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신규 노선 대해부-교외선
교외(郊外)라는 단어가 있다. 도시의 주변 지역을 뜻한다. 학교 바깥이라는 교외(校外)에 밀려 과거에 비해서는 쓰임새가 줄었는데, 여전히 이 단어를 볼 수 있는 곳이 있다. 바로 교외선 철도다.
대부분의 철도가 지역 이름을 따서 짓기 때문에 노선명을 보면 어디를 지나가는지 대략 알 수 있다. 하지만 교외선은 보통명사를 쓰고 있으니 처음 들으면 어디에 있는 노선인지 알 수가 없다. 사실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초기에는 능곡과 의정부를 잇는다는 뜻으로 능의선이라고 불렀고, 전 구간 개통 시에는 서울교외선이라고 했었다. 하지만 2008년부터 교외선으로 줄여서 부르고 있다.
고양시와 의정부시 연결하는 순환선
교외선의 또 다른 특징은 순환선이라는 점이다. 서울에서는 지하철 2호선의 존재감이 너무 강하다 보니, 2호선처럼 폐곡선의 원을 구성해야만 순환선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중심을 가운데 두고 외곽과 외곽을 연결하는 개곡선인 호(弧)도 순환선이다. 서울 주변 철도는 대부분 외곽에서 도심을 향해 모여드는 방사형 노선인 데 비해 교외선은 외곽인 고양시와 의정부시를 연결하는 순환선이다. 수도권 순환선 철도의 또 다른 사례로는 서울을 중심에 두고 인천과 수원을 잇는 수인선이 있다.
교외선은 1963년 8월 20일 전 구간이 개통됐다. 과거에 교외선은 쓰임새가 참 많은 철도였다. 우선 서울의 북서부와 북동부에 있는 경의선과 경원선을 이어주는 다리와 같은 노선이었다. 교외선 덕분에 경의선과 경원선 열차가 서울을 관통하지 않고도 우회할 수 있었다. 주로 화물열차가 이런 기능을 활용했다.
둘째로 교외선은 서울 북부의 산지를 지나갔으며 이곳에는 군부대가 많았다. 도로가 좋지 않은 시절에 군부대의 중(重)화물을 옮기기 위해서는 철도가 필수적이었고 교외선이 그 역할을 맡았다. 교외선에는 군부대 청원선(請願線)이나 인입선(대정역 등)이 많다.
마지막으로 교외선은 관광철도로서의 기능이 컸다. 과거 서울은 한강 이북만 개발이 돼 있었으므로, 시 외곽의 관광지는 북쪽에 많았다. 벽제, 일영, 장흥, 송추 등이 그런 곳이다. 교외선은 서울에서 이런 곳을 빠르게 이어주는 철도였다.
하지만 강남이 개발되고 수도권이 남쪽으로 확장되기 시작하자 모든 게 달라졌다. 우선 수도권 북쪽 화물 수요가 줄었다. 군부대가 줄어들고 도로가 좋아지면서 군용철도 역할도 줄었다. 결정적으로 교외선 주변의 관광지가 쇠퇴했다. 경제력이 높아지면서 더 먼 곳으로 관광을 갈 수 있게 되니 굳이 교외선 주변 관광지를 찾지 않게 됐다.
주변 지자체 손잡고 재운행 추진
이용 승객이 줄어들자 철도운영사는 열차 운행 횟수를 줄였다. 열차를 타기가 불편해지자 승객은 더욱 줄었다. 악순환이었다. 마지막에는 평일 편도 3회(주말 2회)까지 운행 횟수가 줄었다. 결국 교외선은 2004년 3월 31일을 끝으로 정기 여객열차 운행을 마쳤다. 공교롭게도 이 다음 날은 한국철도의 혁명이라는 경부고속철도 개통일이었다. 즉, 교외선이라는 과거의 철도와 경부고속철도라는 미래의 철도가 바통터치를 한 셈이었다.
