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5월 13일 10:28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반도체 장비회사 HPSP 매각이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미국발 관세 리스크 등 대외 환경이 불안정해지면서 딜을 잠정 연기하기로 한 것이다. 매각가를 낮추지 않고 제반 환경이 안정될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13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HPSP를 매각중인 사모펀드(PEF) 운용사 크레센도에쿼티파트너스는 ‘프레스토 6호’ 펀드를 통해 소유하던 HPSP 지분 39.4%를 ‘히트2025홀딩스’ 특수목적법인(SPC)로 현물출자했다고 공시했다. 크레센도는 HPSP의 지분을 SPC로 옮겨 자본재조정(리캡)을 단행할 예정이다. HPSP 지분을 담보로 레버리지를 일으켜 자기자본 투자 비중을 낮추고 출자자(LP)들에게 투자금을 분배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는 HPSP의 매각이 장기화될 것을 감안한 조치다.
크레센도는 지난해 말 UBS를 주관사로 선정해 HPSP 매각에 나섰다. 올해 초 예비입찰을 진행하고 주요 재무적투자자(FI)와 전략적투자자(SI)를 숏리스트(인수적격후보)로 추렸다. 당초 연내에 딜을 마무리 하기로 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수입품에 대한 관세를 예고하며 반도체 산업의 불확실성이 커졌다. 이로인해 HPSP의 잠재 매수자 역시 투자를 결정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매각 절차를 본격화한 지난해 11월, 회사의 시가총액은 2조8000억원에 달했다. 시장에서는 크레센도의 보유 지분(39.4%) 기준 매각가 1조원이 넘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날 기준 HPSP의 시가총액은 1조9800억원 수준까지 내려왔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리스크 등 대외 환경 불안정으로 6개월 만에 시총이 1조원 가량 줄어들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일부 인수 후보자가 시간을 달라는 제안을 했고, 크레센도도 여러 요인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이같은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HPSP 매각 연기에는 회사의 가치를 확신하고 있는 크레센도의 자신감이 깔려있다. HPSP는 반도체 선단 공정에 필수적인 고압수소 어닐링(열처리) 장비를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공급하는 업체다. HPSP가 시장 내 독점적 지위를 가진만큼 가격을 낮춰 거래를 빠르게 진행하기 보단 시장 상황이 안정화될 때까지 기다리며 적정 가치를 받겠다는 것이다. 리캡 규모는 2000억원 미만으로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과거 프리드라이프 딜도 유사한 상황을 겪었다. VIG파트너스가 상조업체 프리드라이프를 매각하는 과정에서 매각가를 두고 이견과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딜이 장기화됐지만 VIG는 리캡을 통해 시간을 벌며 적절한 매각 시점을 기다렸다.
코스닥 시장에서 HPSP 주가는 이날 10시 20분 기준 전일 종가(2만 3450원) 대비 소폭 오른 2만 3700원에 거래되고 있다.
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