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년 만에 연극' 이영애 "4kg 빠지고 악몽도…그래도 좋아" [인터뷰+]

입력 2025-05-13 14:18
수정 2025-05-13 16:03


배우 이영애가 32년 만에 연극 무대에 오른 소감을 전했다.

이영애는 13일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에서 진행된 연극 '헤다 가블러' 인터뷰에서 첫 공연이후 쏟아지는 호평에 "저에 대한 기대감이 별로 없었나 보다"라며 겸손한 모습을 보이며 웃음을 자아냈다.

'헤다 가블러'는 누구에게나 사랑받고, 장군의 귀한 딸로 당당하게 자기 삶을 살던 여성이 결혼 후 느끼는 권태감과 갈등, 내면의 혼돈을 다룬 작품. 이영애는 타이틀롤 헤다 역을 맡아 130분 러닝타임 동안 극을 이끈다. 이영애는 헤다 역을 맡으며 32년 만에 무대에 올랐다. 지난 8일 상연을 시작한 '헤다 가블러'는 매회 이영애의 연기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작품을 준비하며 4kg이나 빠지고, 악몽까지 꿨다는 이영애는 "아무래도 몇십년 만에, 큰 무대에 올랐고, 같이 한 분들이 경력이 많은 분이 무대도 잘 쓰시고, 그분들 덕에 큰 기둥이 돼 잘 받쳐주셔서 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며 "회를 거듭할수록 저도 자연스러워지고, 무대를 어떻게 써야 할지, 관객들의 반응도 느껴가면서 해야 할 포지셔닝이나 연기를 구축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는 거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관객들의 반응을 열심히 찾아보고 있다며 "여러 번 보신 관객들이 '이렇게 다르게 했더라' 평하신 분들도 있더라"며 "저 나름대로 무대를 즐길 수 있는 여유를 즐기려 하고 있다"면서 미소를 보였다. 다음은 이영애와 일문일답.



▲ 5회 동안 숨 가쁘게 연기했다.

= 오랜만에 연기해서. 첫술에 배부를 수 없을 거 같다. 바람이 있다면 다시 좀 더 봐주셨으면 좋겠다. (웃음) 많이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하다. 끝까지 더 열심히 새롭게 오실 때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주도록 노력하고 있다.

▲ 오랜만에 연극 무대임에도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 저에 대한 기대보다 오려가 많았나보다 싶다.(웃음)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좋게 봐주시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아무래도 몇십년 만에 큰 무대에 올랐는데, 같이 한 분들이 경력이 많은 분이라 무대도 잘 쓰시고, 그분들 큰 기둥이 돼 잘 받쳐주셔서 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회를 거듭할수록 저도 자연스러워지고, 무대를 어떻게 써야 할지, 관객들의 반응도 느껴가면서 해야 할 포지셔닝이나 연기를 구축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는 거 같다. 여러 번 보신 관객들이 '이렇게 다르게 했더라' 평하신 분들도 있더라. 저 나름대로 무대를 즐길 수 있는 여유를 즐기려 하고 있다.

▲ 왜 이 작품을 택했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 대답은 한결같다. 인연 같다. 하고 싶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타이밍도 맞아야 하고. 이번에 (한양대 대학원) 은사님인 김미혜 교수님이 10년 넘게 입센의 작품을 번역하셔서 노르웨이에서 훈장을 받기도 했다. 그때 입센 작품을 하게 되면 어떤 작품을 할까 얘기가 오갔는데, '저는 그럼 '헤다 가블러'를 하고 싶다'는 말을 했다. 이 캐릭터는 다양한 색을 표현할 수 있고, '이영애스럽게 표현하면 어떻게 할까' 싶더라. 그러다 지난해 교수님과 '벚꽃동산' 보러왔는데, 무대가 너무 좋더라. 그때 LG아트센터 센터장님을 만났고,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은수좋은 날' 촬영이 끝나던 타이밍이라 '그러면 때가 맞겠네요' 이렇게 하게 됐다.

