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잉거 "춤이란 아름다움과 추악함을 발굴하는 것"

입력 2025-04-23 17:18
수정 2025-04-24 00:18
‘현대무용의 시인’이란 평가를 받는 스웨덴 출신 안무가 요한 잉거(58). 2016년 세계적 권위의 ‘브누아 드 라 당스’에서 최우수 안무상을 받은 정상급 무용가다. 스웨덴왕립발레단에서 클래식 발레로 무용계에 입문한 그는 현대무용계의 거장 지리 킬리안이 이끄는 ‘네덜란드댄스시어터(NDT)’에서 1990년부터 2002년까지 현대무용의 움직임을 익혔다. 안무가로서는 1995년부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는 2002년 스페인 국립무용단과 비제의 오페라를 재해석한 ‘카르멘’으로 자신의 작품을 처음 한국에 선보였다. 올해는 한국 컨템퍼러리 발레단인 서울시발레단과 함께 ‘워킹매드 & 블리스’를 더블빌(하나의 무대에 두 가지 작품이 연속해 오르는 것) 형식으로 올린다. 다음달 9~18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이번 무대는 아시아 첫 초연이라는 의미도 있다.

공연을 앞둔 요한 잉거를 서면으로 만났다. 고전발레와 현대무용을 두루 경험한 그는 두 가지 무용의 차이에 대해 뚜렷한 견해를 보였다.

“발레와 현대무용의 가장 큰 차이점은 춤의 방향성이라고 생각합니다. 발레는 하늘로 날아가듯 위를 향한 동작이 기본이고, 현대무용은 중력을 받아들이며 땅을 느끼는 데서 시작하죠. 현대무용의 움직임은 외부보다는 무용수의 내면에서 오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아요. (발레에 비해) 좀 더 인간적인 면모가 있습니다.”

발레에서 정확한 테크닉과 동작, 내레이션이 어길 수 없는 약속이라면 컨템퍼러리 발레는 유동적인 흐름과 내면의 고찰이 중요하다. 그는 이 두 가지 무용을 넘나들며 자신만의 무용세계를 만들었다. “고전 발레에서는 무대 위 무용수가 ‘내가 누구인지’ 보여준다면 현대 무용은 ‘내가 무엇이 될지’를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현대 무용은 현재를 비추는 거울 같아요. 정직함, 아름다움, 추악함 등에서 진정한 인간의 모습을 발굴하는 게 작업 키워드입니다.”

아시아 초연 단체로 서울시발레단을 고른 이유가 있을까. 그는 “새롭게 탄생한 무용단의 미래 활동에 영감을 주고,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무대에는 영국국립발레단 무용수 이상은이 객원 수석으로 참여한다. 잉거가 이상은을 설득했다고. “이상은은 제가 수년간 따라다닌 댄서예요. 그의 무용은 예기치 못한 어떤 요소가 더해지고 해석의 폭도 깊습니다.”

‘워킹매드’는 모리스 라벨의 ‘볼레로’를 지휘하는 어느 지휘자의 모습이 광기로 물드는 TV 영상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잉거의 초기작이다. 반복적이면서 점차 소리가 증폭되는 볼레로 특유의 음악은 막판에 현대 작곡가 아르보 패르트의 명곡 ‘알리나를 위하여’와 합쳐진다. 무용수들의 움직임 역시 치유를 은유하듯 끝을 맺는다. ‘블리스’는 재즈 피아니스트 키스 재럿이 남긴 즉흥 연주곡 ‘쾰른 콘서트’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자유롭고 즉흥적인 분위기가 이어지면서 무용수들이 마치 발끝으로 음표를 그리는 듯한 느낌을 준다.

“워킹매드는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여정이라고 봐주세요. 연극적 요소를 가미했지요. 블리스는 워킹매드를 만들고 15년이 지난 뒤 제작한 작품인데, 안무를 짤 때 접근 방식이 매우 달랐습니다.”

잉거는 관객에게 어떤 메시지를 강요할 생각은 없다고도 했다. “춤의 아름다움은 관객이 자신의 경험을 통해 해석하는 거예요. 공연이 끝난 뒤 열 명에게 물으면 답이 다 다르잖아요. 저는 그 열 가지 대답이 다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이해원 기자 um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