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장기전 돌입한 고려아연 분쟁…이젠 사법기관의 시간

입력 2025-04-02 17:26
이 기사는 04월 02일 17:26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과 MBK파트너스·영풍 연합이 고려아연을 두고 벌이는 경영권 분쟁이 중장기전으로 흘러가고 있다. 최 회장 측은 임시 주주총회와 정기 주총에서 일단 경영권을 지키는 데 성공했지만 진짜 게임은 이제 시작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경영권 방어를 위해 총동원한 '꼼수'들이 사법부와 금융감독원, 공정거래위원회 등의 심판이 줄이을 것으로 예상되면서다.

2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28일 고려아연 정기 주총 결과 고려아연 이사회는 '11(최 회장 측) 대 4(MBK 연합)'으로 재편됐다. 김광일 MBK파트너스 부회장을 비롯해 MBK 연합 측 인사가 이사회에 진입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이사회 구조를 뒤엎진 못했다. 고려아연 이사회 이사 수의 상한이 19명으로 제한되는 정관 변경안도 통과됐다. MBK 연합 입장에선 이사 수의 상한이 생긴 게 향후 이사회를 장악하는 데 특히 치명적이라는 평가다.

시장에선 주총의 결과가 법원에서 뒤집힐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MBK 연합은 지난 달 27일 서울지방법원 민사합의 50부가 의결권 행사 허용 가처분을 기각하며 최 회장 측의 손을 들어주자 곧장 항고를 제기했다. 고등법원이 진행하는 본안 소송에서 서울지법 판단을 뒤집으면 MBK 연합은 주총 결의 무효 소송을 통해 주총 결의 내용을 무효화할 수 있다. 고등법원의 판결은 늦어도 2분기 내에 나올 전망이다.

경영권 방어와 별개로 최 회장 측에 대한 민형사 소송도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최 회장을 상대로 진행되는 민형사 소송은 10건에 달하고, 손해배상청구액은 1조원이 넘는다. 자신의 경영권 방어를 위해 2조원 규모의 자사주 공개매수를 한 것과 관련해서 민형사 소송이 모두 걸려있다. 회사에 손해를 끼치는 이런 내용에 동의한 고려아연 이사진들도 선관주의 의무 위반이자 배임으로 고소된 상황이다.

자사주 공개매수 기간에 대규모 유상증자를 계획하며 이 사실을 숨기고 사기적 부정거래를 단행한 것도 최 회장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크다. 금감원은 최 회장 등 경영진이 단행한 유상증자에 불공정거래 혐의를 포착하고 검찰에 패스트트랙(신속 수사전환) 사건으로 이첩한 상황이다. 검찰은 그간 수사가 양측이 벌이는 경영권 분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수사 속도를 조절하고 있었다. 정기 주총까지 끝난 만큼 검찰의 칼날이 본격적으로 최 회장을 향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공정위도 최 회장의 '상호주 카드'를 정조준하고 있다. 순환출자 고리를 인위적으로 형성해 상호주 의결권 행사 제한 구조를 만든 건 공정거래법상 금지하는 순환출자제한 규정을 대놓고 어긴 것이라는 게 법조계의 시각이다. 한기정 공정위원장은 지난 2월 기자간담회에서 "고려아연의 (공정거래법) 위반 여부에 대해 면밀히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공정위가 순환출자 문제를 정식으로 조사하는 과정에도 최 회장 측이 경영권 방어를 위해 순환출자 고리를 두 번 더 형성하는 등 당국의 권위에 도전하는 모습을 보인 것도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MBK 연합이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에서 중도 포기 없이 '끝가지 가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 점도 최 회장 측에겐 부담스러운 일이다. 상호주 카드를 통해 일단 경영권 방어에 성공하긴 했지만 MBK 연합이 최 회장 측보다 더 많은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변하진 않기 때문이다.

IB업계 관계자는 "경영권 1차 방어엔 성공했지만 최 회장 측에 남은 짐은 더 무겁다"며 "경영권은 방어했지만 사법리스크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진 모양새여서 경영권 방어를 위해선 많은 난관을 극복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종관 기자 p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