▲ 헤다의 선택이 파격적이다 보니, 결혼과 육아에 만족스러운 모습을 보이던 이영애의 모습과 괴리감이 느껴지더라. 왜 헤다에게 끌렸을까. 싱크로율이 어느 정도일까.

=싱크로율을 생각한다면 헤다와 같다면 큰일 난다.(웃음) 나이를 먹으면서 느끼는 감정이 있고, 출산과 육아를 거치면서 삶에서 보는 자세가 더 넓어지고 긍정적으로 깊어졌다. 제 직업이 연기자로서 풀어낼 수 있는 다양함을 보여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헤다를 여자의 심리 위주로 볼 필요는 없지 않나 싶다. 속박에서 벗어난다는 단순한 생각보다는 스스로의 사유할 수 있는, 화두가 되는 연극이 된다고 생각했다. '결혼을 벗어나고 싶다' 이런 단편적인 생각이 아니라, 자신도 모르는 욕망도 있을 테고, 표출하지 못하는 욕망도 있고 자아도 있을 텐데 그런걸 겹겹이 풀어내 보자, 이렇게 공부하듯 하고 있다. 굳이 이영애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이런 내적 자아, 외적 자아가 있을 거라고 본다. 단순히 '결혼한 여자'라고 보지 않고 보셨으면 좋겠다.

▲ 공감된 부분은 없었나.

= 크게 공감한 부분은.(웃음) 그렇지만 공감하려 많이 노력했다. 그래서 열심히 공부했는데, 입센이 헤다 그 자체더라. 모성애도 없고, 부성애를 권총이라 생각했다. 어떻게 보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거다. 누구나 정신적 결핍이 있지 않나. 헤다의 선택은 사랑의 결핍 같다. 사랑의 결핍이 모성애, 아이를 갖는 것에 대한 거부감으로 온 게 아닐까.

▲ 그렇다면 공감하기 힘든 부분은 뭐였을까.

= 그렇다가 죽을 거 가진 없지 않나.(웃음) 그래서 죽음을 미화하는 게 아닌가 고민도 됐다. '헤다 가블러'는 죽음을 미화하는 결말이 아니라 어떤 걸로 든 '해방을 얻고 싶다' 이걸로 봐주셨으면 좋겠다. 또 헤다의 심리를 찾아가는 것도 어려웠다. 미지수를 낳는 여자라 관객들도 그걸 같이 풀어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 캐릭터를 만들 때 심혈을 기울인 부분이 있을까.

= '헤다 가블러' 초연 날짜가 1월 31일 제 생일과 같았다. '그래 헤다를 해야해' 운명 같다고 생각하며 임했다.(웃음) 120년 전 사람들은 이 여자를 보면서 이해하기 힘들었던 거 같다. 그래서 '악녀'가 아닌 '이해할 수 있는 여자'로 그리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게 봐주신 분들이 많아 제가 연구했던 게 헛되지 않은 거 같다. 헤다를 그냥 '저런 사람이 있을 수 있겠구나' 해석을 해봤다. 기존의 헤다를 이미지를 생각한 분들은 '조금 가벼운가' 생각할 수 있는데, 사실 헤다는 그럴 수 있다는 정의를 저는 내리고 싶다.



▲ 헤다는 욕망의 화신이었다. 이영애의 '욕망'은 뭘까.

= 지금까지 나온 많은 것들이, 저도 보지 못했던, 나도 몰랐던 연기의 즐거움이 그게 아닐까. 제가 어딜 가 눈을 부라리고 이런 걸 해봤겠나. 관객들은 저를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거고, 저도 그걸 연극적으로 느끼는 거고. 악플다는 사람들에게 '가다가 넘어져라.' 이런 생각하기도 하고, 뉘우치기도 하고. 사람 마음이 다 똑같지 않을까. 작은 헤다일 수 있고, 큰 헤다일 수 있고, 누구나 마음속에 헤다는 있을 거 같다.

▲ 헤다 같은 우울함은 느낀 적이 없을까.