이렇게 오랫동안 잊혀 있던 교외선은 양 옆에 있는 경의선과 경원선이 각각 수도권 전철로 재탄생하자 다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우선 경의선 전철이 2009년 1단계를 시작으로 2014년 용산까지 전 구간이 개통됐다. 또한 경원선(1호선)은 2006년에 소요산까지 연장됐다. 이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양쪽 수도권 전철을 이어주는 교외선을 재운행시키면 편리하겠다는 생각이 나온 것이다.
또한 경기 북부에 대한 투자 부족이 오랫동안 지역 불만이었던 만큼, 정치인들도 여기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이에 따라 2019년 당시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교외선이 지나가는 고양시, 양주시, 의정부시와 함께 교외선 운행 재개 업무 협약을 맺고 교외선을 재운행시키기로 했다. 이후 몇 번의 추가 협약을 거쳐 비용 분담 문제까지 정해졌다. 중요한 점은 2021년 협약에 우리나라 철도를 건설하는 국가철도공단과 철도를 운영하는 코레일(한국철도공사)까지 참여한 점이다. 즉, 지방자치단체 구상에서 시작된 사업이 국가 사업으로 격상됐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시설개량비 497억 원을 국가에서 부담했다.
전기화 대신 디젤 무궁화호 투입
다만 교외선 재운행은 경의선이나 경원선처럼 기존 철도를 전철로 만드는 것은 아니었다. 전기철도 시설을 설치하려면 높은 초기 비용과 유지비가 든다. 게다가 나중에 전철을 제대로 만들 경우 결국 선로 직선화를 해야 하므로 이미 설치한 전기철도 시설은 매몰 비용이 된다. 그래서 당장은 기존 선형 그대로 비전철로 개통하기로 했다. 물론 이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교외선은 폐선된 것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워낙 오랫동안 방치된 노선이다 보니 역과 선로, 시설물을 개량하는 데 상당한 비용과 시간이 들었다.
또 다른 문제는 차량 확보였다. 철도 차량의 조성 방식은 기관차+객차 방식과 동차 방식으로 나뉜다. 동차(動車)란 객실부에 동력까지 있는 차량이다. 동력 없이 끌려만 다니는 객차와 다르다. 비전철인 교외선에서 운행하기 적합한 차량은, 전후대칭형이라 종점에서 회차가 쉬운 디젤동차다. 과거 교외선에서 달렸던 차량이 바로 이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디젤동차는 거의 다 폐차가 됐고, 새로 도입된 차량도 없었다. 있는 차량도 워낙 낡아 수명을 연장해서 쓸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할 수 없이 재운행되는 교외선에는 가운데 무궁화호 객차를 두고 양 끝에 기관차를 반대 방향으로 달아 운행하는 푸시풀(push-pull) 방식의 열차를 도입했다. 한눈에 봐도 이는 상당히 낭비적인데, 힘센 기관차를 두 대나 사용하면서 겨우 세 칸을 끌고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한 칸은 객실 동력 공급을 위한 발전차라 사람이 타는 객차는 두 칸에 불과하다.
어쨌든 이 같은 노력을 거쳐 드디어 지난 1월 11일 교외선 대곡~의정부 구간에 무궁화호 열차가 다시 운행을 시작했다. 중간역은 원릉~일영~장흥~송추로 원래 역들에 비해서는 축소됐다. 과거와 달리 서울역에서 탈 수도 없으며, 유명세가 컸던 벽제역이 정차역에서 빠진 것도 특이하다. 운행 길이는 30.5km, 소요시간은 54분, 운임은 2600원이다. 운행 횟수는 첫 개통 당시 8회였으나, 4월 1일부터 20회로 늘어났다.
