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극은 어렵다? 공연계 팬덤 이끌 새 시도 몰려온다

입력 2025-04-07 16:04
수정 2025-04-07 16:05


패션쇼 런웨이를 옮겨놓은 듯한 무대부터 1920년대 호텔을 그대로 재현한 공간에서 펼쳐지는 옴니버스 구성, 성별을 뛰어넘은 캐스팅까지 무대 위 새로운 시도가 관객들의 시선을 이끈다.

지난 5일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상연을 시작한 연극 '랑데부'는 배우 박성웅, 박건형, 최민호 등 화려한 캐스팅으로 시선을 사로잡았지만, 그보다 더 눈길을 끄는 건 '트레드밀' 무대 연출이다. 지난해 초연 당시 호평받았던 요소 역시 2인극을 이끄는 두 남녀의 심리적 거리를 트레드밀(러닝머신)을 활용해 물리적으로 선보인 부분이었다.

'랑데부'는 로켓 개발에 매진하는 과학자와 춤을 통해 자유를 찾는 짜장면집 딸의 특별한 만남을 그린 작품.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중력이라는 물리적 법칙을 거스르며 사랑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연출가 Yossef K. 김정한은 미국과 영국에서 실험극부터 셰익스피어, 상업 뮤지컬까지 폭넓은 작품을 선보여온 아방가르드 연출가다. '랑데부'에서는 패션쇼 런웨이를 연상시키는 직사각형의 긴 무대를 중심으로 양쪽에 관객석을 배치하는 파격적인 구성으로, 극장의 공간적 한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시도를 선보였다.

'랑데부'와 같은 좌석 구성은 연극 '카포네 트릴로지'에서도 엿볼 수 있다. '카포네 트릴로지'는 미국 시카고 렉싱턴 호텔 661호에서 1923년, 1934년, 1943년까지 10년을 주기로 일어난 사건을 독립된 이야기로 선보이는 옴니버스극이다. 입구부터 렉싱턴 호텔 로비를 그대로 옮겨 놓았고, 호텔 방 양 옆으로 좌석이 있어 관객들이 목격자가 돼 관람할 수 있는 구조다.

영국 연극계의 '천재 콤비'로 불리는 극작가 제이미 윌크스와 연출가 제스로 컴튼이 2014년 처음 선보였고, 국내에선 이듬해인 2015년 첫선을 보인 후 올해로 5번째 공연되고 있다.

영맨과 올드맨, 레이디 단 3명의 배우가 극을 채우는데, 각각의 이야기들이 완결성을 갖췄지만, 세 편이 하나의 서사로 연결되는 실험적인 전개로 'N차' 관람을 이끌면서 오픈과 동시에 매진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오는 6월 10일 첫 공연되는 '디 이펙트'는 젠더 밴딩(gender-bending) 캐스팅으로 주목받고 있다.

젠더 벤딩의 사전적 의미는 '남녀 구분이 없는 차림, 행동'으로, 배우가 자신과 다른 성별의 캐릭터를 연기하거나, 배우 성별에 맞춰 캐릭터의 성별을 바꾸는 경우를 아우르는 개념이다. 성별의 구분을 두지 않는 젠더 프리 캐스팅의 한 방식으로 알려졌다.

'디 이펙트'는 항우울제 임상 테스트에 참여한 '코니'와 '트리스탄', 그리고 이 테스트를 감독하는 박사 '로나 제임스'와 '토비 실리' 네 명의 인물이 등장하는 '사랑과 슬픔'을 다룬 이야기다. 이 작품은 약물 시험이라는 설정을 통해 인간 감정의 본질을 탐구하는 동시에, 그 혼란스러운 감정들 앞에서 과연 우리는 어떠한 선택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극중 4명의 인물은 삶을 다루는 방식과 태도에 있어서 매력적인 대조군으로 표현된다.

실험을 이끌어 가는 '로나 제임스(Dr. James)' 박사 역에는 김영민, 이상희, 이윤지가 캐스팅되었다. 김영민은 남자, 이상희와 이윤지는 여자로 일반적으로 멀티캐스팅 진행 시 성별을 맞추지만 '디 이펙트'는 이를 뛰어넘는 캐스팅으로 어떤 변주를 줄지 호기심을 자극한다.

다른 캐릭터 역시 성별에 구분 없이 캐스팅됐다. 우울증은 약물 투약을 통해 치료할 수 있다고 믿는 '토비 실리(Dr. Toby)' 박사 역에는 양소민, 박훈, 민진웅이 참여하고, 이성적인 심리학과 학생으로 실험에 참여한 '코니(Connie)' 역에는 박정복, 옥자연, 김주연이 캐스팅되었다. 특유의 자신감과 자유로운 성격의 실험 참가자 '트리스탄(Tristan)' 역에는 오승훈, 류경수, 이설이 함께한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