= 우울증은 아닌데, 코로나 때 많이 힘들었다. 애들이 학교를 안 가고, 영상 수업할 때 너무 힘들었다. 쌍둥이 둘이 있지 않나. 미쳐버리는 줄 알았다. 너무 힘들어서 울었다.(웃음) 그래서 선택한 게 '구경이'였다. 주부 입장에서 아이만 키우고 육아만 하는 게 여자의 인생에서 그게 전부가 아니더라. 더욱더 제 일에 대해 감사함을 느끼고 있다.

▲ 이영애의 연기력이 돋보이는 게 스크린 연출이었다.

= 연출님이 말씀하셔서 '너무 좋다'고 했다. 무대가 넓어서 그 단점을 커버할 수 있고, 매체 연기도 많이 했기 때문에. 카메라 연기를 많이 해서 제 의견을 더 많이 피력했다. 다만 단점은 연극의 장점인데, 일회적이라 제가 모니터가 안 된다는 거다.(웃음) 스크린 연기를 그동안 오랫동안 해왔던 카메라 연기가 무대 연기에 많이 도움이 된 거 같다.

▲ 원캐스트라 체력적으로도 힘들 거 같다.

= 4kg 정도 빠진 거 같다. 그래서 보강하려 하지만, 제가 선택한 거라 어쩔 수 없다. '행복한 다이어트'라고 생각한 거 같다.

▲ 새 신부 역할이다 보니 부담감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피부 관리도 꾸준히 하고 있다고 알려졌는데, 이번 작품을 위해 외적으로 더 준비한 게 있을까.

= 새신부든 헌신부든 그것까지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웃음) 노력하려 했는데 시간이 없었다. 이걸 하면서 대사 까먹는 꿈도 꾸고, 극장 관객들이 다 나가는 꿈도 꿨다.(웃음) '영애 씨, 그렇게 하면 안 돼요' 이런 말도 하고. 실제인 줄 알았다. 그래서 꿈에서 엉엉 울었다. 그래서 다시 책을 들었다. 그 상황에서 어떤 관리를 했겠나. 약속도 다 취소하고.

▲ 오랜 연기를 했지만 무대 연기는 다르지 않나. 그걸 위해 준비한 게 있을까.

= 친구들에게 물어봤다. 그리고 같이 연기하는 분들이 너무나 잘 가르쳐주셨다. 잘 도와주시고. 자신감도 키워주시고. 그렇게 하나씩, 조금씩 배워갔다. 제 목소리를 갈아엎을 순 없지 않나.(웃음) 하지만 연극을 할 땐 헤다스럽게, 상대에 맞춰 리듬감이나 스피드나 톤에 차이를 뒀다.

▲ 그런 부분들이 힘들지 않았나.

= 너무 힘들다. 재밌다. 행복한 스트레스다.

▲ 공교롭게도 이혜영 배우도 '헤다 가블러'를 같은 시기에 선보인다. 이영애가 추천하는 '헤다 가블러'의 관전 포인트가 있다면?

= 처음엔 극장에 와주신 분들이 너무 감사해서 하트도 하고 그랬다. 그랬더니 주변에서 '헤다 스럽게 하라'고 해서 자제하고 있지만, 감사한 마음이 정말 크다. 제가 이걸 홍보할 때 '너무 어렵지 않다'는 말을 한다. 주변에 젊은 사람들한테, 평소에 연극을 안 보는 사람들에게 많이 물어봤다. 그들이 봐도 '재밌다'고 해주더라. 그게 너무 감사했다. '됐다' 싶더라. 이 안에서 재밌는 요소를 많이 풀었다. 처음엔 권총들고 가오잡고 찍다가, 웃는 게 더 좋다고 하시더라. 웃음에 가려진 악마적인 본성이 더 골이 깊지 않나. 그런 뒤틀린 결을 보려 극장에 오신 게 아닌가 싶다. 이혜영 선생님과의 비교는, 각자의 색깔이 있으니까. 저의 헤다는 편안하고, 재밌는, 사람들의 마음이 담긴 걸로 봐주셨으면 좋겠다.

▲ 연극의 매력에 빠진 거 같다.

= 자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또 하고 싶다. 이런 대극장에서 해봤으니까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눈빛도 오고 갈 수 있는, 호흡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좋겠다 싶더라.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