도시 발전의 새 활력소 기대
이번에 개통된 교외선은 철저히 일반열차 영업 체계를 갖추고 있다. 교통카드 이용이나 버스와의 무료 환승, 노인 무임승차 등은 되지 않는다. 좌석도 일일이 예약을 해서 지정받아야 한다. 다만 교외하루패스라는 1일 자유이용권이 출시됐는데(4000원), 좌석 지정은 받을 수 없으나 하루 동안 교외선 열차를 자유롭게 타고 내릴 수 있다. 즉, 빈자리에 눈치껏 앉아야 한다.
교외선은 노선이 지나가는 해당 지자체가 관계당국에 적극적으로 재운행을 요구하고, 발생하는 운영 비용까지 부담한다는 데 의미가 크다. 보통 철도사업에서 지자체들은 가급적 비용을 부담하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여 왔다. 이 때문에 광역철도 사업보다 일반철도 사업으로 추진되기를 바란다거나(광역철도는 지자체 부담 필요·일반철도는 국비로만 추진), 지자체장이 자기 지자체 돈을 쓰지 않고 철도를 끌어왔다면서 자신의 치적이라고 주민들에게 자랑하는 웃지 못할 일들이 벌어져 왔다.
하지만 지방자치 시대에 자기 지자체에 도움이 되는 것을 정당한 비용을 내고 도입하는 것은 책임 있는 정치의 시작이라고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고양시, 양주시, 의정부시 3개 지자체가 스스로 운영 비용을 부담해 가면서 교외선을 재운행시킨 것은 모범적인 모습이다.
실제로 이들 지자체는 교외선 재운행을 계기로 자기 지자체들에 도움이 되는 여러 시책을 추진하고 있다. 양주시는 교외선과 연계된 프리미엄 시티투어 관광 상품을 출시해 관광객 유치를 노리고 있다. 의정부시는 교외선이 지나가는 경민대 앞에 역을 신설해 교통 편의 개선과 유동인구 개선을 꾀하고 있다. 교외선 운행을 도시 발전의 새로운 활력소로 활용하려는 것이다.
교외선, 진짜 수도권 전철이 되려면
다만 아쉬운 것은 교외선을 관광철도로만 보는 시각이다. 이는 과거 교외선이 관광철도로서 명성이 높았던 것에 기인한 것이지만, 교외선이 진정으로 수도권 전철의 일원이 돼 시민들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통근철도 기능을 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우선 운전시격을 줄이는 것이다. 4월 1일부터 평균 90분 간격까지 줄어들었지만 이것으로는 부족하다. 최소 30분까지는 줄어야 통근열차로 의미가 있다. 실제로 수도권 전철에서 열차 간격이 가장 긴 구간은 수인분당선 한대앞~고색, 경강선 부발~여주(약 20분)와 1호선 소요산~연천(약 1시간)이 있는데, 교외선이 서울에서 가까운 지역임을 생각하면 통근철도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30분 간격은 확보할 필요가 있다.
특히 현재의 일반열차(무궁화호) 영업 체계가 아니라, 수도권 전철 영업 체계로 들어와야 한다. 교통카드로 탈 수 있고 다른 교통수단과 무료 환승도 하게 해줄 필요가 있는 것이다. 수도권 전철 노선도에도 표시해주도록 한다. 전동차를 쓰지 않는다고 해서 이것을 못하는 것이 아니다. 차량은 시설이고, 영업 체계는 제도다.
교외선이 다른 수도권 전철처럼 전동차를 쓰지 않더라도, 수도권 전철처럼 운영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물론 디젤 차량을 쓰다 보니 운행 원가가 높은 점은 있는데, 이를 반영해 신분당선처럼 추가 운임을 받거나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처럼 임률을 높이는 방식으로 운임 체계를 구성하는 것도 가능하다.
아울러 적절한 차량을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철도 차량의 객실 형태는 통근형과 근교형, 특급형으로 구분된다. 통근형과 특급형을 구분하면 위의 표와 같다. 근교형은 양쪽의 중간 형태다.
