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K배터리…핵심소재 90%가 중국산

입력 2025-05-05 17:50
수정 2025-05-13 14:57

지난달 30일 국내에서 유일하게 음극재를 만드는 포스코퓨처엠의 세종 공장. 이곳에 들어선 14개 고온소성로(1차 표면처리를 마친 흑연 원료를 1000도로 굽는 장비) 라인 중 9개는 작년 초부터 1년 넘게 ‘개점휴업’이다. 멈춰 선 설비에 낀 먼지를 털어내고, 이따금 고장 여부를 확인하는 게 이곳 직원들의 주요 업무다. 정광열 공장장은 “지난해 8월에는 갑자기 취소 물량이 나와 라인을 1개만 돌리기도 했다”며 “국내 배터리업체들도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 탓에 적자로 내몰리자 값싼 중국산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고 했다.

한국 양극재, 음극재, 분리막, 전해액 등 배터리 4대 핵심 소재의 점유율이 최근 2년간 일제히 추락했다. 5일 SNE리서치에 따르면 2023년 1분기 7.3%이던 한국의 세계 분리막 시장 점유율은 작년 4분기 3.3%로 반토막 났고, 같은 기간 양극재(16.9%→11.5%) 전해액(10.2%→6.9%) 음극재(2.8%→2.5%) 점유율도 큰 폭으로 하락했다.

한국이 잃은 영토는 중국이 가져갔다. 같은 기간 중국 점유율은 양극재(71.7%→81.1%) 분리막(80.3%→88.9%) 음극재(87.0%→89.0%) 전해액(75.6%→76.7%) 모두 상승했다.

세계 배터리 소재 시장이 ‘중국판’이 된 것은 ‘넘사벽’ 가성비를 갖췄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의 전폭적 지원에 힘입어 규모의 경제를 이룬 중국 배터리 소재 기업들은 국내 기업보다 최대 50% 저렴한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글로벌 시장을 싹쓸이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LG에너지솔루션이 최근 중국 양극재 기업 창저우리위안에서 공급받는 양극재를 16만t에서 26만t으로 늘리기로 하는 등 국내 기업도 중국산 소재에 몰릴 수밖에 없다.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중국의 공습에 국내 배터리 소재산업이 붕괴하면 2019년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 통제로 벌어진 사태가 배터리 분야에서 재연될 수 있다”며 “국내 배터리 소재 공급망이 무너지지 않도록 정부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세종=김진원/김우섭 기자 jin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