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 피난처(safe haven)를 찾아라!’
투자자들이 미국과 중국의 ‘관세 전쟁’ 충격을 피할 수 있는 금융상품을 찾아 이동하고 있다. 미국 국채 순매수 규모는 올해 1분기 사상 최대를 기록했고, 일본 엔화로 투자하는 상품과 인버스 상장지수펀드(ETF)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美 채권 보관액 21兆로 불어나7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국내 투자자의 미 국채 순매수액은 27억9016만달러(약 4조800억원)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1년 관련 통계 집계 이후 분기 기준 역대 최대다. 국내 투자자의 미국 채권 보관액은 147억2463만달러(약 21조2600억원)로 1년 전 65억3384만달러와 비교해 두 배 이상으로 불어났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증시의 불확실성 확대가 미 국채 선호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촉발한 글로벌 관세 전쟁이 세계 경기 침체 우려를 키워 안전자산인 채권 선호도가 높아졌다는 것이다.
권정훈 하나자산운용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세계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질수록 미국이 기준금리를 추가로 인하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며 “시장 금리와 반대로 움직이는 미 국채 가격이 더 오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올해 들어 미국 장기채 금리는 꾸준히 하락(채권 가격 상승)하고 있다. 지난 1월 14일 장중 연 5.005%를 찍은 뒤 현재 연 4.325%까지 내려왔다. 이 덕분에 미 국채에 투자하는 ETF 가격은 상승세다. ‘RISE 미국30년국채액티브’는 이날 3.86%, 올해 들어 14.11% 올랐다. 같은 기간 미국 증시에 투자하는 ‘RISE 미국S&P500’이 18.55% 떨어진 것과 대조적이다. ◇엔 환차익 상품 수익 늘어미국 장기채에 투자하면서 일본 엔화 가치 상승 차익까지 얻을 수 있는 엔화 노출 미국 장기채 ETF는 올해 두 자릿수 수익률을 나타내고 있다. ‘ACE 미국30년국채엔화노출액티브(H)’는 연초 대비 15.48% 올랐다. 이 기간 국내 상장 채권형 ETF 가운데 가장 높은 수익률이다. ‘RISE 미국30년국채엔화노출(합성H)’도 같은 기간 15.18% 상승했다.
두 ETF는 일본 엔화로 미국 장기채에 투자하는 상품이다. 원화 대비 엔화 가치 변화를 반영하고 달러 환율 변동 위험은 헤지(회피)한다. 엔화 가치가 높아지면서 미국 장기채 금리가 하락하면 환차익과 장기채 자본 차익을 한꺼번에 얻을 수 있다.
최근 안전자산인 엔화 가치 상승이 수익률 개선을 이끌었다. 엔화 가치는 이날 장중 100엔당 1010원대를 돌파하며 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TIGER 일본엔선물은 올 들어 7.87% 올랐다.
에브라힘 라바리 앱솔루트스트래티지리서치 전략가는 “엔화는 아직 저평가돼 있고, 미국이 기준금리를 인하하면 가치가 더욱 오를 것”이라며 “관세 전쟁에서 매력적인 투자처”라고 평가했다.
일본은행(BOJ)이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을 내비친 것도 엔화 강세의 주요 배경이다. BOJ는 작년 3월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종료한 뒤 세 차례 금리를 인상했지만,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이 4%대로 여전히 높게 나와 추가 인상 압박을 받고 있다. 우치다 신이치 BOJ 부총재는 지난 4일 “경제의 지속적인 개선을 바탕으로 기저 인플레이션이 높아지면 기준금리를 인상할 것”이라고 밝혔다. ◇“인버스 ETF, 장기투자는 주의해야”지수나 주가 하락에 베팅하는 인버스 ETF에 대한 개인 투자자들의 관심도 부쩍 높아졌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최근 2주(3월 24일~4월 4일) 수익률이 가장 높은 ETF 1~10위는 모두 인버스 상품이다. ‘RISE 미국반도체인버스(합성H)’가 18.31%로 가장 높았고, 그 뒤를 ‘RISE 200선물인버스2X’(15.50%), ‘KIWOOM 200선물인버스2X’(14.25%) 등이 이었다. 지난해부터 고평가 논란이 불거진 미국 테크주 등의 하락에 투자해 단기 차익을 얻으려는 수요가 몰렸다.
전문가들은 인버스 상품은 단기적인 위험 회피 수단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설태현 DB증권 연구원은 “인버스 ETF는 하루 수익률을 역방향으로 추종하므로 장기 보유하면 수익률 왜곡이 발생할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만수/맹진규/양지윤 기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