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HD 약은 왜 계속 품절일까…‘도돌이표’ 의약품 부족 현상 원인은?[비즈니스 포커스]

입력 2025-05-09 14:17
수정 2025-05-09 14:19
“콘서타 대체 언제 풀리죠?”
“약을 못 먹으면 사회생활에 다시 지장이 생길까 걱정돼요.”

주의력결핍과다행동장애(ADHD) 치료제로 알려진 메틸페니데이트(MPH) 성분 대표 상품 ‘콘서타’(콘서타OROS서방정)가 지난해부터 심각한 품절사태를 빚었다. ADHD가 주로 아동·청소년기에 나타나는 질환인 탓에 관련 환우 커뮤니티는 물론 맘카페까지 이를 우려하는 게시글이 다수 올라오고 있다.

해당 약물은 중추신경계 각성제로 집중력을 향상시키며 충동성을 완화하는 효능이 있다. 이 때문에 복용을 갑자기 중단하면 업무나 학습뿐 아니라 인간관계 등 환자의 일상에 큰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 게다가 콘서타의 대체재로 흔히 사용하는 ‘메디키넷’(메디키넷리타드캡슐)까지 수급이 불안해지면서 해당 약품에 의존해야 하는 환자들의 불안감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의약품 품귀현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서영석 더불어민주당 의원(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이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공개한 전국 약사 3000명 대상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수급불안정을 경험한 약품의 종류는 소염해열진통제군부터 항생제군, 근골격계군, 소화제군, 기타까지 다양했다. 즉 의약품 품귀는 다양한 품목에서 언제든 나타날 수 있다.

시장에서 판매되는 모든 제품이 그렇듯 의약품의 부족 현상도 결국 수급으로 결정된다. 문제는 시장과 정책 방향이 의약품 수급을 악화하는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의약품 품귀현상을 불러일으키는 몇가지 주요 원인을 짚어봤다. ‘사재기’ 부추기는 염려증·오남용
한국얀센이 공급하고 있는 콘서타는 ADHD 진단을 받으면 건강보험 급여 적용을 받을 수 있는 의약품이다. 그런데 최근 ADHD 진단을 받은 환자들의 진료 횟수가 급증한 데다 비급여 처방도 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ADHD 진료인원은 2017년 5만3056명에서 2021년 10만2322명을 기록한 뒤 2023년에는 20만1251명으로 가파르게 늘었다. 의료계에서는 해당 질환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스마트폰 사용, 미디어 노출이 늘면서 발생한 현상으로 보고 있다.

이처럼 자연스러운 상승세 외에도 ‘집중력 높아지는 약’, ‘공부 잘하게 해주는 약’으로 알려지면서 2023년 ADHD 치료제 처방량 중 45.2%가 비급여로 처방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비급여 환자의 1인당 평균 처방량은 545개로 급여환자 처방량(249개)의 2배를 넘겼다. ADHD로 진단받은 환자보다 비급여 환자가 많은 양을 사들여 오남용 논란이 일기도 했다.

처방이 필요 없이 살 수 있는 상비약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해열진통제 타이레놀이 대표적이다. 타이레놀은 코로나19 확산 이후 호흡기 질환이 유행할 때마다 사재기 논란이 일었다. 국내에 같은 아세트아미노펜 성분 제품은 많지만 타이레놀 브랜드가 워낙 유명한 데다 정부가 직접 해당 브랜드를 언급하면서 더 수요가 집중됐다. 코로나19 백신 접종 초기에 접종 후 발열 등 이상 반응이 있을 때 복용하는 해열진통제의 사례로 들었다가 품귀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2023년 엔데믹 이후 독감 등이 유행하면서 타미플루, 건플루 등 감기약도 줄줄이 품절사태를 경험했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타이레놀의 경우 국내 공장이 문을 닫으면서 물량 부족에 대비해 2년치 재고를 쌓아두었는데 수요가 폭증하면서 이 재고가 금방 동이 나고 말았다”며 “팬데믹처럼 갑자기 감염증이 확산해 찾는 사람이 늘면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글로벌 공급망 문제
그러나 이 같은 품귀현상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공급이 충분하지 못한 탓도 크다. 한국뿐 아니라 세계 원료의약품 대부분은 저렴하게 생산이 가능한 중국, 인도 등에 의존하고 있다. 기술개발과 완제의약품 생산은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에서 맡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ADHD 치료제의 경우에도 시장점유율이 가장 높은 콘서타는 원료를 수입해 국내에서 생산하며, 메디키넷은 독일에서 완제품을 수입하는 형태로 공급된다. 이들 제품은 국내에 제네릭(복제약)이 없는 대표 사례로 꼽힌다. 더구나 최근 글로벌 ADHD 치료제 시장이 커지면서 한국에 들여올 약이 부족해지고 있다. 특히 13억 인구를 보유한 중국에서 수요가 급격히 늘어 한국 시장이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있다는 것이다.

