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근로시간·급여는 동일"…경영계 "연장근로 늘어 인건비 급증"

입력 2025-04-14 17:55
수정 2025-04-15 01:16
음식 배달앱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은 2015년 주 4.5일 근무제를 도입했다. 월요일에는 오후 1시에 출근하는 제도였다. 그러다가 2017년 아예 주 35시간제를 도입한 데 이어 2022년부터는 주 32시간제를 실시하고 있다. 개발자 인력난을 타개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정보기술(IT)업계 관계자는 “결국 절대 근로시간이 부족해 연장근로가 크게 늘어난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근로시간은 사실상 주 5일제로 회귀했고, 회사 인건비 부담만 급증한 셈”이라고 평가했다. ◇ “보수 정당마저 선심성 정책” 국민의힘이 14일 ‘주 4.5일제 도입’을 대선 공약으로 내놓으면서 근무시간 단축이 다시 정치권의 화두로 급부상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총근무시간이 줄지 않는다는 점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주 4일제와는 다르다는 입장이다.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은 “민주당이 주장하는 주 4일제, 주 4.5일제는 근로시간은 줄이지만 받는 급여를 그대로 유지하려는 비현실적이고 포퓰리즘적인 정책”이라며 “근로시간을 줄이면 받는 급여도 줄어드는 것이 상식이라는 비판에 민주당은 설득력 있는 설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권 위원장은 또 반도체를 포함해 조선, 인공지능(AI), 바이오 등 집중 근로가 필요한 산업에 한해 주 52시간 근로제를 폐지해 기업 생산성을 높이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하지만 보수 정당마저 선심성 공약 경쟁에 뛰어든 것 아니냐는 우려가 당내에서도 나온다. “민주당 프레임에 말려드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한 여권 관계자는 “11시간 연속 휴식 제도 등 유연 근로 확산을 막는 기업 규제는 그대로 두고, 근로 일수만 줄이는 듯한 정책을 펴는 것은 미봉책”이라고 지적했다. ◇ 총 근무시간 변동 없다지만…권 위원장은 이날 주 4.5일제 추진 방침을 밝히면서 정원의 25% 범위에서 직원들이 순환 방식으로 주 4.5일제를 이용하는 울산 중구청 사례를 소개했다. 하지만 공공성이 강한 지방자치단체와 기업은 다르다고 경제계는 지적한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1시간 더 일한다고 생산성이 높아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우아한형제들 사례처럼 근로자의 연장근로가 늘어나 인건비 부담만 급증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선거 과정에서 주 4.5일제 성격이 더욱 인기영합주의로 흐를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결국 민주당 주장대로 임금 감소 없는 주 4.5일제로 수렴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자칫 2013년 정년 60세 연장 당시 상황이 반복돼 기업들이 예상치 못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2013년 여야는 법적 정년을 단계적으로 58세에서 60세로 연장하는 내용을 담은 고령자보호법을 개정했다. 하지만 당시 기업 인건비 부담을 낮춰주기 위해 도입을 추진한 임금피크제는 노동계 반발로 입법화하지 못했다. 한국노동연구원 관계자는 “현행 임금체계 아래서 투입되는 근로시간이 감소한다면 노동생산성이 낮아져 기업의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근로시간이 아니라 ‘성과 중심’으로 일하는 방식을 개편하는 게 대안이 될 수 있지만 경직된 한국 노동시장에서 가능할지는 미지수”라고 지적했다.

노동계도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 관계자는 “여당 정책은 주 52시간제를 폐지하는 것에 방점이 있다”며 “특정 주에는 근로시간 제한 없이 길게 일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조삼모사 정책으로, 여당이 추진한 반도체법 특별연장근로 확대와 다를 게 없다”고 말했다. 실근로시간 축소라는 주 4.5일제 취지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결국 노사가 자율적으로 결정해야 할 근로시간 문제에 국가가 개입하기보다 업종·근무 특성 등에 따라 노사가 자율적으로 근로시간을 정하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희성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업의 생산성 향상 방안과 산업별 업무 형태를 고려하지 않은 주 4.5일제 도입은 되레 국가 경제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기업이 자율적으로 유연·탄력근로를 활용할 수 있는 구조적 변화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했다.

곽용희/정소람/안시욱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