여자금을 여러 자산에 배분해 성장시켰다. 연평균 소득잉여자금 대비 자산유형별 배율을 살펴보면, 금융자산(28배), 거주용 부동산(19배), 거주용 외 부동산(16배) 순으로 나타났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는 부자들이 금융자산을 일정 부분 쌓으면 부동산자산으로 옮겨 투자하는 ‘자산 배분 이동 전략’을 취한다고 분석했다.
부자들은 부채를 활용한 레버리지 투자에도 공을 들인다. 부자 중 75.3%가 부채를 갖고 있으며, 이들이 활용하는 부채 규모는 평균 6억7000만 원이었다. 특히 총자산이 많은 부자일수록 부채 활용을 적극적으로 하는 경향이 발견됐는데, 총자산 50억 원 미만 부자는 64.6%, 총자산 50억~100억 원 미만은 80.7%, 총자산 100억 원 이상은 87.1%의 총부채 보유율을 보였다.
자산 포트폴리오, 부동산이 55.4% 달해
한국 부자들의 자산 포트폴리오는 부동산으로 쏠려 있는 모습이다. 지난해 한국 부자들의 자산 포트폴리오를 보면 부동산자산이 55.4%, 금융자산이 38.4%로 구성됐다. 회원권이나 예술품과 같은 기타 자산은 미미한 수준이다. 다만 부동산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전년 대비 0.8%포인트 감소했는데, 지난해 금리 상승으로 인해 개인이 소유한 부동산 가격이 하락한 것이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인다.
부자들의 금융 투자 성향은 전반적으로 안전한 투자를 추구하는 경향이 짙었다. 손실 위험을 최소화하고 안정된 수익 보장을 기대하는 안정형(4.8%)과 안정추구형(39.5%)이 44.3%에 달했고, 그다음으로 위험중립형이 35.8%로 나타났다. 손실 위험을 수용하며 높은 수익을 추구하는 적극투자형(18.3%)과 공격투자형(1.8%)은 상대적으로 낮은 비중을 보였다. 다만 안정지향적인 금융 투자 성향이 전년(51.6%)에 비해서는 다소 약해지는 추세였다.
부동산 투자 성향 또한 금융 투자와 비슷한 맥락에서 안정을 지향하는 모습이었다. 안정추구형과 안정형을 더한 안정지향적 성향이 44%로 가장 많았고, 적극투자형과 공격투자형을 포괄하는 공격지향적 성향이 24.5%였다.
부자의 60% 이상이 자신의 투자 수준을 높게 평가했다. 우선 금융 투자 지식에 대해서는 전문적으로 분석해 스스로 전략적인 투자를 할 수 있는 ‘매우 높은 수준’(1.3%), 투자와 관련된 경제 지표와 시장의 흐름을 알 수 있는 ‘높은 수준’(61.5%)이라는 응답이 나왔다.
부동산 투자에 대해서도 ‘높은 수준 이상’의 지식을 보유했다고 응답한 부자가 60.8%였다. 투자 지식에 대한 부자들의 자신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투자 지식 수준에 대한 자신감은 보유 자산이 많을수록 더 높아졌다. 부동산자산이 40억 원 이상인 부자는 68.2%가 ‘높은 수준 이상’의 지식을 보유하고 있다고 답했고, 25억 원 미만인 부자는 53%만이 같은 답변을 내놨다.
부자 4명 중 1명은 배우자·자녀에 증여
UBS의 ‘2024 글로벌 웰스 리포트(Global Wealth Report 2024)’에 따르면 향후 20~25년간 전 세계 부자가 보유한 83조5000억 달러(약 11경 원)의 부가 세대를 거쳐 이전될 것으로 전망됐다. 한국 부자들도 부의 이전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아지는 추세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한국 부자의 60.8%는 상속이나 증여를 받은 경험이 있고, 24.3%는 증여를 한 경험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한국 부자의 54.3%가 ‘향후 상속이나 증여 계획이 있다’고 답했다. 상속이나 증여자산으로는 현금·예적금이 84.3%로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거주용 부동산(65.4%), 거주용 외 부동산(60.8%), 현물자산(53.5%)의 순이었다.
