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자유·사랑…'콜드플레이'라는 우주에서 '5만명 떼창' [리뷰]

입력 2025-04-17 11:08
수정 2025-04-17 12:16

세계적인 밴드 콜드플레이(Coldplay)가 8년 만에 내한했다. 한국 팬들과 다시 만난 그는 연신 감사와 사랑의 인사를 전했다. 강력한 음악의 힘, 친근하고 따뜻하게 건네는 말, 자유롭게 터진 5만여 관객들의 떼창으로 공연이 열린 고양종합운동장은 어느새 아늑하고 환상적인 또 하나의 우주가 되어 있었다.

콜드플레이(크리스 마틴, 조니 버클랜드, 윌 챔피언, 가이 베리맨)는 지난 16일 경기도 고양시 대화동 고양종합운동장에서 내한공연 '라이브네이션 프레젠츠 콜드플레이 : 뮤직 오브 더 스피어스 딜리버드 바이 디에이치엘(LIVE NATION PRESENTS COLDPLAY : MUSIC OF THE SPHERES DELIVERED BY DHL)'을 개최했다.

지난 2017년 이후 약 8년 만에 찾은 한국이었다. 당시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주경기장에서 이틀간 10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던 콜드플레이는 이번에 6회차로 규모를 더 키워 돌아왔다. 6일간 진행하는 이번 스타디움 공연은 전석 매진돼 총 관객 수는 30만명으로 추산된다. 내한 아티스트 단독 공연으로는 역대 최대 규모다.

현존하는 밴드 가운데 가장 대중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콜드플레이는 1996년 멤버들이 런던대학교(UCL) 시절에 결성해 30년 가까이 활동해 오고 있는 팀이다. 록과 팝을 오가며 다채로운 장르를 시도한 이들은 1억장이 넘는 앨범 판매고를 올리며 예술적으로나 상업적으로나 가장 성공한 밴드라는 평을 받는다. 정규 4집의 타이틀곡 '비바 라 비다'는 콜드플레이의 상징과도 같은 곡으로, 들어보지 않은 사람을 찾기가 더 어려울 정도다.


공연은 행성, 달, 별, 집 네 가지의 테마로 이루어졌다. 테마 당 5~6개의 곡으로 구성됐다. '하이어 파워'와 함께 본격적으로 공연이 시작되자 장내에는 일제히 우렁찬 함성이 쏟아졌다. 시작부터 형형색색의 컨페티가 터지며 축제 분위기를 냈고, 프론트맨 크리스 마틴은 여유롭게 무대 누비며 몸풀기에 나섰다. 자이로 밴드(LED 팔찌)에 불이 들어오면서 객석도 아름답게 빛났다.

'어드벤처 오브 어 라이프타임'에서는 스탠딩석 위로 커다란 풍선을 제공해 관객들이 이를 굴리며 함께 즐기고 노는 공연의 재미에 더 푹 빠질 수 있도록 했다. 크리스 마틴의 "1, 2, 3" 구호에 맞춰 팬들이 일제히 자세를 낮췄다가 높게 뛰어오르며 환상의 호흡을 자랑하기도 했다. '파라다이스'에서는 힘 있는 떼창이 무대 위로 꽂혔다. 크리스 마틴은 팬들의 열정적인 환호에 힘입어 돌출무대로 힘차게 달려 나왔고, 환하게 웃으며 손 키스를 날리기도 했다.

'더 사이언티스트'까지 첫 번째 섹션부터 히트곡이 잇달아 나와 관객들을 열광케 했다. 피아노를 연주하며 노래한 크리스 마틴은 훌륭한 보컬 컨디션으로 박수를 받았다. 선선하게 부는 바람을 뚫고 그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관객들에게 전달됐다. 해가 진 가운데 자이로 밴드에 하얀 불빛이 들어오자 마치 현장은 우주 공간이 된 듯 몽환적으로 변신했다.

