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원의 30년 빙판 열정 "하키처럼 경영은 속도가 핵심"

입력 2025-04-08 18:29
수정 2025-04-09 00:53

“시속 200㎞에 이르는 퍽(아이스하키 공)을 컨트롤하려면 빠른 판단이 필수입니다. 경영도 마찬가지예요.”

정몽원 HL그룹(옛 한라그룹) 회장(69)은 8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아이스하키와 경영의 공통점을 ‘스피드’에서 찾았다. 정 회장은 “시장 환경이 급변하는 상황에서는 얼마나 빨리 판단하느냐에 승패가 갈린다”며 “고객 대응과 제품 개발, 의사 결정까지 ‘빨리빨리’ 움직이는 리더의 민첩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정 회장은 자동차 부품과 건설업이 주력인 HL그룹을 이끄는 오너 기업인이다. 동시에 한국 아이스하키를 오랜 기간 후원해온 ‘키다리 아저씨’다. 그가 1994년 창단한 HL안양은 올해 22돌을 맞은 아시아리그를 아홉 차례 석권한 명문 구단이 됐다. 2013년부터 8년간 대한아이스하키협회장을 맡아 한국 남녀 대표팀의 평창동계올림픽 본선 진출을 이끌었고,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의 산파역도 맡았다. 정 회장은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2020년 2월 한국인 최초로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그는 최근 자신의 30년 빙판 인생을 담은 에세이 <한국도 아이스하키 합니다>를 펴냈다. 정 회장은 “비인기 종목인 아이스하키 대중화에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고 싶다는 생각으로 썼다”며 “이 책으로 아이스하키 팬이 한 명이라도 더 생기면 더 바랄 게 없을 것”이라고 했다.

정 회장은 기업인에게 아이스하키 입문을 권했다. 조직 운영과 리더십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아이스하키의 승패는 뛰어난 개인 한두 명이 아니라 팀워크에 따라 갈린다”며 “조직 전체가 유기적으로 움직이고, 서로를 믿고 도와야 최강팀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정 회장의 아이스하키 사랑은 곳곳에 묻어 있다. HL그룹의 미래 먹거리인 자율주행시험 차량에 ‘하키’를, 순찰 로봇에 ‘골리’(골키퍼)란 이름을 붙일 정도다.

지난 5일 HL안양이 레드이글스 홋카이도(일본)를 2-1로 꺾고 아시아리그 최다(아홉 번째) 우승을 차지했을 때 정 회장도 현장에 함께했다. 2010년 아시아리그 첫 우승 당시 기념 모자와 유니폼, 팀 상징색인 파랑 속옷까지 챙겨 입은 그는 관중석에 앉아 응원 율동도 따라 했다. 정 회장은 “아내(홍인화 여사)가 말렸지만 선수와 같은 마음이 된다는 생각에 열심히 했다”며 웃었다.

만도와 한라공조, 한라중공업 등을 거느린 재계 12위 한라그룹은 1997년 외환위기 때 계열사 대부분을 잃었다. 그때도 HL안양(당시 만도 위니아)을 계속 품었고, HL안양은 이듬해 코리아리그 우승으로 보답했다. 정 회장도 2008년 만도를 되찾으며 그룹 재건에 성공했다. 그는 “어려울 때마다 그때를 생각하며 힘을 얻는다”고 했다.

김보형/신정은 기자 kph21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