ADHD 치료제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달러 강세와 국내 정치 불안정이 본격화하면서 원·달러 환율은 치솟았다. 이에 따라 수입 의약품에 대한 국내 시장의 가격 부담은 커졌다. 게다가 코로나19로 불거진 글로벌 공급망 위기가 완전히 해소되지 못한 상태에서 의약품 시장은 미·중 갈등과 자국 우선주의를 맞이하게 됐다. 각국이 ‘바이오 안보’를 강조하며 원료의약품 자급화에 나서고 있지만 국내에선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한국무역협회는 ‘주요국의 제약·바이오의약품 산업 공급망 재편 정책 및 시사점’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한국의 고가 원료의약품은 수출되고 저가 원료의약품은 수입되는 구조로 국내 원료의약품 자급도는 여전히 낮은 수준”이라며 “제네릭의약품 위주의 국내 완제의약품 회사가 가격경쟁력을 갖춘 중국·인도 원료의약품을 수입하고 있는 데서 기인한다”고 분석했다. “돈이 안 된다” 생산 중단 부추기는 약가정책
이처럼 전 세계적으로 값싼 원료를 쓰게 된 원인은 결국 낮은 약가정책에 있다. 원료의약품 가격은 물론 각종 생산비용은 높아지고 있는데 정부가 책정한 의약품 가격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어 제약회사들이 수익성을 담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국내 타이레놀 공장이 철수한 배경에도 1정당 50~51원에 불과한 낮은 가격이 작용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2012년 도입한 ‘일괄약가인하’ 정책은 특히 필수의약품 및 제네릭 공급에 타격을 줬다. 일괄약가정책은 오리지널 의약품의 특허가 만료되면 오리지널은 물론 제네릭도 등재 순서와 관계없이 오리지널 최초 등재 가격의 53.55%로 가격을 조정한 것이다. 이에 따라 오리지널 특허 만료 시점에 맞춰 제네릭을 조기 출시하려던 제약사 간 경쟁은 약화했다. 대신 제약업계가 신약, 비급여 전문의약품 생산 비중을 높였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국내 연구개발 환경은 대폭 향상됐지만 결과적으로 필수의약품 공급에는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연세대 경제학부 최윤정 교수는 2013~2019년 약가인하에 노출된 제약사들은 그렇지 않은 회사와 비교해 매출액이 26%에서 51.2%까지 감소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적자전환 앞둔 건강보험 재정
현재의 약가 제도는 소비자의 의약품 비용 부담을 줄이는 동시에 국민건강보험공단 재정의 악화 속도를 늦추려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일괄약가인하 정책에 앞서 도입된 ‘사용량-약가 연동제’는 의약품의 사용량과 가격을 연동하는 방식으로 의약품 청구액이 예상보다 크게 늘면 협상을 통해 약가를 인하하는 것이다.

한 제약사 관계자는 “기업 입장에선 매출을 올릴수록 손해가 나는 구조”라며 “인기 의약품일수록 사용량-약가 연동제의 대상이 되기 쉬우므로 수익성이 낮아질 수 있는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의약품 관리 종합정보포털에 따르면 3월 24일 기준 6개월간 공급중단 신고가 된 의약품은 총 109개에 달했는데 그중 20개가 채산성 또는 수익성 문제로 공급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정부 입장에서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고가의 항암제와 희귀면역질환 치료제 도입으로 약품비는 늘고 있는데 인구 고령화, 과잉진료 등 문제로 곳간은 빠르게 줄고 있다. 지난해 2월부터 본격화된 의정 갈등으로 전공의들이 의료현장을 이탈하면서 비상진료체계 유지를 위해 건보재정만 1조4000억원이 투입됐다. 이에 따라 올해부터 건보재정 적자전환이 예상된다.

정부는 우선 급한 불을 끌 수 있는 대책을 내놨다. 식약처가 내놓은 ‘생산-수입-공급 중단 보고대상 의약품 보고 규정’ 개정 고시안에 따르면 공급중단 의약품 신고기간이 기존 60일에서 180일로 앞당겨지고 공급부족 의약품 신고도 의무화된다. 이 고시안은 4월 5일 시행될 예정이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신고를 미리해서 다른 회사나 수입을 통해 물량을 채울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것이 어려운 구조”라며 “의약품 공급 부족은 여러 가지가 얽힌 복합적인 문제라서 단순하게 해법을 찾기가 어려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보름 기자 br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