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팬지 알코올 파티 포착…"함께 나눠 먹더라"

입력 2025-04-22 08:19
수정 2025-04-22 08:21


야생 침팬지가 발효돼 알코올이 함유된 과일을 나눠 먹는 모습이 관찰됐다.

21일(현지시간) 과학기술 전문 매체 ZME 사이언스는 영국 엑서터대 연구진이 기니비사우의 칸타네즈 국립공원에서 포착한 야생 침팬지 무리의 식사 장면을 공개했다. 연구진은 야생 침팬지 무리가 자연 발효된 과일을 먹는 장면을 10차례 촬영했는데, 해당 과일의 알코올 도수는 최대 0.61% ABV에 달했다. 이는 약한 맥주보다는 낮지만, 그래도 취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몇몇 침팬지들은 가볍게 흥분한 모습을 보였다는 게 연구진의 설명이다.

ZME 사이언스는 인간처럼 침팬지도 술을 좋아한다고 전하면서 2015년 서아프리카 기니의 한 마을에서 17년간 진행된 연구 결과, 야생 침팬지들이 야자수로 만든 와인을 51번이나 마시는 모습이 관찰됐다고 소개했다. 침팬지들은 라피아 야자나무를 찾아다니는데, 이 나무에서 나오는 수액은 자연적으로 발효돼 와인을 만든다. 이들은 아침에 나무 꼭대기에 용기를 놓아 온종일 수액이 떨어지도록 하는 행동까지 했다. 이 야자수 수액의 알코올 농도는 3.1~6.9%로, 맥주 수준에 달했다.

이 때문에 이번 관찰에서 연구진이 주목한 건 알코올 섭취가 아니라 '나눠 먹는' 행위였다. 엑서터 대학교의 영장류학자 킴벌리 호킹스 박사는 "침팬지가 항상 음식을 나눠 먹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발효 과일에 대한 이러한 행동이 중요할 수 있다"며 "침팬지가 의도적으로 알코올이 함유된 과일을 찾는지, 그리고 어떻게 이용되는지를 더 자세히 알아봐야겠지만, 알코올을 나눠 먹는 행동이 '잔치'의 초기 진화 단계일 수 있다"고 해석했다.

약한 알코올 도수의 과일을 먹기 위해 모이는 침팬지의 모습이 원시적인 만찬이라면, 깊은 진화적 뿌리를 찾을 수 있다는 기대감도 흘러나온다. 연구진은 "아프리카 유인원의 공통된 조상에서 알코올을 분해하는 유전자가 발견됐는데, 이는 발효 과일을 섭취한 인간과 침팬지를 포함한 영장류 종이 고대부터 유래됐을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전했다.

엑서터 생태보존센터의 애나 보울랜드는 "인간에게 있어 음주는 도파민과 엔도르핀 분비를 촉진하여 행복감과 이완감을 느끼게 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라며 "또한 술을 나누는 행위는 사회적 유대감을 형성하고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 침팬지도 이와 비슷한 것을 느낄 수 있을지 연구해봐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다만 침팬지가 인간처럼 술에 취할 가능성은 작다는 게 연구진들의 설명이다. 술에 취하는 것은 야생에서 생존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침팬지 식단의 60~85%가 과일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소량의 알코올이라도 축적될 수 있다. 더 나아가, 침팬지들이 신선한 과일 대신 발효 과일을 선택하고 그것을 함께 먹는다면, 단순히 먹이를 찾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닐 수 있다. 이들이 유대감을 형성하기 위해 발효 과일을 이용한다는 해석이다.

이 발견은 유인원과 인간의 경계를 모호하게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인간의 고유한 것이라 여겨졌던 사회적 행동, 가령 음식을 나누고, 잔치를 열고, 의례를 만드는 행위가 생각했던 것보다 오래됐고, 그 기원이 영장류일 수 있다는 추측도 나온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