친환경 차량 전환, 역세권 개발 필요
현재 교외선은 무궁화호 객차라는 특급형 차량을 쓰고 있다. 하지만 이는 통근열차로 적절하지 않다. 교외선이 관광철도 기능과 통근철도 기능을 함께 하기 위해서는 양쪽의 기능이 절충돼 있는 근교형 차량을 도입하는 게 적절하다. 실제로 과거에 운행되던 디젤동차도 차내에 롱시트와 크로스시트가 혼재돼 있는 근교형 구조를 하고 있었다.
또 다른 문제는 현재 교외선이 디젤 차량을 쓰다 보니 환경에 주는 부담이 크다는 점이다. 실제로 교외선이 운행을 재개하면서 소음 등의 민원이 차츰 발생하고 있다. 4월 들어 운행 횟수가 늘면서 민원의 강도도 더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디젤 차량은 매연, 진동, 소음이 심한데, 전동차로 바꾸면 이를 없앨 수 있다. 다만 앞서 본 대로 전기철도 시설을 설치하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내부에 전기 동력을 내장한 철도 차량이 필요하다. 구체적으로는 배터리 차량, 하이브리드 차량, 수소연료전지 차량 등이 있다. 이 중에서 충전 시간이 적게 걸리는 수소연료전지 차량이 주목된다.
이렇게 환경에 부담이 적은 차량이 도입되면 역세권을 본격적으로 개발할 수 있다. 교외선 역 바로 앞은 고밀도로, 역에서 멀어질수록 밀도를 낮추어 개발하는 대중교통중심개발(Transit Oriented Development·TOD)이 필요하다. 역세권 개발을 통해 통근 수요가 늘면, 이를 통해 다시 열차 운행을 늘리는 선순환이 가능하다.
현재 교외선 주변은 산악 지대와 보호구역이 많아서 대규모 개발을 하기는 쉽지 않지만, 역 주변만이라도 규제를 완화하고 지역적 특성을 잘 살린다면 개성 있는 역세권 개발이 가능할 것이다. 실제로 교외선이 개통하기도 전인 2022년 10월에 선제적으로 준공된 송추역 북한산경남아너스빌 아파트와, 현재 한창 입주 중인 장흥역 경남아너스빌북한산뷰 아파트의 사례가 주목된다. 역 바로 앞에 고밀도 아파트를 놓아 압축도시(compact city)를 구현한 사례다.
저수요 지방철도 발전의 롤모델
교외선의 통근 기능이 중요한 이유는 현재 대곡역에 GTX-A 선이 운행 중이고, 의정부역에도 GTX-C 선이 들어올 예정이기 때문에 이들 노선과 연계하면 서울 도심까지 빠르게 진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곡역에서 서울역까지는 GTX로 12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교외선이 GTX 연계 노선으로 제 역할을 하려면 통근 기능의 강화가 필수적이다.
교외선이 통근철도 기능을 하려면 운행 횟수가 늘어나야 하는 만큼 운행 원가 감소 노력도 필요하다. 현재 교외선에는 다수의 철길 건널목이 있는데 대부분 관리원을 배치해 비용이 많이 든다. 인공지능(AI) 기술을 접목해 안전도를 높이면서도 안전원을 생략할 수 있는 첨단 건널목으로의 발전이 필요하다.
장기적으로 볼 때 교외선을 꼭 코레일에서 운영할 이유도 없다. 철도 상하 분리에 따라 새로운 운영사가 교외선을 운영하는 것도 가능하며, 현재 양주시에 본사가 있는 경기교통공사에서 운영해 운영 비용을 낮추는 것도 고려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교외선은 단선 비전철이라는 어려운 환경에서 최고의 효율을 끌어내어, 지역의 통근 교통 편의를 가져올 수 있는 혁신의 시발점이 돼야 한다. 교외선의 성공은 향후 저수요 지방철도 발전의 롤모델이 될 수 있다.
한우진 교통평론가·미래철도DB 운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