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제재가 中 혁신 돕는 꼴…韓, 세상에 없는 기술로 무장해야"

입력 2025-05-12 17:29
수정 2025-05-13 00:36

반도체 장비업체 주성엔지니어링은 지난해에도 성장 가도를 달렸다. 전년 대비 매출이 40% 넘게 늘었고, 영업이익은 두 배 이상 급증했다. 침체 일로에 있던 메모리 반도체 사이클과 미·중 반도체 패권 경쟁도 큰 변수가 되지 못했다. 오히려 경쟁 업체들이 도태돼 주성엔지니어링이 반도체 증착장비 분야의 절대 강자로 자리 잡는 계기가 됐다.

쏟아지는 악재를 호재로 바꾼 비결은 단 하나였다. 추격자인 중국이 넘볼 수 없는 기술을 확보하는 것. 주성엔지니어링 창업주인 황철주 회장은 “혁신하지 못하면 가격 결정권을 상대(구매자)에게 내주지만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하는 유일한 제품을 만들면 만든 사람이 가격을 결정할 수 있다”며 “중국도 따라올 수 없는 혁신기술을 갖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중국 반도체 기술은 어느 정도입니까.

“3년 전만 해도 한국이 약 10년 앞섰는데 이제는 격차가 약 2년으로 줄었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이 중국 견제를 안 했으면 중국이 천천히 쫓아왔을 텐데 미국이 관세로 압박하니 중국이 혁신할 동력이 커진 겁니다.”

▷왜 그런 겁니까.

“중국이란 비행기는 이미 이륙했어요. 그 전에 미국이 제재했어야 하는데 비행기가 뜬 뒤에는 아무런 소용이 없죠.”

▷정말 심각한가요.

“심각합니다. 시장 규모가 핵심인데 지금까진 미국 시장이 중국보다 컸습니다. 미국이 혁신해서 제품을 시장에 뿌렸으니까요. 그런데 앞으로는 중국 시장이 더 커질 가능성이 큽니다. 반도체 부품을 수입하는 미국은 관세 문제로 점점 타국과 불편해질 겁니다. 그사이 중국은 수직 계열화된 자국 기업을 중심으로 반도체 시장을 키울 겁니다.”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은 누가 가격을 결정하느냐입니다. 시장과 소비자가 가격을 결정하면 제품 개발자와 판매자가 굶게 되고, 반대로 판매자가 가격을 결정하면 그건 혁신이기 때문에 살아남을 수 있는 거죠.”

▷세상에 없는 기술만이 정답인가요.

“네, 다행히 한국의 혁신 반도체 기술을 똑같은 수준으로 따라 한 중국 기업은 아직 없습니다. 중국은 표준화된 장비에서 제품 주기가 긴 것 위주로 먼저 내재화하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따라오겠지만 그만큼 우리도 앞서나가야겠죠.”

▷인공지능(AI) 시대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습니까.

“반도체 기술에서 풀어야 할 숙제가 다섯 가지입니다. 속도를 높이고 소비 전력을 줄여야 합니다. 또 발열을 없애고 기판 자유도를 높이면서도 비용을 절감해야 합니다. 지금 한국 미국 대만 일본 기업 모두 똑같은 상황입니다. 주성은 이 문제를 해결할 원천기술을 개발했고 그 결과를 연내 내놓을 겁니다.”

▷완전히 새로운 기술인가요.

“네, 집적도를 해결하는 기술입니다. 기존에는 단독주택 100가구를 지을 때 넓은 면적에 단층으로 지어야 했다면, 지금 개발 중인 것은 100채를 높은 아파트 한 동 안에 다 짓는 기술입니다. 면적이 100분의 1로 줄어들기 때문에 속도, 소비 전력, 발열, 기판 자유도, 비용 문제를 다 해결할 수 있죠.”

▷미국 관세 때문에 공장을 이전하나요.

“지금 미국 법인은 영업 중심이지만 생산을 해야 한다면 해야겠죠. 그러나 반도체 제조시설은 짓는 데 3~4년 걸리는데 그땐 이미 도널드 트럼프 2기 임기가 끝납니다. 결정하기 어려운 문제죠. 물론 고객사가 원한다면 협의해 미국 생산도 고려해 볼 수 있습니다.”

▷창업 이후 기술 개발에만 전념했습니다.

“세상에 없는 기술과 혁신만이 아무것도 없는 한국 땅에서 기업이 성공하는 방법이니까요. 생각해 보면 한국 기업은 경제 상황이 어려울 때 혁신을 이뤄온 것 같습니다. 이익이 많이 나면 기업이 왜 고생해서 혁신하겠습니까. 배고팠기 때문에 기술을 개발한 건데 과연 지금도 우리가 배고픈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위기의식이 없다는 말인가요.

“난세에 영웅이 나온다고 하잖아요. 혁신은 돈으로 되는 게 아닙니다. 절실함과 위기의식을 가지고 매달려야 가능할까 말까입니다.”

▷주성의 기술이 계속 세계 1등일까요.

“특허로 등록한 기간까지는 보호받겠죠. 앞으로 20년 정도 가능하다고 봅니다. 특허가 만료돼도 기술 자체를 이해하는 곳은 많지 않을 겁니다. 그 기간 기존 기술을 향상하는 게 제 역할입니다.”

▷경영난을 겪는 중소기업이 많습니다.

“한국은 과거엔 모방을 통해 성장해 기업 생존 주기가 짧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혁신기술 개발에 매달린 중소기업은 자금난 때문에 생존하기 어려웠죠. 결국 대·중소기업 간 협업이 이뤄져야 모두가 성장할 수 있습니다.”

▷이공계 인재가 부족해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초의 혁신을 연구개발하는 엔지니어를 육성하고 보호하는 정책이 굉장히 부족합니다. 대학은 지식인을 키우고 기업은 기술자를 육성합니다. 우리나라 혁신을 이끌 엔지니어 지원 시스템이 갖춰져야 지속 가능한 경제강국이 될 수 있어요. 새로운 성장은 새 기준 위에서만 가능하고, 지금은 새 기준을 만드는 리더십이 절실한 때입니다.”

■ 황철주 회장은

△1959년 경북 고령 출생
△1986년 인하대 전자공학과 졸업
△1985년 현대전자(현 SK하이닉스) 입사
△1986년 ASM 입사
△1993년 주성엔지니어링 설립
△2010년 벤처기업협회 회장
△2015년 한국무역협회 부회장
△2022년 기업가정신학회 명예회장·한국중견기업연합회 수석부회장

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