우리나라 부자들은 상속·증여와 관련해 어떤 고민을 안고 있을까. 부자가 상속을 받을 때 가장 어려웠던 점은 상속세 마련(37.6%)이었고, 가족구성원 간 갈등(33.2%), 공동 명의나 공정 분할 등에 따른 재산 분할(26.7%)도 고민거리로 떠올랐다. 부자들은 증여를 진행할 때도 비슷한 어려움을 꼽았다. 이들은 증여세 마련(37.5%)을 크게 고민했고, 다음으로 증여 관련 법률(32.2%), 공동 명의나 공정 분할 등에 따른 재산 분할’(30.3%)을 힘들었던 점으로 답했다.
최근에는 상속세에 비해 낮은 증여세 세율로 인해 증여에 관심을 두는 부자들이 늘었다. 부자의 24.3%가 배우자(12.5%)와 자녀(21.8%)에게 증여를 진행했다. 증여자산의 종류는 현금·예적금(54.6%), 거주용 부동산(48.5%), 금·보석 등 현물자산(23.7%), 주식 등 유가증권(21.6%), 거주용 외 부동산(19.6%) 순이었다.
부자의 결혼, 일반대중과 차이점은
일각에서는 부자들의 결혼을 '부'와 '부'가 만나는 합병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부자들은 배우자를 선택할 때 어떤 기준을 세우는지도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하나은행 하나금융연구소가 발간한 '2025 대한민국 웰스 리포트'에 따르면 금융자산 10억 원 이상의 부자들은 ‘결혼은 꼭 해야 한다’는 데 동의하는 비율이 36%로, 금융자산 1억 원 미만의 일반 대중(27.4%)에 비해 높았다. 결혼을 하면 자녀를 꼭 낳아야 한다’는 생각도 자산 규모에 따라 차이가 있었는데, 부자는 47%가 동의한 반면 대중부유층과 일반대중은 각각 40%, 36%로 동의율이 부자보다 낮았다.
배우자를 선택하는 기준도 일반대중과 차이를 보였다. 우선 부자들이 배우자를 선택할 때 가장 중시하는 것은 1순위 성격(60.9%), 2순위 가족 분위기(56.5%), 공동 3순위 집안의 경제력·외모(47.8%)였다. 특히 부자들은 예비 배우자의 소득 수준(26.1%)보다도 집안의 경제력(47.8%)을 중요하게 여겼다. 일반대중은 집안의 경제력(19%)보다 예비 배우자의 소득 수준(27.6%)을 더 고려한 것과 대비된다. 부자와 일반대중 간 가장 큰 차이를 보였던 항목은 부모의 지역(고향)이다. 부자는 예비 배우자 부모의 지역을 필수 요건으로 본다고 응답한 비율이 26.1%였던 반면, 일반대중은 1.7%에 그쳤다. 두 답변 간의 차이는 15.1배에 달한다.
부자들은 배우자를 만날 때 자연스러운 만남보다는 친구나 지인, 부모님의 소개로 만나는 경우가 56.5%로 많았다. 학교, 직장, 모임 등에서 ‘자연스럽게 만났다’는 답변은 34.8%로 집계됐다. 또 결혼을 한 지 3년 미만이거나 결혼을 앞두고 있는 금융자산 10억 원 이상을 보유한 부자 (예비) 신혼부부 중 48%는 보유 자산의 대부분이 상속분이었다.
결혼하는 과정에서 부자가 주로 지출하는 항목도 일반대중과 달랐다. 부자가 더 많이 지출하는 대상은 예단, 이바지 등 집안을 위한 항목이거나 예물, 신혼집·인테리어와 같이 현실적 필요에 의한 항목이었다. 반면 일반대중이 더 많이 지출하고 있는 항목은 웨딩촬영, 드레스·메이크업, 혼수 등 결혼식을 진행하는 당사자를 위한 것들이 많았다.
정초원 기자 cc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