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클릭한다. 고로 존재한다 [권지예의 이심전심]

입력 2025-03-21 17:55
수정 2025-03-25 23:06
3월 하순의 봄빛이 화사하지만 꽃샘바람은 아직 맵차다. 봄눈 녹은 아파트 정원 그늘진 곳에 꼬마 눈사람이 며칠째 서 있다. 유난히 지난겨울에는 독감과 감기 후유증으로 긴 겨울잠을 자듯 칩거했다.

그 결과 또 다른 후유증을 얻었는데, 병명이 일명 ‘오른팔 테니스엘보’였다. 과도한 테니스? 집필의 결과? 아니, 부끄럽게도 과도한 휴대폰 사용이 원인이었다. 누워서 세상의 온갖 정보는 물론 독서나 음악 감상 등 문화생활도 가능한 이 손안의 기기는 마술이고 마약이었다. 특히 유튜브 콘텐츠의 무궁무진한 세계에 나는 서서히 중독돼 갔다. 사실 나는 컴맹 수준의 작가여서 집필할 땐 인터넷의 검색 기능으로 유튜브를 가끔 사용했다.

지난겨울 정치와 사회 현실은 얼마나 어수선하고 복잡했는가. 신문보다 발 빠르고 민첩한 수많은 유튜버의 뉴스는 쉴 틈 없이 내 화면에 떠올랐다. 산해진미 밥상의 음식을 한 번씩 찍어 맛보듯이 클릭만 해도 끊임없이 화수분처럼 솟아 나왔다. 그게 알고리즘이라는, 알고도 모를 원리인데, 우리의 이성과 신념과 판단과 취향을 조종하고 작동하게 하는 것이다. 나를 길들이는 유튜브 알고리즘으로 나는 결국 어떤 존재로 전락하게 되는 걸까.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존재. 무엇이 진짜인지 판별하는 힘을 잃은 존재. 그건 사실 좀 두렵다.

그러나 뻔한 거짓말을 버젓이 하며 오로지 클릭수를 올려 사익을 취하는 일부 유튜버에겐 분노가 인다. 그들 일명 사이버 레커(cyber wrecker)는 사이버 세상의 파괴자다.



소설가인 내가 제일 듣기 싫어하는 말이 있다. 국회 청문회장에서 주로 들은 말이다. 소설=거짓말로 치부하며 “소설 쓰고 앉아 있네”라는 비아냥과 “소설 쓰지 마!”라는 버럭 호통이다. 이 말이 허구에서 진실을 창조하는 문학예술인 소설을 무시하고 소설가를 모욕한다고 생각했지만, 차라리 거짓에 분노하는 순수한 반응이라고 요즘엔 생각한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흥미진진한 드라마 같은 현실과 소설가의 상상이 못 따라가는 거짓말에 열광하는 대중을 보며 주눅 든 소설가는 냉가슴을 앓는다. 유튜버의 영어 표기는 크리에이터(creator)인데, 사실 소설가야말로 진짜 창작자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난주부터 한 아역배우 출신 여배우의 자살과 그의 전 연인인 유명 배우의 거짓말이 끊임없이 유튜버들에 의해서 일파만파로 확산했다. 여배우가 미성년자일 때부터 교제해 왔다는 의혹과 두 배우의 소속사와 채무 관계로 얽힌 논란거리가 유튜브 채널에서 계속 까발려지고 있다. 애초에 A라는 유튜버가 여배우 생전에 음주운전 사고를 낸 후부터 허위 사실로 그를 고통스럽게 했다고 유족들이 그의 사후에 B라는 유튜버와 함께 허위사실 유포에 따른 명예훼손으로 A를 고소했다.

거짓을 밝히고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며 A와 B가 비장의 무기로 두 배우의 은밀한 프라이버시를 경쟁적으로 노출해 오히려 명예는 진흙탕 속을 뒹굴며 더욱더 훼손되고 있다. 분노와 슬픔과 애잔함 밑에 흥미진진한 호기심을 감추고 사람들은 손가락으로 흥분의 광클릭을 해댄다.



어쩌면 진실이 무엇인지 무엇이 거짓말인지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새로운 거짓말이 계속 발명되고 창조되고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유튜브의 구조적인 문제는 클릭수를 올리는 것이지 대중의 비판적 이성적 생각이 굳이 필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이 혼란의 시대에 우리의 존재에 대해 데카르트식으로 나는 생각한다. 나는 클릭한다. 고로 존재한다.