"한국어가 조금 서툴러도 이해해 주세요. 여러분 반갑습니다. 여러분과 함께해서 행복합니다." 한국어 인사에서는 한 글자 한 글자 정성과 노력이 묻어났다. 관객들은 박수로 화답했다. 크리스 마틴은 "이곳 한국에서 여러분과 만나게 돼 너무 행복하다. 우리의 꿈이 이루어졌다. 여러분들이 꿈을 이루어준 것"이라며 거듭 감사를 표했다.


공연이 진행될수록 무대 위 콜드플레이와 관객들은 하나가 됐다. 심장을 울리는 팀파니·종소리가 들리고 '비바 라 비다'가 시작됐을 때 분위기는 뜨겁다 못해 펄펄 끓었다. 5만여명이 동시에 '워어어어어'라고 소리치자 강한 전율이 느껴졌다. '옐로우'를 부를 땐 객석이 노랗게 물들었고, 이를 바라보는 크리스 마틴의 눈빛이 별처럼 빛났다. 한국 팬들의 열정적인 반응에 그는 "어메이징"이라며 감탄했다.

무대를 통해 전하는 자유·사랑의 감정은 강한 해방감을 안겼다. 크리스 마틴은 '어 스카이 풀 오브 스타즈' 무대에 앞서 "나를 믿어보라"면서 휴대폰을 모두 집어넣고 두 손이 자유롭게 즐길 것을 제안했고, 이내 관객들과 신나게 뛰어놀았다. '피플 오브 더 프라이드' 무대에서는 무지개색 천을 펼쳐 보이며 어떠한 경계도, 구분도, 제약도 없는 공간의 행복을 느끼게 해줬다. 한 남성 관객을 무대 위로 데려와 피아노 앞에서 나란히 앉아 하나의 마이크로 '업앤업'을 부르는 모습도 감동을 안겼다.

크리스 마틴은 양손을 번쩍 들라고 시키고는 기운을 가득 모아 멀리 있는 누구에게든 사랑을 보내자고 제안했다. 가족이든, 반려견이든, 할머니든 대상은 상관이 없다고 했다. 그의 주문과 함께 손가락을 움직이자 하늘에서 불꽃이 터지는 깜짝 이벤트가 펼쳐졌다. 무대 상수 위쪽에서는 공연 내내 'LOVE'라고 적힌 조그마한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현장에서는 종이 재질의 선글라스인 '문고글'이 제공됐는데, 이는 공연 중 사랑의 감정을 증폭시켰다. 문고글을 쓴 채로 조명을 바라보면 빛이 번지며 하트 모양을 만들어 냈다. 조명 연출에 따라 사방에서 무지개색 하트가 살아 움직였다.

이번 공연은 게스트도 화려했다. 본 공연에 앞서 트와이스, 엘리아나, 한로로가 사전 공연을 했고, 트와이스와 엘리아나는 본 공연에서도 '위 프래이' 무대를 함께했다. '마이 유니버스' 무대에서는 영상 홀로그램을 통해 협업 아티스트인 방탄소년단 멤버들이 등장하기도 했다.


콜드플레이는 환경 사랑에도 앞장서는 팀이다. 현장에서 나눠준 자이로 밴드는 친환경 소재로 만들어진 것으로, 공연이 끝나면 반납을 유도한다. 나라별로 회수율을 공개해 자발적으로 경쟁을 붙이는 것도 재치 있는 부분이다. 지금까지 1위는 97%의 회수율을 기록한 일본 도쿄와 핀란드 헬싱키다. 3위는 94%의 홍콩이다. 한국 관객들이 이 기록을 깨고 100%를 달성할 수 있을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이 밖에도 현장에는 공연 전력에 도움이 되는 키네틱 플로어가 설치돼 그 위에서 관객들이 점프하면 해당 에너지가 다음 공연의 C스테이지를 가동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콜드플레이의 공연은 18일, 19일, 22일, 24일, 25일에도 같은 장소에서 열린다. 주최 측에 따르면 매회 스탠딩석과 지정석에 각각 2만명, 3만명이 들어간다. 전체 5만명이라는 많은 인원이 동원됨에도, 스탠딩 구역은 밀집도가 그리 높지 않아 안전하고 쾌적하게 공연을 즐길 수 있었다. 공연장 안팎으로 안내요원과 경호원, 경찰도 충분히 배치돼 있었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